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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경제 등록 2003.12.17(수) 제489호

[경제] 두렵다, 일자리 없는 성장

경제지표가 좋아지는데도 체감경기는 여전해…끝없는 고용감소 현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나오는 국내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경기 회복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지표상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춥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국민소득(GNI) 잠정추계’ 결과를 보면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우리나라 명목 국민총소득은 452조740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7% 늘었다. 그러나 물가상승 등을 감안한 실질 국민총소득(국민소득의 실제 구매력 지표)은 321조3783억원으로 0.2% 오히려 감소했다. 실질 국민총소득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 1980년(-3.4%), 98년(-9.8%)에 이어 세 번째다.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이다.

비경제활동인구도 급격히 증가

실물경기와 체감경기간의 이런 괴리현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무엇보다 일자리가 늘지 않아 실질소득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감소는 한눈에 나타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올해 취업자 수를 지난해(2216만9천명)보다 3만7천명 감소한 2213만2천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연간 취업자 감소는 외환위기가 닥친 직후인 98년 취업자 증가율 -6.0% 이후 처음이다. 고용흡수력이 높은 내수 부문이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게 주된 원인이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수는 1년 전과 비교할 때 지난 4월 -0.7% 감소한 이래 10월까지 지속적으로 줄었다. 11월 취업자는 2242만5천명으로 10월에 비해 2만7천명(-0.1%)이 또다시 감소했다.

경제활동인구 측면에서 봐도 취업자 감소 현상은 두드러진다. 올해 15살 이상 생산가능인구(3733만명)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0% 증가한 반면, 경제활동인구(2290만명) 증가율은 0.1%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자리 감소로 인해 노동시장 진입을 아예 포기하거나 노동시장에서 퇴장해버리는 비경제활동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비경제활동인구(1443만명)는 지난해보다 40여만명이나 더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300명 이상 대기업의 일자리는 지난 97년 180만9천명에서 2002년 162만4천명으로 줄었다.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과 제조업에서 소수의 상위 ‘괜찮은 일자리’만 남기고 나머지 일자리는 모두 털어버리는 식의 중하위 일자리 소멸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며 “중산층적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보수와 고용안정성을 보장하는 대기업·금융업·공기업의 일자리가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제조업 일자리는 지난해 3분기 이후 분기마다 -0.3∼-1.7%까지 크게 감소하고 있는데, 지난해 4분기 425만1천개에서 올 3분기에 416만6천개로 10만개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여러 경제지표의 시그널처럼 실제로 내년 한국 경제가 확장 국면에 진입하면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될까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내년에 경기가 살아난다 해도 일자리가 동반 증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가 이른바 ‘일자리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 시대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유럽·일본 등 세계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다수 국가에서 ‘일자리 증가 없는 성장’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는 전 세계 경제학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경제의 성장과 고용은 어떤 상황인가. 한국 경제는 수출, 민간소비, 투자 중에서 수출만이 나홀로 성장을 이끌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출이 증가하면 기업들이 생산설비 확충을 위해 투자를 늘리고 이에 따라 고용이 확대되면서 소득이 늘어나고 이것이 다시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수출 증가가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소비·투자를 촉진해 내수 경기를 동반 상승시키는 것이다.

정부, 사회간접투자 활성화 방침

그러나 수출이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내수 경기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실제로 수출과 내수의 연결고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이 국내 생산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우선, 정보기술(IT) 위주의 수출품목 교역조건을 보자. 생산설비와 중간재를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이 아무리 호조를 보여도 내수 부문으로 파급되는 효과가 적다. 민간소비와 투자가 부진한 탓에 우리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실제로 국내의 다른 원자재 및 중간재 생산 기업은 수출 증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수출의 고용유발 효과도 내수 부문에 비해 상당히 작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수출·소비·투자가 각각 10억원 늘어났을 때 이것이 고용을 유발하는 효과는 98년 현재 수출 12.3명, 소비 17.9명, 투자 18.3명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수출 증가에 따라 투자압력이 상승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설비투자 확충 대신 공장 가동률을 높여 대응하고 있는데다 수출이 성장과 내수에 기여하는 정도가 계속 축소되고 있다”며 “수출 증가로 성장률이 높아진다 해도 국내 고용 상황이 개선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목표치를 설정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달성하는 인플레이션 목표관리(inflation targeting)처럼 정부가 ‘고용 타게팅’ 정책을 세우기는 어렵다. 통화량은 정부가 개입해 목표대로 끌고 나갈 수 있지만 고용은 경제활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도 ‘일자리 없는 성장’이 고착화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임종룡 재정경제부 종합정책과장은 “내년에 단기적으로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은 결코 쓰지 않을 것”이라며 “고용을 늘려 소득 능력을 키우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당장 기업들이 고용창출 조건인 설비투자 확충에 나서기 어렵다면 정부가 우선 적자재정을 편성해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정부지출 확대로 고용이 창출되면 소득이 증가하고 이것이 소비 증가를 가져와 경제 전체에 파급효과를 낳게 된다. 일자리 없는 성장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경기회복을 지연시키는 새로운 복병으로 등장하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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