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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사람과 사회 등록 2003.10.22(수) 제481호

[사람과사회] ‘고정관념 깨기’ 시범수업중!

“런 앤 킥킥, 손 번쩍 들고, 한 바퀴 돌고~!”

“야, 왼쪽으로 가야지, 오른쪽으로 틀면 어떡해.”

지난 10월17일 오전 서울 양재동 언남고등학교 1학년5반의 체육시간.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손을 맞잡고 체육관을 휘젓는다. 가끔 방향을 잘못 잡은 커플이 ‘잘나가는’ 커플의 진로를 방해하지만, 민망한 웃음을 한번 흘려주면 그만이다. 이날의 춤은 댄스스포츠의 일종인 ‘자이브’. 1주일에 2시간 있는 체육시간에 차차차와 자이브를 전문강사에게 배운다. 이정진(16)양은 “남학생들과 같이 움직이고 어울리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다”며 만족해했다.

교육인적자원부 지정 양성평등교육 시범학교인 언남고등학교는 여학생 또는 남녀 혼성학급의 체육수업 프로그램을 마련하라는 ‘특명’을 받고, 지난해 3월부터 2년째 시범수업을 운영 중이다. 여학생들은 일상생활에서 운동에 참여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체육시간에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체육활동에서 멀어지면서 남학생은 운동하고 여학생은 응원을 해야 한다는 고정적인 틀이 형성됐었다.

언남고는 체육시간에 배구와 농구, 넷볼, 스포츠댄스, 호신술 등 5가지 종목을 운영하고, 이 가운데 배구와 농구, 댄스스포츠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함께 참여하도록 구상했다. 다만, 구기종목은 신체적 차이를 고려해 여학생이 경기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경기규칙을 약간 바꿨다.

김승수 교사는 “올 초와 최근의 설문조사를 비교해보면, 남학생이 여학생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팀워크도 좋아졌다는 응답이 늘었다”며 “하지만 아직도 활동적인 운동은 남학생만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여학생들이 소극적인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여학생들이 주도할 수 있는 운동종목이 거의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남학생 주도의 종목에 여학생이 ‘끼는’ 형식이어서, 여학생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역효과도 감지된다.

교육부는 언남고와 경기 구미 신평중학교, 경남 창녕 명덕초등학교 등 3개 시범학교를 운영 중이다. 각 시도 교육청이 자체 지정한 시범학교까지 더하면 전국에 모두 16개 시범학교가 있다. 양성평등 교육과정과 여학생 체육 활성화 프로그램, 여학생 진로교육 강화 프로그램 개발 등을 담당한 이들 학교에서는 남학생이 1번부터 있었던 출석부 번호가 생년월일이나 가나다 순으로 다시 정해지고 운동장이나 급식소에서 줄을 설 때도 남학생이 앞에 서던 관행도 없어지는 등 소소한 일상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의식이다. 제도가 아무리 완비되더라도 이를 시행하는 교원들의 의식이 따르지 않는다면 별 소용이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회와 교육환경의 변화를 교사들이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교원들을 상대로 따로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며 “학생들에 대한 양성평등의식 교육과 활동은 가능한 일찍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범학교에서 얻어진 경험과 프로그램을 각 학교에 점진적으로 확대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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