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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경제 | 등록 2003.10.23(목) 제4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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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삼성 수사, 의지는 있습니까 검찰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 내년으로 또 미룰 듯…경제권력에는 여전히 굽실대는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피해를 가한 때….” 형법 제355조 2항 ‘배임’죄에 관한 규정은 이렇다. 배임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형법은 이어 제 356조에서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355조의 죄를 범한 자(업무상 배임)”에게 단순 배임보다 더 무거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였다.
특가법 적용한다는 구실로…
그러나 같은 배임죄라도 더 무거운 처벌을 하도록 한 경우가 있다. ‘건전한 국민경제 윤리에 반하는 특정 경제사범’을 가중 처벌하기 위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업무상 배임죄 가운데서도 자신 또는 제3자에게 50억원 이상의 이득이 돌아간 경우, 최고 무기징역(최저 5년)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에게 지난 1996년 말 대규모 전환사채를 싼값에 넘긴 일은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근 사건 관련자들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언뜻 보면 검찰의 처벌 의지가 강해 보인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오히려 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은 최근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 처리를 내년으로 미루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검찰 관계자는 “올해 안에 끝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된다”고 말했다. 검찰의 논리는 이렇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거래에서 이재용씨의 이득액이 50억원 미만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몇천억원이라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이다. 아예 죄가 안 되거나, 죄가 된다면 이득액이 50억원이 넘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 검찰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공소시효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득액이 50억원 이하인 형법상의 배임죄라면 공소시효가 7년이다.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이재용씨에게 넘긴 것은 지난 96년 말이다. 올해 말이면 7년이 지나 그 이후에는 형법상 배임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 실제 검찰이 올 들어 부랴부랴 수사를 재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한다는 이유를 들어 수사를 연기했다. 공소시효가 10년이므로 수사 마무리가 급할 것이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기소 여부를 떠나, 이재용씨가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인수함으로써 생긴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 되리라는 검찰의 해석은 일반의 상식과 맞는다. 에버랜드가 이재용씨에게 전환사채 96억원어치를 넘길 때 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격은 7700원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에버랜드 주식이 거래된 가격은 주당 10만원, 계열사의 회계장부에 기록된 가치는 23만원대였으므로, 그 차이를 감안하면 재용씨의 이득액은 최소한 1천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의 생각일 뿐, 엄밀한 법의 잣대로 보면 해석이 다를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법원이 이득액을 50억원 미만으로 보고 업무상 배임죄만 인정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검찰은 이런 상황에도 대비하는 것이 온당하다.
법원에서 특가법 적용 안하면 처벌 못해
검찰은 수사 유보의 또 다른 이유로 SK 비자금 수사 등 대기업 관련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다 경제 사정이 나쁘다는 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검찰이 ‘뜨거운 감자’인 이번 사건에서 또 한번 시간을 벌어보자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더 많다. 곽노현 교수 등 전국의 법학교수 43명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을 배임 혐의로 고발한 것은 지난 2001년의 일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수사를 2년 동안이나 미적거렸다. 이는 사건 관련자를 기소할 경우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발당한 핵심 인사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검찰이 만약 그를 기소할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중범죄인을 불구속 기소하기도 어렵다.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의 수사 유보는 결국 삼성의 의도대로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예 무죄로 결론을 내리지 못할 바에는 어떻게든 지금의 수사팀에서 결론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삼성의 목표라는 것이다. 삼성의 의도는 단순히 시간을 벌고자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는 지난 6월 법원이 SK그룹의 주식 맞교환 사건에 대한 배임 혐의 기소에 대해 내린 판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에 대한 배임 혐의 기소 사건은 최 회장과 그가 대주주로 있는 SK C&C가 워커힐호텔 주식과 SK(주) 주식을 맞교환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이 소유한 워커힐호텔 주가를 지나치게 높게 산정해 SK(주)쪽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SK(주)는 주식 맞교환 당시 워커힐호텔의 주당 순자산가치를 3만1150원으로 평가한 뒤 상속 및 증여세법에 따라 30%를 할증해 주당 4만495원으로 산정했다. SK(주) 주식에 대해서는 주식시장 거래가격에 20%를 할증했다. 문제의 핵심은 비상장사인 워커힐호텔의 주가다. 이 사건은 워커힐호텔이 비상장사여서 주식가치 산정 문제가 쟁점인 에버랜드 전환사채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SK쪽은 법정 공방에서 워커힐호텔 주식은 합리적인 가치 산정 기준이 없어 상속세법에 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거 SK쪽이 금융감독원에 워커힐호텔의 주당 순자산가치를 1만5612원으로 공시한 적이 있어 문제가 됐다. 법원은 주식 맞교환 때 워커힐호텔 주가를 높인 것을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임의로 가치평가를 변경한 것이라고 보았다. 법원은 “주식 맞교환이 최 회장의 SK 그룹 경영권 유지를 목적으로 하였으며, 워커힐호텔 주식의 적정거래 가격에 대한 평가를 거치지 않고 과대평가해 SK C&C에 손해를 끼쳤다”고 유죄 판결했다. 법원의 판결에서 주목되는 것은 ‘유죄’가 아니다. 법원이 회사쪽의 피해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원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배임죄 대신 형법상의 배임죄를 적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권에만 날 세울 것인가
만약 이런 판결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하면 이해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에버랜드 경영진과 관련자들이 전환사채를 싼값에 제3자인 이재용씨에게 넘김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피해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하기 어렵다면 형법상의 배임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검찰이 올해 안으로 기소를 하지 않을 경우 형법상 배임죄는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결국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해 기소를 했다가는 죄가 있어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검찰이 최태원 회장과 SK(주) 사이의 주식 맞교환에 대한 법원 판결을 염두에 두고, 삼성을 돕기 위해 수사 마무리를 의도적으로 연기했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유보 뜻을 내비치기 전부터 ‘수사 본격 착수’라는 언론보도를 극구 부인해왔다. 또 핵심 관계자들을 소환하지 않으면서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말만 되뇌는 등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력에는 ‘원칙적인 수사’를 강조하는 검찰이 경제권력에는 여전히 굽실대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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