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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사람이야기 등록 2002.07.03(수) 제416호

[사람이야기] 한국·독일 부부의 월드컵 나기

독일 슈바인푸르트에 사는 한보영(34)씨는 지난 6월25일 새벽 4시(이하 현지시각)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 잠깐 눈을 붙였나 싶은데 아침부터 전화가 쏟아졌다. 방송국에서, 신문사에서, 친구들한테서,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한테서까지. 사람들은 궁금했다. “누가 어느 쪽을 응원할 것인가?”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전형적인 독일인과 결혼해 산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미카엘(9)과 딸 샤론(7)이 있다.

이날 오후 1시30분 한국 대 독일 월드컵 4강전이 열리기 전까지는 복잡할 것도, 궁금할 것도 없었다. 한씨는 물론, 가족 모두 당연히 한국을 응원했다. 그러나 독일전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그렇다면 한씨만 한국팀을 응원했을까. 아니다. 남편만 독일팀을 응원했다. 아내와 두 아이의 구박을 받으며. 놀랄 일이 아니다. 미카엘은 자신이 “100%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아이다. 샤론도 마찬가지다.

유전학적으로는 ‘50% 한국인’이고, 국적은 ‘100% 독일인’인 이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까닭은 엄마에게 있다. “한국·독일 부부의 아이들이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창피해하고, 자살까지 시도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고민 끝에 ‘엄마가 자랑스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씨는 그때부터 자랑스런 엄마가 되겠다는 목표로 유치원, 학교, 교회 할 것 없이 찾아다니며 피아노를 치고 합창도 하고 자원봉사도 했다.

“한국을 유난히 그러워하고 사랑하는 극성엄마 때문에 아이들이 엄마의 나라를 자랑스런 조국으로 여기게 되었나 봐요.” 그러나 엄마 때문에 한국을 사랑해온 아이들은 이제 한국축구와 붉은악마 때문에 사랑하게 되었다.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두 아이는 붉은악마 티셔츠만 입고 다녔고, 독일전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입고 다니는 미카엘에게 “옷이 너무 더럽다”는 핑계를 대고 겨우 갈아입혔다. 샤론은 자전거에 태극기를 꽂고 다닌다.

“예전 같으면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라고 묻던 사람들이 이젠 ‘한국인이냐’고 물어요.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국축구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한씨와 두 아이는 4년 뒤 독일에서 열릴 월드컵을 벌써부터 손꼽는다. 그땐 분명히 한국이 우승컵을 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그럼 남편은? 남편 라이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란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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