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사회] 징계위 가면 죄를 면한다?각종 비위사실에 솜방망이 내부 징계… 외부인 참여 통해 봐주기식 행태 없애야
“변호사가 업무의 내외를 막론하고 변호사법이나 변호사윤리장전 등을 위반하는 비위사실이 있을 경우 이를 조사하여 징계조치를 함으로써… 자체 정화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대한변호사협회 안내문) 지난 2월19일 대한변협 징계위원회가 내린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 관련 변호사 3명에 대한 징계 결정은 변협이 과연 이런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변협은 ㄱ변호사에 대해서는 ‘고문변호인으로서 정당한 조력 범위를 벗어난 대책을 건의한 점’을 인정해 견책(주의 조처)을, ㅇ법무법인 대표 ㅇ변호사와 이 법무법인 소속 ㄱ변호사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을 이유로 ‘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견책은 제명, 정직, 과태료에 이은 가장 가벼운 징계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변호사들에 면죄부
우선 이 사건을 들여다보자. 대한변협 윤리위원회는 지난해 7월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 당시 사건 축소·은폐를 위해 현대계열사 임직원들에게 허위진술을 하도록 사주한 혐의로 이들 변호사 3명을 징계위원회에 넘겼다. 사실 징계는 참여연대가 요구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현대쪽 주가조작사건 대책회의 기록을 토대로 “이들이 현대그룹 대책회의에 3차례 참석하면서 시나리오별 검찰수사 대응책과 각각의 장·단점 등을 분석한 뒤 최선책으로 허위진술을 하라는 안을 건의했다”며 변협 윤리위에 제소했다. 일반적인 법률자문을 넘어서, 수사기관에서 이렇게 대답하라는 시나리오별 안을 작성해 사건 은폐·축소를 꾀했다는 것이다. 변호사 윤리규칙 15조는 ‘변호사는 위증을 교사하거나 허위의 증거를 제출하게 하거나 이러한 의심을 받을 언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문제가 된 변호사들의 행위가 형사적 책임까지 물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1명 견책, 2명 무혐의’라는 이번 징계결정을 납득할수 없다며 별도로 검찰에 고발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고발을 위해 필요한 변협 징계위원회의 결정문은 징계결정 이후 20일이 다 돼가지만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변협의 징계결과는 즉각 법무부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며 “징계결정이 내려진 사실을 알고 변협에 결정문을 요구했으나 아직 결정문 작성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내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징계위 결정에 대해 대한변협은 징계위원회의 고유권한이므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대한변협 하창우 공보이사는 “징계위원들이 토론해서 결정한 것이며 두 변호사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혐의없음 결정이 내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애초 이번 사건 조사를 맡았던 대한변협 윤리위원회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변협 윤리위원장 고영구 변호사는 “징계위가 내린 결정에 대해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우리 윤리위는 나름대로 조사한 결과 세 변호사가 모두 징계를 받을 만하다고 판단해 징계위에 징계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윤리위원회 다른 변호사도 “문제가 된 세 변호사들의 소명을 들었지만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며 “세 변호사 모두 주가조작사건 자체를 은폐하려고 시도한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고 덧붙였다. 물론 윤리위원회의 판단과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동업자 봐주기’ 또는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뭘까. 이와 관련해 징계위의 인적구성이 징계의 ‘원천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변협 징계위는 대한변협에서 선출하는 변호사 3명, 판사 2명, 검사 2명, 법학교수 1명, 외부인사 1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징계위원 9명 중 7명이 법조인인 셈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이재명 간사는 “법조인 중심으로 징계위원회가 구성된 탓에 공정하고 실효성 있는 징계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비법조인이 다수를 차지하도록 징계위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조인이 동료 법조인을 징계하는 데서 오는 봐주기를 피하려면 독립적인 징계위가 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변협 조사과 관계자는 “징계위에 법조인이 너무 많아 비법조인을 늘리자는 문제에 대해 변협 내부에서 검토해본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변협쪽은 오히려 “징계위원 9명중 변호사는 3명뿐이지 않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특히 변호사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 관계에 있다는 점은 비법조인 중심의 독립적인 징계위 구성의 필요성을 더해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문제가 된 세 변호사 모두 대한변협에서 주요 자리를 맡고 있다. ㄱ변호사는 변협이사회 이사이자 법률구조사업회 위원이고 또다른 ㄱ변호사는 법제위원회 위원, ㅇ변호사는 세제위원회에 속해 있다. 윤아무개 변호사는 “같은 변호사들이 동료 변호사를 징계하다보니 솜방망이 징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징계결정과정에 법률 소비자쪽에서 의견을 제시하거나 직접 참여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울타리 정서에 징계 절차는 있으나마나
대한변협은 지난해 징계위원회를 열어 정직 3명, 과태료 6명, 견책 4명 등 모두 13명의 변호사를 징계했다. 변호사 선임비를 받은 뒤 소송을 진행시키지 않거나 의뢰인이 맡긴 공탁금을 빼돌린 변호사에게 정직 3∼6개월, 사건 수임 뒤 소장을 제출하지 않거나 변호인선임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변호사에 대해 200만∼500만원의 과태료, 조정결과를 통보해주지 않아 의뢰인이 이의를 제기할 기간을 놓치게 만든 변호사에게 견책 등의 조처를 취했다. 그러나 모두 의뢰인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비리임에도 제명 징계는 한건도 없었다. 물론 징계가 변호사조직의 내부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조직을 잘 모르는 외부인을 징계위에 참여시킬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가벼운 징계 처분이, 되풀이되는 의뢰인 피해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독립적인 징계위는 그만큼 더욱 필요하다. 솜방망이 징계는 교원 징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99년 서울 강남지역 고액과외 사기사건에 연루된 대부분의 공·사립학교 교사들은 서울시교육청이 해당 학교법인에 요청한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시교육청은 당시 이 사건에 얽혀든 124명의 사립학교 교사 중 10명에게 파면, 20명에게 해임을 요청했다. 그러나 실제 파면조처된 교사는 한명도 없고 10명만 해임됐다. 이유는 사립학교 교원 징계권이 학교법인에 있기 때문이다. 시교육청 감사실은 “당시 해당학교에 파면이나 해임 등 징계수위를 구체적으로 요구했던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징계수위를 결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학교법인의 판단에 맡길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미온적인 징계에 그치는 게 사립학교뿐만은 아니다. 국·공립도 마찬가지다. 당시 시교육청 감사계는 비위사실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공립학교 교사 1명에 대해 파면(신분 배제는 물론 퇴직금까지 불이익을 줌)을 요구했으나 정작 시교육청 자체 교원징계위에서는 해임(신분만 배제됨)으로 징계가 낮춰졌다. 물론 징계수위를 낮춘 이유가 나름대로 있겠지만, 여기서도 징계위의 인적구성이 문제로 등장한다. 교육공무원징계령 4조는 ‘징계위원회 설치기관의 소속공무원 중에서 징계위원을 구성하도록’해 징계위원을 교육청 내부인사로만 구성하도록 하고 정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박상렬 교원정책과장은 “교원인사위원회는 인사위원회법에 최근 외부인사 참여가 제도화되면서 대학교수와 변호사 등 2명이 외부인사로 들어오지만 징계위원회는 외부인사가 한명도 없다”며 “법에 정해진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직자 징계처분은 어떤가. 5급 이상 공직자는 국무총리실 소속 중앙징계위원회에서, 6급 이하는 해당부처안의 보통징계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한다. 중앙징계위는 행자부장관을, 보통징계위는 각 부처 차관을 위원장으로 4∼7명의 고위공직자들로 구성된다. 특히 국가공무원 징계위가 민간위원을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반면 지방공무원법은 지방공무원 징계 때 민간위원을 징계위원으로 위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정자치부 복무조사담당관실은 “지방공무원은 주민들과 직접 부닥치기 때문에 민간 징계위원을 위촉하고 있다”며 “그러나 국가공무원의 경우 시민단체나 법조계에 징계위원을 위촉하면 그들한테 로비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위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포상감경 제도로 징계 수위 낮아지기 일쑤
특히 공직자 징계는 흔하게 수여되는 훈장공로를 정상참작해줄 수 있도록 한 이른바 ‘포상감경’ 제도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되고 있다. 공직자 징계규정은 5급 이상은 총리표창 이상, 6급 이하는 차관급 표창 이상의 포상전력이 있을 경우 한 단계 아래 징계조처를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감사원 노승대 국장은 “우리가 공직자 감사결과에 따라 해임을 요구하면 중앙징계위에서 포상감경을 이유로 한 차례 낮아지고 당사자가 억울하다며 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요구하면 또 감봉 정도로 낮아져 당초 징계요구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징계 당사자 구제절차인 소청심사위에 따르면, 전체 심사사건 가운데 징계수위를 낮춰주거나 아예 징계를 취소해준 경우가 40%에 이른다. 그나마 감사원이 요구한 징계는 나중에 집행전말보고서라는 징계처분 결과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어서 징계위원들이 ‘적정한 징계’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비리를 예방하는 데 일벌백계나 무거운 징계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외부인 참여없이 내부 인물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징계위원회는 봐주기로 흐를 수 있고 비리를 막기보다는 봉합하는 기구로 노릇할 공산이 크다. 조직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한 탓에 무른 징계위원회 역시 징계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