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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사람과 사회 등록 2003.10.22(수) 제481호

[사람과사회] 서울대병원 “돈 한번 만져보자”

강남 부유층 노린 초호화 건강증진센터 설립… “공공성과 완전히 배치” 비판 높아

지난 10월15일 서울 강남 역삼역 주변 스타타워빌딩 38, 39층에 초호화 건강증진센터가 새로 들어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국가중앙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다. 종합건강진단을 전문으로 하는 이 센터는 전용면적 1200평 규모로, 24명의 전담 교수가 상주하며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정기적으로 진료에 참여한다. 양전자단층촬영(PET),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 최첨단 검사장비를 갖추고 하루 최대 150명을 건강진단할 수 있다. 건강진단 상품을 보면 ‘기본건강진단 프로그램’은 50만원, 주력상품인 ‘헬스케어 종합건강진단’은 100만원, 시내 고급호텔에 묵는 1박2일 ‘숙박건강진단 프로그램’ 및 ‘프레미엄 건강진단 프로그램’은 200만∼300만원 선이다.

“적자 메우려 수익사업 불가피” 설득력 없어

서울대병원이 강남에 최고급 건강증진센터를 개설한 이유는 뭘까? 병원쪽은 건강증진센터가 △국민건강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질병인자 분석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공익성 강화를 위한 재원 확보 △치료에서 질병 예방 및 조기발견으로의 의료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뒤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바로 ‘돈’이다. 건강증진센터는 의료보험이 거의 적용되지 않아 손쉽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알짜배기 돈벌이 사업이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지부는 성명서를 내어 “서울대병원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조차 포기하고 민간 기업처럼 수익성 중심으로 의료를 상품화해 파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강남 건강증진센터를 폐지하고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라”고 주장했다. 김애란 서울대병원지부장은 “VIP용 강남 건강증진센터가 막말로 국가중앙병원인 서울대병원이 할 사업이냐?”며 “서울대병원의 공공성과 완전히 배치되는 돈벌이 사업”이라고 말했다. 강남 요지에 들어선 이 센터는 강남을 비롯해 전국의 돈 있는 부유층 고객을 한꺼번에 흡수하기 위한 것이며, 서울대병원이 브랜드 파워를 이용해 전국의 중소·대형 병원을 상대로 환자유치 경쟁에 돌입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용현 서울대병원장은 “고가로 알려져 있는 강남센터의 숙박검진과 프레미엄 진단의 경우 대상자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며 “건강증진센터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공익성 강화에 대부분 재투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공익성 추구를 위한 수익성 강화’를 위해 건강증진센터 건립이 불가피했다는 논리다. 그러나 질병 조기 발견과 예방이 어려워 병을 더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비싼 건강검진을 받을 엄두조차 못 내는,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된 저소득층이다. 김애란 서울대병원지부장은 “한번에 100만원 이상의 진료비를 싸들고 와서 종합검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냐?”며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게 의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대병원의 본래 역할인데, 강남센터는 국민 질병예방을 위한 사업이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물론 서울대병원쪽도 할 말은 있다. 병원 적자가 해마다 쌓이고 있어서 적자를 메우기 위한 수익사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몇십억원 정도 흑자를 낸 적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병원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며 “서울대병원에 딸린, 국내 유일의 어린이병원과 국내 최대 규모의 임상의학연구소에서 매년 100억∼140억원의 적자가 나고 있는데, 이를 감당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원래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민간 의료기관은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 어린이병원과 의학연구소를 서울대병원이 운영하고 있는 탓에 해마다 적자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공공 의료기관이라는 성격이 낳는 적자를 빌미 삼아 본격적인 수익사업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은 사립대 부속병원이나 민간 대형병원과 달리 수백억원의 국고지원을 받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병원에 대한 국고지원은 400억원(분당 노인전문병원 건립비 316억원, 차관원리금 상환 60억원, 어린이병원 25억원 등)이다. 어린이병원에 대해서는 2005년까지 해마다 수십억원씩 지원될 예정이다. 이런 국고보조는 의료진 인건비 지원보다는 주로 시설투자비에 지원되는데, 지난해에는 550억원이 지원됐다. ‘공공 의료서비스를 위한 적자’이기 때문에 국가가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수백억원 국고지원 받고 있는데…

그런데 어느 병원할 것 없이 외부에 공시하는 손익계산서를 둘러싼 투명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대학병원 수익금 가운데 재단전출금(교수인건비 지원을 위해 학교법인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이나 목적사업준비금 명목으로 빠져나가는 돈을 감안하면 병원쪽의 적자 주장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국장은 “서울대병원에서 내놓은 경영실적 보고서의 투명성도 따져봐야 한다”며 “사립대 병원들은, 서울대병원이 공공 의료기능은 팽개치고 민간 병원처럼 똑같이 수익성 경쟁을 하고 있는데도 국가가 서울대병원에만 재정지원을 해주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강남센터 건립 추진 과정에서 정부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특수법인 서울대병원 이사회에는 교육부 차관, 보건복지부 차관, 기획예산처 차관 등 정부 대표 3명이 참여하고 있다. 복지부쪽은 건강증진센터 신설에 강력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복지부 관계자는 “강남센터는 솔직히 돈벌기 위한 것 아니냐”며 “국립 서울대병원은 설립 목적인 의학교육과 연구, 의료인 양성에 더 치중해야 한다. 개인 의원급에서 하는 건강증진센터를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것은 위상에도 걸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남구보건소쪽은 “(국가중앙병원인) 서울대병원쪽이 강남센터 개설을 신고할 때 ‘의원’이란 명칭이 걸렸는지 자꾸 ‘헬스케어센터’라는 이름을 쓰겠다고 고집했다”며 “하지만 결국 ‘서울대병원 강남의원’이라는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개설신고를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감독기관인 교육부와 돈줄을 쥐고 있는 기획예산처는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더 강화하도록 서울대병원을 압박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건강증진센터의 수익금 용도가 딱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서울대병원이 경영적자 부분을 해소해야 국가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수익성 강화를 위해 얼마나 경영혁신을 하는지를 평가해 차등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도 영리추구로 나가는 추세

서울대병원이 공공성에 역행하면서 영리추구로 나아가고 있는 현상은 병상 운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의 기준병상 비율은 42.8%로, 기준(50%·병원은 허가병상 중 50% 이상을 5∼6인실 다인용으로 운영해야 한다)에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소아 병동을 제외한 일반 병동의 다인실 병상 비율은 37.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인실 병상은 병실료 전액에 대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때문에 입원환자 본인 부담금이 하루 9천원 정도지만 2인실은 약 12만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입원 환자들은 다인실 병실로 가지 못해 입원비가 비싼 상급 병실을 울며 겨자먹기로 이용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특히 공공병원이지만 서울대병원의 2인실과 3∼4인실 하루 병실료는 각각 11만1천원과 6만8천원으로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 평균치인 9만4천원과 4만2천원을 크게 웃돌았다. 게다가 서울대병원은 지난해부터 아예 ‘단기 병상제’를 도입해 6인실 병실 앞에 ‘단기병상’이란 팻말을 붙여놓고 단기 입원환자만 다인 병실에 입원시키고, 장기 입원환자들은 비싼 1∼2인실을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병실료 부담 때문에 장기환자들은 치료가 끝나기 전에 퇴원을 서둘러야 한다. 돈 없는 환자의 서울대병원 문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서울대병원의 추진 중인 치과병원 독립법인화와 교수성과급제도 수익성 추구와 맞닿아 있다. 서울대병원노조는 흑자를 내는 치과병원을 따로 독립시키면 서울대병원의 적자 규모는 더 커지게 마련이고, 결국 적자 누적을 핑계로 병원이 더욱 수익성 추구에 매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료환자 수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교수성과급제 도입 역시 5분진료, 3분진료 식으로 환자 진료시간을 줄여 공공 의료서비스의 후퇴를 가져올 공산이 크다. 김애란 서울대병원 지부장은 “저소득층이 주로 가는 보건소·지방공사의료원은 경영이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서울대병원은 강남센터에서 돈 버는데 정신을 팔 것이 아니라 국가중앙병원으로서 역할에 맞게 국민과 저소득층의 건강검진을 확대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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