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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엔 윤리도 없는가” ‘공장철수’ 무기로 노동자 압박하는 CEO… 한국네슬레 직장폐쇄 사태의 진실
한국네슬레의 이삼휘(55) 사장. 그는 요즘 보수언론들한테서 ‘용기 있는 지식인’으로 대접받는다. 보수언론의 눈에는 그가 한국의 ‘전투적인 노동조합’에 맞서 자본의 논리를 꿋꿋하게 관철시키고 있는 용감한 최고경영자(CEO)로 비친다. 그를 ‘노사문화 개혁의 전도사’로 칭송하는 언론도 있다. 이에 고무된 탓일까. 이 사장은 자기 회사 노조를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도 준엄하게 일침을 가했다. 그는 지난 9월6일 인터넷신문 <조선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노사문제에 대해 정부의 이론은 탄탄하지만, 실천력은 D학점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이 사장은 ‘한국 노사문화 개혁의 전도사’인가. 그의 말대로 한국네슬레 노조는 경제원리를 무시한 이기적인 집단일 뿐인가.
“노조와의 대화보단 언론플레이를”
지난 9월18일 충북 청주시 한국네슬레 청주공장. 철망으로 된 공장 담 주변에 때아닌 텐트촌이 들어서 있었다. 9월4일 회사쪽에서 내린 직장폐쇄 조처 때문에 공장에서 쫓겨난 노조원들이 파업 농성을 계속하기 위해 만든 텐트촌이다. 공장 담 주변에는 이 사장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무수히 나붙어 있었다. 전택수 노조위원장은 “이 사장이 노조와 대화할 생각은 않고 노조를 궁지에 빠뜨리기 위한 언론플레이를 일삼아 노조원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사장은 노조가 지난 7월7일 파업에 돌입한 이후 단 한 차례만 노조 대표와 만났다. 8월8일 청주공장 노조원들이 집회를 위해 서울 본사로 몰려왔을 때 전 위원장과 면담한 것이 전부다. 이 사장은 또 지난 4월22일 단체협상이 시작됐을 때 1차 협상에 나와 상견례를 했을 뿐 이후 단체협상 장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회사쪽은 이에 대해 “단협에 대표이사가 위임한 사람이 사측을 대표할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네슬레 본사의 ‘공장 철수 검토’ 지시는 한국네슬레 파업 사태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고 있다.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의 경영 윤리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네슬레 노조는 “공장 철수 협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전 위원장은 “네슬레는 사업원칙에 다국적기업의 가이드라인을 참조한다고 밝히고 있다”며 “사업원칙을 어기면서까지 공장 철수 협박을 하는 것은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6월 개정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제7장)은 “고용조건에 대해 종업원 대표들과 선의의 교섭을 함에 있어, 또는 종업원들이 단결권을 행사함에 있어, 기업은 교섭에 부당하게 영향을 주거나 단결권 행사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업장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 국가에서 철수하겠다고 위협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네슬레의 회사운영 원칙인 ‘네슬레 사업원칙’(Nestle Corporate Business Principles)은 “네슬레는 사업원칙을 위한 참조사항으로 2000년 6월 개정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활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OECD 가이드라인 들어본 적 없다?
전문가들은 OECD 가이드라인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이 윤리강령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OECD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선진화된 규정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이 이를 따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국네슬레 노조는 “유럽 지역 네슬레 사업장의 노동자 대표들로 구성된 네슬레유럽노동협의회 대표단과 국제식품연합노련(IUF)이 공장 철수 위협에 대해 네슬레 본사쪽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IUF의 론 오스왈드 사무총장은 지난 9월12일 네슬레 본사에 항의 서한을 보내 “회사가 쟁의 사태를 불러일으킨 모든 이슈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성실히 교섭에 임하라”고 촉구했고, 네슬레유럽노동협의회도 “투자 철수나 투자 이전을 무기로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비난했다.
한국네슬레 노조가 파업에 이르는 과정도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이 사장은 언론을 통해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회사의 고유한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의 요구가 경영권을 침해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전 위원장은 “임금협상 중에 일방적으로 사업부를 없애고 조합원들을 다른 부서로 배치하는 등 회사가 단협을 먼저 어겼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과연 경영권을 침해했는가
실제로 회사는 임금협상 중이던 지난 6월28일 영업 경쟁력을 키운다는 이유로 판매를 다른 회사에 맡기는 위탁판매 조처를 단행했다. 대신 영업부에 근무하던 조합원 40여명을 시장조사 부서로 발령냈다. 전 위원장은 “이는 조합원의 부서이동 및 배치 전환시 본인과 협의하기로 돼 있는 단협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002년 체결된 한국네슬레의 노사 단체협약(제16조)은 ‘회사는 조합원의 부서이동 및 배치 전환시 본인과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 단, 조합원의 이의 제기시 조합과 협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회사쪽은 “개인의 인사이동 및 전환배치에 대해 조합과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오히려 회사는 “단협 유효기간 중에 단체교섭 내용을 바꾸기 위해 파업할 수 없도록 규정한 제78조를 노조가 먼저 어긴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사장은 “직원들에 대한 인사는 회사 고유의 권한으로, 노조가 이에 개입하는 것을 본사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5년간 적자를 기록했고, 최근 점점 순이익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경영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의 주장은 다르다. 노조는 “1996년부터는 흑자로 돌아섰고 최근 6년 동안 100억∼2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고 반박했다. 노조는 최근 매출이 답보상태에 빠지고 순이익이 떨어지는 현상은 회사의 재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 위원장은 “최근 5년간 본사가 한국지사의 당기순이익의 92%를 가져갔지만 한국지사에 투자한 것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노조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한국네슬레는 194억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는데 이 중 185억원이 본사로 빠져 나갔다. 한 회계전문가는 “다국적기업의 특성상 순이익의 상당 부분이 본사로 들어간다. 재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상 유지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 사장은 “이익을 낼 가능성이 적으니까 본사에서 투자를 안 하는 것”이라며 “한국에 투자를 안 할 뿐 다른 지역에는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지난해 이 사장이 취임한 이후 회사가 행한 조처들은 한국지사가 생긴 이후 처음 있었던 것”이라며 “이 사장 이전의 외국인 CEO들은 노조와의 대화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전임 CEO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 사장은 “임기 동안 노조와 충돌하지 않으려고 대충대충 넘어갔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라며 “나는 결코 노조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노조가 수정안을 제시하기 전까지 밀고 나갈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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