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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사람과 사회 | 등록 2002.08.28(수) 제42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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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회] “에라, 이 오노보다 더한 넘∼” 인터넷을 떠도는 조지 부시 놀리기… “침팬지 여러분 부시와 비교해서 죄송합니다”
어느 날 세 소년이 다리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깅을 하다 물에 빠진 조지 부시였다. 소년들은 그를 구해주었다. 부시는 소년들에게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원하는 것은 뭐든 주겠다고 약속했다. 첫 번째 소년은 나이키 운동화를 원했다. 부시는 그에게 운동화를 주었다. 두 번째 소년은 고급 스포츠카를 원했다. 부시는 그에게 스포츠카를 주었다. 세 번째 소년은 휠체어를 원했다. 부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걸 원하니? 넌 장애인이 아니잖아.” 소년이 답했다. “만일 우리 아빠가 내가 누굴 구했는지 알면 곧바로 그게 필요하게 될 거예요.”
물에서 구한 부시와 휠체어
이 내용은 다양한 버전으로 바뀌면서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 조지 부시는 요즘 국경 없는 온라인상에서 최고의 유머 주인공이다. 부시에 대한 비꼬기는 크게 두 축이다. 미국 대선 전후로 그의 바보스러움과 권력욕에 초점을 맞춘 패러디가 쏟아졌다면, 지난해 9·11 사건 이후 주춤하다 올 초부터는 그의 미국식 오만함과 패권주의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아프칸 무력침공 등 과도한 테러응징에 대한 반발심리로 부시를 악의 축으로 비트는 유머들이 많다. 부시 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바에 앉아 있다. 손님 중에 한명이 다가가서 “만나게 돼 영광입니다. 무슨 얘기들을 하시는가요?”라고 묻자, 부시가 말한다. “제3차 세계대전을 계획하고 있는 중이오.” 깜짝 놀란 손님이 말한다. “뭐라고요? 어떻게요?” 부시가 답한다. “이라크인 1400만명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를 죽일 것이오.” 남자가 묻는다. “아니, 대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는 왜 죽여요?” 부시가 흐뭇한 미소를 띠며 파월의 어깨를 툭 친다. “거봐. 사람들은 아무도 내가 이라크인을 죽이는 데는 관심 없어!” 부시에 대한 풍자는 사진합성에서 절정을 이룬다. 패러디 버전으로 쏟아진 수많은 ‘부시들’에는 말이 필요 없는 것도 많지만 때론 영문·국문으로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진 것도 있다. ‘전쟁에서 진 부시’ 1탄. “돼지 무리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닌다.” “여기서 돼지란 군수업자·정유업자·화학제조업자들과 이들의 로비에 좌지우지되는 워싱턴의 정책 결정권자들을 뜻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기도 하다. ‘전쟁에서 진 부시’ 2탄. “극도로 패닉상태에 빠져 지가 오사마 빈 라덴인 줄 알고 라덴처럼 옷 입고 동굴 속에서 침팬지들과 함께 고장난 라디오를 끼고 산다.” “이런 것을 투사 혹은 증상에 따라 역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라는 그럴듯한 심리학적 분석도 곁들여져 있다. 그래서인지 ‘부시의 진짜 얼굴’은 무성한 털북숭이 원숭이 형상을 하고 있다. 침팬지와 부시를 사진으로 비교한 원조는 “부시냐 침팬지냐?”라는 제목의 한 미국 사이트(www.bushorchimp.com)다. 동작과 표정이 닮은 수십종의 부시와 침팬지 사진을 나란히 놓고 네티즌들의 웃음보를 터뜨린다. 그런데 그 중 하나의 부시 사진에는 짝꿍인 침팬지 사진이 없다. 대신 이런 설명이 있다. “칸을 비워놓아 죄송합니다. 이처럼 바보스러운(dumb) 표정의 침팬지를 도저히 찾지 못했습니다.”
침팬지에게도 얼마나 끔찍한가
이 사이트의 운영자 빌 펠즈파(Bill Feldspar)는 운영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어떤 정당의 멤버도 아니고 부시에게 특별한 반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부시가 침팬지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몇몇 방문객들이 침팬지를 부시와 비교하는 일이 얼마나 침팬지에게 끔찍한 일인가를 지적했다. 그래서 침팬지 보호를 위한 사이트를 함께 소개한다.” 최근 이 사이트는 부시와 침팬지의 닮은 얼굴을 프린트한 티셔츠를 제작해 팔기 시작했다. 20달러 미만 가격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골라 주문하면 맞춤제작을 해주고 해외에서도 주문할 수 있다. 일찍이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과 현 김대중 대통령도 유력한 풍자 소재였다. 권력자에 대한 패러디는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청량음료와도 같다. 레이건과 클린턴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도 유머란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부시가 처한 지점은 아주 독특하다. 그의 언행은 비틀거나 꼬지 않고 있는 그대로만 보여줘도 일종의 ‘웃음봉’(웃음을 유발하는 몽둥이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구토봉의 패러디 버전)이다. 올 초 부시의 한국 방문 때 몇몇 언론이 “유머감각 있고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판에 박힌 듯한 인물평으로 부시를 소개한 기사를 냈다. 이 기사는 그대로 네티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이미 ‘더브야’(Dubya·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중간 이름 W의 발음을 제대로 못하는 것을 꼬집는 별명)의 일거수 일투족은 스토킹이라도 당하는 듯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 있는 그대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흑인이 많이 사는 브라질을 방문해 공식대담 도중 “이 나라에 흑인도 있나요?”라고 물은 일이나, 세계 지도자 모임에서 툭하면 다른 나라의 수도와 국가원수 이름을 까먹는 것, 잘 못하는 외국어를 지껄이거나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시샘하다 망신당한 사연, 과자를 먹다 목에 걸려 졸도한 사건까지. 심지어 부시가 팔굽혀펴기를 잘한다는 사실도 웃음거리다. 한국의 네티즌들이 부시 유머를 즐기는 이유는 뭘까? 해외 사이트까지 뒤져 부시 패러디를 퍼 나른다는 네티즌 한준호(24)씨는 “부시가 얄밉고 기분 나쁘다”고 말한다. “부시의 짓거리를 보면 정상적인 세계인의 머리에 비행기를 들이박는 것 같다. 그건 웃길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한 짓이다.” 인터넷 사이트 얄리엽기(www.yallee.net)의 운영자 윤재민씨는 “부시에 대한 유머에는 경제적·군사적 독재자인 미국의 패권주의를 경멸하고 동시에 경고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해석한다.
억압적 풍자 아닌 자기존중감의 풍자
유머나 패러디는 형식적인 인간관계나 사회관계에 지루해진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현실을 일탈할 수 있는 도피처다. 또한 권력에 억눌리면 억눌릴수록 상상력은 날개를 단다. 그러나 부시 패러디는 일찍이 딴지일보가 시작한 ‘정치적 선전선동’으로서의 패러디와는 조금 다른 맥락을 갖고 있다. 딴지일보 김어준씨는 “억압적 풍자가 아닌 자기 존중감의 풍자”로 부시 유머를 명명한다. “9·11 사건과 오노 사건 이래 꾸준히 업그레이드되는 내용을 보면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80년대 세대의 반미와는 달리, ‘니네랑 우리랑 마찬가지 아니냐? 근데 왜 그러냐? 씨바’의 수준이다. 비정치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래 갈 수 있는 힘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네티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욕은 “오노스럽다”에 이어 “부시 같은 넘”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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