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신용카드사 위기는 정책당국의 무분별한 대응과 카드사의 엉터리 영업이 빚어낸 결과
지난 2002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일컫던 신용카드사들이 올해 상반기에는 무려 3조원 이상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금융시장은 물론 국가경제 전체의 골칫거리로 원성을 사고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국내 1위의 자산규모와 회원수를 자랑하는 LG카드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져들어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현금서비스에 의존해 돌려막기를 하던 100만여 카드회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진/ 지난 12월13일 ‘하이페밀리’ 사랑의 가정연구소 소속 회원들이 신용카드 안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신용카드사들은 회원들에게 소득한도를 훨씬 넘어서는 현금서비스를 제공했다.(류우종 기자)
대출업무에만 열을 올리더니…
LG카드 사태로 대표되는 카드사 및 카드업의 문제를 지켜보면, 이 속에 정책당국의 경제정책과 금융감독, 금융업자의 금융영업과 위험관리, 개인들의 신용관리 등의 혼란과 미숙이 총집결해 있는 것 같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여러 경제 문제에 자주 나타나는 정책 결정상의 무분별과 정책 대응상의 무원칙이 이 신용카드 문제에도 잘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다 아는 바와 같이 1999년과 2000년 초에 정부는 소비촉진을 통한 내수부양과 투명거래를 통한 세원확대 차원에서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1999년 5월에는 현금서비스 한도 70만원 규제를 폐지했으며, 같은해 8월에는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제도를 도입하였다. 다시 2001년 1월에는 기업접대비의 신용카드 사용 의무화, 카드영수증 복권제 등의 정책을 더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신용카드 사용 권장 정책은 카드회사들의 이해와도 일치해서 신용카드사들은 앞다투어 회원을 확보하고 이들에게 소득한도를 훨씬 넘어서는 현금서비스를 제공했다. 카드사들은 더 많은 회원 확보를 위해 개인의 신용도나 소득 정도와 같은 기본적인 요건도 고려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마구잡이로 회원확대 경쟁을 펼쳐나갔다. 그리고 신용카드의 본래 업무인 신용거래의 결제서비스보다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의 대출서비스에 열을 올렸다. 대출업무가 결제서비스보다 훨씬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사진/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골칫거리로. 유동성 위기에 빠져 현금서비스를 일시 중단한 LG카드의 서울 역삼동 본사.(한겨레 강창광 기자)
개인들은 외환위기 이후 문턱이 높아진 은행이나 서민 금융기관 대신 손쉽게 구한 신용카드로 외상구매도 하고 현금서비스나 카드대출도 받았다. 신용카드는 어떤 사람에게는 소득을 넘어서는 소비욕구를 충족해주는 역할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당장의 생활고나 만기가 돌아온 채무상환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신용카드는 정부나 개인의 욕구를 해결해주고 신용카드사에게는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는 마법의 카드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신용카드는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마법의 카드가 아니라, 카드사와 개인의 신용과 채무이행이라는 질서 있는 경제행위를 전제로 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약속증서’이다. 신용카드는 금융행위의 한 수단인 것이다. 만약 카드 사용이 무질서하게 이루어져 신용이 붕괴되면, 정부는 내수 증진은커녕 경기하강의 실패를 겪게 되고, 카드사는 영업을 위해 조달한 자금을 갚지 못해 부도와 파산에 빠지게 된다. 개별 카드사의 파산에서 멈춘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개별 카드회사의 파산은 전체 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정책당국자는 카드 사용과 관련된 정책을 추진할 때는 분별력 있게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감독이나 사후대응과 관련된 정책에서는 원칙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 또 카드회사는 현금서비스나 대출상환 위험을 잘 관리해야 하며, 개인은 상환 가능성을 고려해 신용질서를 잘 지켜야만 한다. 올해 들어 계속해서 금융시장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카드 문제는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분별력과 원칙, 그리고 질서가 동시에 무시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카드사 규제는 번번히 좌절
정부가 내수 증대를 위해 투자나 정부 지출을 증대하는 수요증대 정책을 추진할 수는 있으나, 빚 갚을 능력도 고려하지 않은 채 개인에게 빚을 얻어 소비를 늘리라고 하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정책이며, 또 카드사에게 결제서비스라는 본연의 업무보다 폭리의 대출서비스에 주력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규제 완화의 시급한 과제였는지도 의문이다. 정책치고는 너무나 분별이 없었다.
사진/ 정부의 정책 결정상의 무분별과 정책 대응상의 무원칙이 신용카드 문제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경실련의 기자회견.(김진수 기자)
카드회사 역시 재벌들의 경쟁적인 참여와 함께 외형 확대를 위한 무차별적인 회원 확대 과정에서 회원의 신용도 평가는커녕 금융업의 기초인 상환위험 관리조차 무시해버렸다. 그 결과 카드사들의 대출금은 대환대출까지 포함할 경우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29.6%나 연체상태에 빠져들었다. 실로 숙련된 금융기법도 초보적인 위험관리도 존재하지 않는 무질서한 금융 행태였다. 개인도 실직과 사업실패로 인해 현금서비스나 카드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마저 갚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는 하더라도, 무분별한 소비와 무리한 차입으로 인해 빚을 갚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아 신용질서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신용카드 문제는 다시 정책당국의 무원칙한 대응으로 인해 더욱더 강화되기조차 했다. 금융당국의 신용카드 발급 억제 정책은 규제개혁위원회가 영업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수수료율 인하와 신용한도 축소 정책은 카드회사들이 업계의 자율성을 해친다고 거부했다. 금융업의 무질서가 횡행하는데도 대응책은 추진되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해 7월에 결정했던 카드사의 대출서비스 제한(총자산의 50% 이내로) 시행 일정이 카드사의 요구로 두 차례에 걸쳐 4년이나 연기되었다. 지난 4월에는 카드사채권의 만기를 금융권 공동으로 연장해주고 투신권에 5조원의 카드채 환매자금을 지원하고, 10월에는 1년 적자에 1개월 이상 연체율에 따라 발동되던 경영개선 권고와 경영개선 요구의 적기시정 조치 조건을 폐지했다. 앞의 두 정책은 정책당국간의 의견차이나 이해당사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원칙이 지켜지지 못했고, 뒤의 완화정책들은 금융시장과 경제상황 때문에 원칙이 지켜지지 못했다.
카드문제를 해결하는 손쉬운 방법은 없다. 부도 위기에 직면한 LG카드를 시장원리에 따라 파산시킨다면, 비슷한 처지의 다른 카드사는 물론 총 22조원의 LG카드사 채권을 가지고 있는 은행과 투신사들도 유동성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약 1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돌려막기 회원들이 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되어 현재 360만명인 신용불량자 수가 400만명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금융지원과 규제완화 정책을 무원칙으로 추진해나간다고 카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올해만 해도 지금까지 네 차례 카드사 관련 금융지원과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물론 개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용불량자,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카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별력 있는 정책수립과 원칙 있는 대응책, 그리고 금융질서의 준수라는 틀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먼저 카드사의 자산부실을 정리하고 자본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채권 만기를 일시적으로 연기해주거나 추가 금융지원을 해준다 할지라도 스스로의 지불능력이 개선되지 않는 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LG카드를 외국 자본에 매각한다는 소문도 있으나, 이보다는 국내 채권은행단이 출자전환을 통해서라도 국내 카드사로 육성 발전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리고 카드 돌려막기에 급급한 잠재적 신용불량자인 저소득층과 낭비 소비자를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부채·고금리·부채누적의 악순환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카드사의 대환대출이 아닌 별도의 금융기법을 통한 저금리의 대출을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대책위에서 카드사의 영업 행태와 구조를 바꾸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카드사들은 너무 무질서하게 영업을 확충해왔고 또 지나치게 대출서비스 업무에 주력해왔다. 미국이나 일본, 캐나다 등은 카드사들의 대출서비스 비중이 20%대를 넘지 않고 있는 데 반해 우리는 현재 70% 수준을 넘어섰다. 돌려막기 회원 때문에 당장 대출서비스 수준을 감소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들을 위해 다른 금융서비스 제공 대책을 마련하고, 카드사는 본연의 결제서비스 업무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카드 문제를 다시 야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카드사와 개인의 금융질서 준수도 중요하겠지만, 정부가 더 분별력 있게 정책을 수립하고 원칙 있는 규제와 감독을 수행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복현 | 한밭대학교 교수 ·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