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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사람과 사회 등록 2003.01.02(목) 제441호

[사람과 사회] 암환자는 두번 눈물 흘린다

병에 울고 검증 안된 시술에 울고… 정직한 정보에 기반한 통합의료 불가능한가

치료쇼핑족. 말기암 환자와 가족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말기암이란 통상 4기 단계로 생존 예측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인 상태를 뜻한다. 현대의학은 대부분 손을 놓는다. 말기암 환자와 가족의 ‘쇼핑’이 시작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치료를 구걸한다. 돈고생, 맘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종 매체에는 현혹하는 광고들이 쏟아지고 있다.

완치 사례 없는 ‘세계 최고’ 한의원

“세계 최고 수준의 말기암 치료 효율.” 이 구호를 내세운 주인공은 서울 강남ㅇ한의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치료방법을 찾아헤매는 말기암 환자와 가족에게 이처럼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말은 없다. 그러나 ㅇ한의원은 문을 연 지 3년여 만에 암환자와 가족의 원성을 한몸에 받고 있다.

“세계 최고 말기암 치료사기꾼 ㅂ원장을 처벌하라!” “ㅇ한의원 두둔하는 대한한의사협회 각성하라!”

대선의 흥분이 미처 가시지 않은 12월20일 오후 서울 경동시장 근처 대한한의사협회 앞.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이들은 ‘암환자 가족을 사랑하는 시민연대’(암사연·www.ilovecancer.org) 회원들로 참석자 가운데는 이미 환자와 사별한 가족도 있다. 이들의 요구는 강남ㅇ한의원 원장을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징계하라는 것이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ㅇ한의원이 내세우는 면역 약침요법은 인체 면역기능을 높이는 천연약재를 암 부위에 주사해 종양덩어리를 죽인 뒤 몸 밖으로 배출하는 방법이다. 약침주사를 맞은 부위에 뜸을 뜨면 피부에 구멍이 뚫리고 암의 독소가 흘러나온다는 것이 ㅇ한의원의 주장이다. 이들의 치료방법은 꾸준히 각종 언론매체에 등장했고, 치료효능을 소개하는 책자도 출간됐다.

1999년 ㅇ한의원에서 피해를 입거나 죽는 환자들이 속출하면서 대한한의사협회는 ㅂ원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일이 있다. 당시에는 ㅇ한의원에 약침요법을 전수하고 약침제재를 공급한 약침연구가 ㅎ씨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문제가 됐다. 당시 ㅂ원장은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ㅎ씨의 불법진료를 수시로 만류했다”는 주장이 정상참작된 것이다. 그 뒤로도 ㅇ한의원은 세계 최고 수준의 말기암 치료기관을 자임해오고 있다. 참다못한 피해자와 가족은 지난 8월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무면허 의료인 고용, 차명계좌를 이용한 탈세, 불법 의약품 수입·제조·판매, 허위·과장 홍보와 호객행위 등의 내용이 진정서에 담겨 있다. 환자들이 ㅇ한의원을 불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말기암 완치사례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기암 완치율이라면 5년 이상 생존하며 재발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다. 또한 ㅇ한의원이 책자 등을 통해 성공사례로 소개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죽은 사람인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에 대해 ㅇ한의원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통계를 맹신하는 건 무의미하다. 3년을 살아도 편하게 사는 것과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똑같이 취급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치료법이 세계 최고임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ㅇ한의원의 처방법은 식약청이나 약침학회 등 공인기관에서 검증한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한의사가 자기 한의원에서 처방한 방법은 현행 의료법상 불법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암사연 김윤(35) 대표는 “자기의 치료법을 입증하지 못하고, 말기암 완치사례를 단 한건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의료기관이 환자들을 현혹하는데 어떻게 공신력 있는 협회나 관리감독기관에서 아무런 검증도, 제재도 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한다. 암사연의 고발로 최근 강남보건소는 ㅇ한의원에 한달간 영업정지처분을 내렸다. 과대광고가 이유였다. ㅇ한의원은 이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면역세포 배양, 숯가루 치료…

보건복지부 암관리과에 따르면 해마다 암에 걸리는 이들은 10만여명이다. 암사연은 우리나라의 암환자는 50여만명으로 최대의 의료소비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암환자와 가족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보다는 사이비 치료기관에 시달리는 것으로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암사연에 접수되는 피해사례는 끝이 없다.

“오빠는 2002년 여름 말기위암으로 3개월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았다. 인터넷에서 보고 한 면역치료소를 찾아갔다. 원장은 체질에 맞으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희망적으로 말했다. 한번 치료가 600만원인데 한꺼번에 두번 하자고 해서 1200만원을 냈다. 오빠 몸에서 70cc 정도 피를 뽑은 뒤 면역세포를 배양한다며 2주 뒤에 오라고 했다. 2주 뒤인 8월6일 약 30분간 면역세포를 정맥에 주입했다. 원장은 위출혈도 없어지고 통증도 약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좋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열흘 뒤인 8월16일 결국 오빠는 죽었다.”(ㅎ씨)

“한 건강생활연구원에서 숯가루로 암을 치료한다고 해서 장모님을 모시고 갔다. 원장이 권유하는 건강보조식품을 빠짐없이 구입했다. 어느 날 영국에서 침학위를 받고 많은 환자를 금침으로 낫게 했다는 분이 연구원에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효과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그 사이 연구원에서 금침요법을 하려면 빨리 하라고 독촉해 장모님은 한대에 10만원 하는 금침을 이미 88대 정도 맞았다. 효과를 본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금침 놓는 분이 말하길 ‘내가 암환자다. 내가 나한테 놓아서 완치됐다’고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ㅂ씨)

2002년 봄 ‘암환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분화된 암사연은 유료회원이 200여명인 의료시민단체다. 2002년 5월에는 암환자 가운데 지원자를 뽑아 석달간 암관련 대체식품을 직접 복용하는 공개 검증행사도 벌였다.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항암효과’를 섣불리 믿지 말고 암환자 스스로 알아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행사였다. 11월에는 ‘암 희망 찾기 시상식’을 열어 열심히 투병하는 말기암 환자사례를 보고해 큰 호응을 얻었다. 암사연은 암에 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활동도 벌이고 있다. 암사연에 따르면 △전체 암환자 가운데 5∼10%는 오진으로 인한 가짜 암환자고 △초기암의 경우 오진률이 절반 가까이 되며 △말기암 환자도 살아날 수 있다. 암사연에서 상근활동을 하는 박영출(46)씨는 13년 전 위암말기 판정을 받았으나 식이요법 등을 통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2002년 10월, 국립암센터는 95년 암환자의 5년 이상 생존율이 44.1%라고 발표했다. 해외평균이 25%인 것에 비해 고무적인 수치다. 또한 이 발표는 갑상선암·유방암·자궁암 환자의 생존율(70∼90%)과 간암(5개월)·폐암(7개월)의 평균 생존기간을 나누어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암사연은 국립암센터 통계 조사과정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전체 암환자 가운데 치료포기·치료불능으로 판정된 암환자(20%)와 등록되지 않거나 생사 확인이 불가능한 암환자 등 30% 가까이가 누락된 상태에서 표본조사를 했다”(암사연 <제2회 암 희망 찾기 시상식 자료집>)는 것이다.

“암환자의 주권 찾기에 나선다”

암사연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정직한’ 정보와 사례에 기반한 양방·한방·대체의학의 통합치료다. 의료집단 간 서로 내가 옳다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암을 치료할 길을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찾아나가자는 제안이다. 국민 3명 가운데 1명이 암으로 죽는 ‘암의 천국’에서 어느 사회 구성원도 암의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소비자로서 본격적인 주권찾기에 나서겠다고 밝히는 암사연 김 대표는 “강남ㅇ한의원과의 싸움은 그 첫걸음이다. 치료쇼핑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절박한 환자와 가족을 현혹하는 치료기관을 검증하는 일에 정부와 의료단체가 적극 나서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한의사협회 김동채 상임이사는 “ㅇ한의원 ㅂ원장은 윤리위원회에 제소돼 징계 여부와 수위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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