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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맹산의 반딧불이야" ‘송림고교의 맹산 이전’ 막아낸 분당 주민들, ‘내셔널트러스트’운동에 돌입하다
400여 가족이 참여한 반딧불이자연학교
오후 2시 식이 시작됐다. 내빈소개와 인사말에 이어, 이영림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www.ntrust.or.kr, 031-712-5600) 운영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맹산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자연과 훼손되어가는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손으로 살리기 위한 국민운동 ‘내셔널트러스트’의 12번째 후보지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에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 트러스트운동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 맹산을 국민의 산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이 훌륭한 자연유산을 미래세대와 영원히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 운동에 여러분의 자발적인 동참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단상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앉은 200여 참가자들의 박수소리가 맹산 골짜기를 짜랑짜랑 울렸다. 봄이었지만, 오후의 햇살은 화창하다 못해 따갑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옮겨가는 나무그늘을 따라 자리를 바꿔앉으면서도 찡그림 없이 자리를 지켰다. 절반이 넘는 이들은 트러스트운동에 동참해 1구좌당 1만원씩 하는 후원금 약정서를 써냈다. 맹산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목련마을 옆의 야트막한 야산이다. 3만1천평쯤 되는 자그마한 산이지만, 분당 주민들이 이곳을 지키기 위해 들인 품은 결코 적지 않다. 1994년 분당환경시민의 모임(회장 조봉자)이 도심 안의 생태 프로그램으로 어린이환경교실을 이곳에 열었다. 2년 만인 96년 10월 송림고등학교가 맹산으로의 이전을 발표하면서 시민들의 맹산지키기 운동이 시작됐다. 분당환경시민의 모임과 맹산 인근의 아파트·빌라 주민들은 분당의 몇 안 되는 순수 자연환경을 훼손할 수 없다며 서명운동을 벌여 성남시와 환경부에 청원을 넣었다. 때로는 맹산 들머리나 학교재단 사무실 앞에서 시위도 벌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맹산에 반딧불이자연학교를 열어 관내 초·중·고 학생들과 가족단위 주민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8주 단위의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이만 지금껏 400여 가족, 700여명에 이른다. 계절별로 각종 이벤트도 마련했다. 봄엔 가족나무 한그루심기, 야생화심기 행사를 펼쳤다. 지금껏 맹산에 심어진 야생꽃 나무만 2만3천여 그루다. 8월의 반딧불이축제는 특히 맹산 보존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준 계기였다. 시민들은 맹산이 반딧불이가 자생하는 국내 몇 안 되는 청정구역임을 발견하고 맹산을 도심공간의 소중한 자연학습 공간으로 살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송림고등학교는 맹산 아닌 다른 곳에 세워졌고, 성남시는 99년 맹산을 반딧불이 복원지역으로 지정했다. 시는 재단으로부터 맹산 사용권을 인수했고,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에 공공근로 인력을 지원해 반딧불이의 서식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을 돕도록 하고 있다.
‘한 포기 심기’에서 ‘한 구좌 사기’로
내셔널트러스트는 국민신탁이라고 번역된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문화환경을 보존하고 미래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공동명의로 소유권을 확보해 개발을 저지하고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을 말한다. 1895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현재 영국 토지의 1.5%, 해안지역의 17%가 사유지에서 이 운동의 공동소유로 바뀌었다. 회원이 250만명, 연간 예산이 300억을 넘는 영국 최대의 환경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진행되는 장소는 모두 14곳에 이른다. 올해 맹산과 안양 만안구 도시공원, 부산 100만평 시민문화공원 등이 새 대상지역으로 뽑혔고, 이 중 맹산이 이날 가장 먼저 트러스트운동 돌입을 선포했다. 14곳 가운데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직영하는 곳은 동강과 신두리 해안사구, 강화 매화마름 등 3곳이다. 직영 지역은 700여 회원이 매달 3천원에서 1만원씩 내는 회비를 적립한 기금으로 운영된다. 재산이나 월수입의 1%를 정기적으로 출연하도록 하는 ‘1% 클럽’ 제도와 기업 기부도 주요한 재정대책이다. 나머지 11곳은 지역별로 별도의 트러스트운동 기구가 만들어져 내셔널트러스트운동과 연계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날 맹산 선포식에 참석한 박석근 내셔널트러스트운동 사무처장은 “2030년까진 전국 100곳으로 대상지역을 늘릴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선 지역별 연계 사이트의 활성화가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1만명 후원자 1억원 기금조성”이 첫 목표
맹산은 지난해 말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주최한 내셔널트러스트 후보지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으며 내셔널트러스트운동으로의 전환을 준비했다. 김경희 분당환경시민의 모임 사무국장은 “비록 맹산이 전국적으로 자랑할 만한 절경을 지닌 곳은 아니지만 도심 한가운데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드문 공간이라는 점에서 내셔널트러스트 대상지역으로 손색이 없다”고 자랑했다. 정병준 운영위원장은 “지금껏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이른바 국가적 중요성을 지닌 장소를 구매대상으로 삼았지만, 우리는 시민들의 접근성과 참여 가능성이라는 점을 새롭게 부각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석근 사무처장은 “시민 대상의 각종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천혜의 적지라는 점과 이를 지켜내려는 시민들의 열정이 분출하고 있다는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수상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선포식과 함께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에 전달된 트러스트 구좌(1구좌당 1만원) 수는 모두 150여개에 이른다고 주최 쪽은 밝혔다. 5구좌를 개설한 김명숙 환경부 장관이 1호 기증자가 됐고, 김병량 성남시장도 직접 맹산을 찾아 1구좌 약정서를 썼다. 지난해 엄마, 아빠와 함께 반딧불이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하목민(분당 미금초등교 3)양은 식구 수에 맞춰 4구좌를 약정했다. 하양은 “아파트숲만 보다가 이곳에서 뛰놀며 너무 재미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며 “내셔널트러스트 후보지가 됐다는 소식에 뭔가 돕고 싶어 엄마, 아빠를 졸랐다”고 말했다. 성공까진 아직 맹산트러스트운동이 갈 길이 멀다. 이 정도 모금으론 맹산 전체를 사들인다는 원대한 계획엔 턱없이 모자란다. 김경희 사무국장은 “산 전체를 사들이는 데는 수십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병준 운영위원장은 “앞으로 1만명의 후원자를 모아 1억원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첫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그 돈으로 산 전체를 공공소유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나아가 시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포식이 끝나고도 주민들은 쉽사리 맹산을 떠나지 않았다. 몇몇 가족은 반딧불이 생태지역으로 조성된 다락논과 웅덩이 안에서 꼬물꼬물 헤엄치는 올챙이를 신기한 듯 구경했다. 일부 주민들은 “내가 심은 꽃나무가 잘 자라도록 물을 더 주고 가야겠다”며 양동이를 챙겼다. 말랑말랑한 비닐봉지처럼 생긴 도룡룡 알집을 손으로 만지던 원은홍(성남 희망대초등교 2)양은 “맘대로 물장난, 흙장난해도 나무라지 않아 너무 신난다”며 함박 웃었다. 채규철 두밀리 소나무 자연학교 교장은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지역주민들의 참여 속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며 “반딧불이학교의 사례가 트러스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져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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