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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사람과 사회 등록 2003.10.22(수) 제481호

[사람과사회] 스와핑은 미친 짓인가

“인륜이 무너졌다”고 흥분만 할 게 아니라 성 담론을 만드는 차원에서 공론화 논의할 때

1993년 봄 이건희 삼성 회장은 신경영을 역설하면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고 강조했다. 그런데 아주 드물지만 마누라(배우자)도 바꾸는 사람이 생겼다.

최근 유명해진 스와핑(swapping)은 ‘바꾸다, 교환하다’는 뜻이다. 본디 스와핑은 부부교환 섹스란 뜻만 아니라 금용이나 정보통신 용어로도 쓰인다. 금융시장에서 스와핑은 서로 다른 통화나 주식, 채권, 채무를 일정 조건으로 교환하는 거래를 말한다. 컴퓨터에서 스와핑은 메모리의 데이터를 다른 기억장치로 넘기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성 도덕이 무너진 우리 사회가 파멸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한다. 먹고살기 바쁜 이들은 ‘돈 많고 배부른 고소득 전문직이 저지른 파렴치한 짓’이라며 비판했다.

‘짐승’들의 명단을 공개하라?

서울에서 택시를 모는 김광원(50)씨는 “차라리 바람을 피우는 게 낫지, 어떻게 부부끼리 짝을 바꿀 생각을 했을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요즘 택시를 타는 손님마다 스와핑을 이야기한다. 다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흥분한 사람들은 술자리와 인터넷에서 ‘스와핑을 한 짐승들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분명히 스와핑은 미풍양속에 어긋나며 평범한 사람들에게 심리적 거부감을 준다.

10월16일 문화방송 <아주 특별한 아침>은 ‘바람난 사회의 독(毒), 스와핑’을 방송했다. 제작진은 “최근 결혼한 부부의 외도는 드라마, 영화에서도 자유롭게 혹은 경쾌하게 거론될 정도로 당당하다. 이런 물결을 타고 위험한 섹스 게임인 스와핑이 등장해 문제가 되고 있다. 바람난 사회의 독, 스와핑 현장을 통해 이 시대 어두워져가는 부부 성문화를 조명한다”는 방송 취지를 설명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경기도 한 펜션에서 스와핑에 참여한 남녀들이 속옷 차림으로 춤추는 장면이 나왔다.

문화방송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제은희씨는 “스와핑 보도의 초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처음 방송 진행자가 전통적 가족의 해체와 모성의 부재를 이야기하면서 남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보도 말미에 노래방 도우미 중에 주부가 많은 점을 언급했다. 스와핑과는 전혀 다른 문제인데도 말이다. 석연치 않은 느낌으로 방송을 되짚어보지 않도록 해달라”고 지적했다.

스와핑 문제가 갑자기 불거진 것처럼 보이지만 몇년 전부터 논란거리였다. 2000년에 회원만 수만명이 넘는 대형 스와핑 사이트가 등장했다가 당국에 의해 폐쇄됐다. 2001년 3월 스와핑을 다룬 한국영화 <클럽 버터플라이>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왜 부부끼리만 섹스를 해야 하는 거지’란 의문을 던지며 현대사회의 일상에 지친 평범한 부부가 위기의 해결책으로 스와핑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2001년 7월 스와핑으로 물의를 일으킨 공기업 직원 2명의 해직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적도 있다. 해고된 직원들이 ‘사생활을 이유로 해임시키는 것은 지나치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처분을 받아내자 회사는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이들 직원의 징계해임은 정당하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직장인으로서 성실과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한 두 직원을 징계해임한 것은 정당하다’며 회사쪽의 손을 들어줬다.

전문가들 “변태행위 단정 어렵다”

‘스와핑은 미친 짓’이란 비판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성인 부부가 스와핑을 포함해 어떤 섹스 취향을 가지고 있든 간섭할 수 없는 사생활 영역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원칙적으로 국가나 타인이 성인의 은밀한 성생활까지 개입할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통념과 달리 전문가들은 스와핑을 ‘비정상적인 변태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정신과 의사인 김호기(38)씨는 “의학적으로 스와핑을 정신질환으로 분류하지 않으며 변태성욕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정신과 의사는 “스와핑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활성화된 현상이다. 윤리적으로 논란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개방된 성문화를 가진 부부가 합의하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와핑을 비판할 수 있어도 처벌할 실정법상 근거는 없다. 이 때문에 서울 강남경찰서가 스와핑에 참가한 부부들을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했다.

한편, 사람들은 스와핑을 비난했지만 스와핑을 수사한 경찰의 적법성도 따져물었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공개된 장소나 범죄현장도 아닌 개인 소유의 집 안을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카메라로 촬영한 행위는 위법이란 것이다.

<인터넷한겨레>에서 ‘경찰의 스와핑 현장 몰래카메라’에 대한 네티즌 여론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 단속’이란 응답이 53%였지만, ‘사생활을 침해한 불법행위’란 응답도 47%가량 나왔다. 스와핑을 놓고 쏟아졌던 일방적 비난과 비교하면 다소 뜻밖의 결과다.

경찰은 수사 배경에 대해 “스와핑 사이트 운영자가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비정상적 성관계를 알선하면서 금품을 받으면 불법이다. 스와핑 자체를 처벌하기는 힘들어도 그 과정에서 마약이나 도박 같은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도 스와핑이 논란이 됐다. 지난해 11월7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스와핑 클럽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독일 바이에른 주정부는 ‘카라트’란 스와핑 클럽에 대해 가정생활을 파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스와핑 클럽 업주인 폴커 에르하르트는 영업정지에 항의해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가톨릭 전통이 강한 바이에른주 대법원은 배우자를 마음대로 바꾸는 스와핑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독일에서의 스와핑 논란

하지만 독일의 최고법원인 연방 헌법재판소는 바이에른주 대법원의 판결이 국민의 자유권을 침해했다며 주정부에 스와핑 클럽의 운영을 허가할 것을 명령했다.

미국 언론인 테리 굴드는 <쾌락의 권리>(원제 The Lifestyle)에서 스와핑이 현대사회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인류의 오랜 관습이라고 주장했다. 굴드는 “건정한 시민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정부와 수사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와핑 클럽은 계속 번창할 것이다. 자유로운 섹스가 원시사회에 인류가 누렸던 정신의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여전히 가치 있는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우리 현실에서 스와핑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거나 권장할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자기와 성적 취향이 다른 소수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말세라고 단정짓는 것은 성마르다. 몰래 카메라로 스와핑 장면을 찍은 뒤 ‘인륜이 무너졌다’고 흥분할 게 아니라, 성 담론을 만드는 차원에서 스와핑 공론화를 논의할 때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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