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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이라는 이름의 절망 원청사의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와 노조활동 와해 압력에 고통받는 하청 노동자들
지난 7월9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국내 최대의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위원장 안기호)이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받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조직대상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안에 있는 1만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지난 11일까지 500여명이 조합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노조 설립 직후 현대자동차쪽은 “이들은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현대차의 사내 하청업체들에 소속된 노동자이기 때문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라는 명칭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조설립을 주도해온 양준석(울산노동자신문 편집인)씨는 “현대차 비정규직은 말이 하청업체 소속이지 실질적으로 보면 작업과정에서 현대차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름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며 “하청업체뿐 아니라 현대자동차도 교섭대상”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납품단가 후려쳐
원청에 종속된 하청업체는 크게 사내 하청업체와 사외 하청업체로 나뉜다. 원청으로부터 사실상 지휘·감독을 받는 사내하청과 달리, 외부 협력업체는 독립된 생산설비를 갖고 있는 개별기업이란 점에서 분명히 성격상 차이는 있다. 그러나 ‘하청’이란 말 대신 다소 고상한 ‘협력업체’란 표현을 쓰곤 하지만, 그렇다고 원·하청간 불평등 구조라는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선 외부 협력업체와 대기업 원청과의 관계부터 보자. 여기서 나타나는 원청의 대표적인 횡포는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와 노조활동 방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지난 3월 중소협력업체 24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원청으로부터 불공정 거래를 당했다는 중소기업(전체의 22.3%)들은 ‘매년 단가인하 요구’(43.3%)를 가장 흔한 유형으로 꼽았다. 원자재값이 뛴 만큼 납품단가를 올려줄 생각은커녕 오히려 원청이 납품단가를 해마다 후려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기업협력팀 장윤성 과장은 “원청 대기업들이 원가절감을 이유로 협력업체에 납품단가를 5∼10%씩 더 깎겠다고 일방 통보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주)만도의 한 노동자는 “원청이 만날 물건값을 깎아 회사쪽의 지급여력도 없다. 대기업이야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대신 그만큼 하청의 납품단가를 인하해 부담을 떠넘기면 된다”고 한탄했다. 원·하청 불평등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바탕에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금속노조연맹에 따르면, 원청인 현대자동차 안에는 전문적으로 납품단가를 인하하는 부품원가관리팀이 구성돼 있다. 여기서 하청업체의 납품단가를 분석한 뒤 해마다 납품단가를 낮춰 책정하고 있다. 금속노조연맹 김호규 사무처장은 “납품비용 절감은 하청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 노력에 따른 결과다. 부가가치는 하청 노동자들이 이룬 것인데도 원청이 멋대로 납품단가를 깎으면서 하청 노동자들을 짜내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수직적 구조 속에서 원·하청 동반자 관계는 구호에 불과할 뿐, 하청업체는 원청의 얼굴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울산 현대중공업에서는 경비반장 자녀 결혼식에 들어온 1억여원의 축의금을 둘러싸고 말썽이 빚어진 적이 있다. 수많은 현대중공업 납품업체들이 급행료 명목으로 축의금을 갖다바친 것이다. 이렇듯 납품단가가 해마다 떨어져도 납품계약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청에 상납해야 하는 고리 속에서 협력업체 노동자들한테 돌아갈 몫은 그만큼 더 줄어들게 된다.
한쪽에선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데…
사내 하청 노동자는 외부 협력업체 노동자에 비해 원·하청 종속관계에 따른 피해를 더욱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같은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힘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신분적 차별’로 인한 저임금과 박탈감, 나아가 인간적 모멸감까지 느끼며 일해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몇년간 사상 최대 순이익을 내면서 해마다 200% 안팎의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순이익이 난 요인으로 수출증가를 들 수 있지만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나 사내 하청 노동자의 저임금이 기여한 바도 크다. 그러나 성과급 잔치에서 소외된 하청 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또 한번 깨달으며 한숨만 내뱉을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회사창립일에도 쉴 수 없고, 명절 선물은 물론 경조사 특별휴가에서도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원·하청 관계라고 하지만 ‘하청’은 형식에 불과할 뿐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에 완전히 종속돼 있다. 무슨 말일까? 사내 하청업체들은 사업자등록증만 갖고 있을 뿐 자기 돈은 거의 투입하지 않고 사람만 원청에 공급하는 인력파견 사업을 하고 있다. 하청 노동자의 모든 작업 과정도 사실상 원청이 지휘·감독·통제한다. 현행법상 제조업종의 근로자 파견행위는 금지돼 있는데도 원청 대기업들이 ‘위장된 도급’ 형태로 불법파견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현대모비스 하청업체인 ㄱ기업의 해고 노동자 이영도씨는 “현대모비스쪽이 작업을 감독하므로 하청업체 사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청 사장이 특별히 하는 일도 없다. 원청과 하청 사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사내 하청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은 임금으로 더 힘들고 위험한 일을 시키고, 필요할 때 계약해지를 통해 언제든 내쫓을 수 있기 때문에 원청이 불법파견 형태로 사내 하청 노동자를 쓰고 있다는 얘기다. 원청으로부터 사내 하청 노동자 1명당 한달 10만원 정도씩 챙기는 하청업체 사장은 ‘바지사장’에 불과하다.
노동자 내부에서 문제 해결 노력도
흥미로운 건 원·하청 기업간 불평등 관계에서 비롯되는 하청 노동자들의 고통을 노동자 스스로 해결해보자는 흐름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교섭 사상 처음으로 비정규직 성과금 200% 지급 등을 따낸 데 이어 올 임단협에서는 “사내외 협력업체에 대해 적정한 납품단가를 보장할 것”을 별도 요구안으로 제출했다. 이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결성 역시 원·하청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자 내부의 노력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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