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국보법 허무는 아줌마의 뚝심

가출한 아줌마는 푸른 수의를 입은 채 웃고 있었다. 2월5일 명동성당 들머리의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무기한 감옥농성장’에서 만난 주부 한희숙(47)씨. 새해 첫날부터 남편의 만류를 뿌리치고 명동성당 들머리로 가출을 감행한 아줌마는 ‘아직도’ 그곳에 있다.

가출사유는 국가보안법. 한씨는 “특별한 운동경력도, 가족 중에 국가보안법으로 고생한 사람도 없다”며 스스로 “그저 평범한 주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연말, 신문에 실린 인권활동가들의 국가보안법철폐를 위한 단식농성 소식은 이 평범한 아줌마의 ‘양심’을 뒤흔들었다. 신문을 본 한씨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뜨슨 밥 먹기가 죄스러워” 옷 보따리를 챙겨들고 무작정 명동성당 들머리를 찾아갔다. 집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것보다 낫다 싶어서였다. “한 사흘만 버티자”며 시작한 단식농성이 “하루만 더…” 하다보니 어느새 단식농성단이 해체하던 1월10일까지 이어졌다. 농성중에 남편이 찾아와 “이게 무슨 짓이냐?”며 귀가를 종용했지만 한씨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채 몸을 추스르기도 전, 또다른 소식이 그를 명동성당으로 불러냈다. 1월18일, 한총련 정치수배자들이 중심이 돼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무기한 감옥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하루만 들러보자”며 집을 나섰지만, 감옥농성을 하는 젊은 정치수배자들과 출소 장기수들을 보니 하루만으로 끝낼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아침 8시면 경기도 군포의 집을 나서 저녁 8시까지 감옥농성을 하고,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매일 되풀이하고 있다. 2월5일로 벌써 19일째 개근이다. 열흘 동안의 단식으로 바닥난 체력도 그를 말리진 못했다. 한씨가 거리에서 국가보안법과 싸우는 사이 “걸어다니는 조선일보”라 불렸던 남편도 조금씩 변해갔다.

“남편이 요즘 ‘내 색깔을 잃고 회색분자가 됐다’며 웃어요. 남편은 평생 <조선일보>만 봐온 사람이거든요. 예전에 TV 뉴스에 국가보안법 얘기만 나오면 ‘있어야 한다’고 우기는 남편과 자주 다투기도 했는데…. 얼마 전 드디어 남편이 <조선일보>를 끊었어요.”

한희숙씨는 인터뷰 내내 “저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은데…”라며 민망해하면서도 “좀더 많은 아줌마들이 짬을 내 이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밝힌다. 그리고 “올 겨울 몸은 춥고 고달팠지만 어느 겨울보다 마음만은 따뜻했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