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동북아 네트워크’ 성과 지켜보라 청와대 입성한 재야 경제평론가 정태인씨가 말하는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구상과 경제정책
대통령 자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기획운영실장(1급)으로 내정된 정태인(44)씨는 이미 업무를 시작했지만, 명함도 없고 보수도 받지 못한다. 신원조회가 끝나지 않아 정식임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평론가로, 기독교방송 <시사자키>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경제1분과)으로 참여했다. 특히 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몇번 경제관료들과 ‘입씨름’을 벌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가 기획을 맡은 ‘동북아경제중심’ 구상은 저성장시대로 접어든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대기획이다. 정씨를 만나 청와대의 동북아 구상과 노무현 정부 출범 뒤 경제정책에 대해 들어봤다. 괄호 안의 설명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것이다.
김진표씨와 부딪친 사연
-실리콘밸리를 공부한 것으로 안다. =대학원에서는 원래 경제사를 전공했다. 실리콘밸리에 대해서는 서울대 지원으로 보름간 공부한 적이 있고, 이후 5개월여간 미국에 가서 연구했다.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다. (정부의 동북아 구상은 실리콘밸리와 같은 광역거점 조성이 핵심적 요소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은 =2001년 가을에 한국사회연구원 후배 하나를 만났는데, 그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스스럼없이 노무현이라고 대답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노무현을 돕고 있었다. 그가 소개해서,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사람들을 모아 주제를 정해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가 후보가 되면 당선은 된다고 봤기 때문에 후보가 된 뒤에는 따로 돕지 않기로 했다. 경제공약도 다른 분들이 짰다. 그런데 함께 노무현을 돕던 문성근씨가 노사모로 나서고 유시민씨가 개혁당을 만들면서 배신()을 하더라. 나중에 노 후보가 TV토론을 도와달라고 해서 더 돕게 됐다. -한국사회연구원 연구원으로 일했고, 대안연대 기획위원으로도 참가했다. 경제철학이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한사연에는 1988년부터 참여했다. 박현채(민족경제론의 이론적 선구자) 선생이 이사장이셨는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말고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것을 연구하자는 게 한사연 발족 취지였다. (대안연대는 2001년 신자유주의로 흐르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던 학계인사들이 중심이 돼 구체적 ‘대안’을 내놓자는 뜻을 내걸고 출범했다.) 내 시각은 주류경제학과 차이가 있고, 마르크시스트와도 많이 다르다. 제도주의 학파를 많이 수용했다. -인수위원 시절에 현 경제부총리인 김진표 인수위 부위원장과 부딪친 일이 있다. =집단소송제를 도입할 경우 출자총액제한을 완화할 수 있다는 발언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다. 두 제도는 서로 연관이 없는데 한 가지를 강화한다고 다른 하나를 완화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경제팀 인선을 보면 관료가 중심이고, 외부 인사는 일부 참여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김태동 수석이 홀로 청와대에 들어가 관료들 사이에서 고립돼 아무 일도 못하고 물러났는데, 이번에도 그러는 것 아닌가 =경제팀 인선은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누구든 관료들에게 포위되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김대중 정부 시절보다 개혁 마인드가 더 강하고, 이정우 정책실장 밑에 참모들도 많이 들어가 있다.
3중의 모럴 해저드!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초기에는 잘했다. 아니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유사 개혁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후반기 들어 경기부양책을 쓰면서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렸다. 그때 바꾼 것을 지금 와서 원점으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효율적인 시장규율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사실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정책이란 게 사라졌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식이었다. 그러면서도 막상 문제가 생기면 시장원리로 해결하지 않고 덮자는 쪽이었다. 그것이 관료적 발상이다. 시장의 해법은 폭력적이다. 국가는 그것을 완화할 의무가 있다. 시장과 제도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참여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내세웠다. 아직까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카드사 부실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가 계열사들의 증자로 메우라고 한 것도 문제를 일단 덮자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 시절과 도대체 달라진 게 뭐냐는 얘기도 있다. =개혁은 꾸준히 가게 될 것이다. 차별이나 빈부격차 문제는 김대중 정부 시절과는 거꾸로 갈 것이다. 이정우 정책실장이 직접 챙기고 있다. 부동산 과표 현실화, 소득세 감면 등 앞으로 나올 구체적인 정책을 지켜봐달라. 카드사 대책도 이해할 수 있는 비판이다. 급박한 상황이 수습되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안다. 그때 평가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SK글로벌 문제도 마찬가지다. 은행이나 금융감독원도 다 문제다. 나는 ‘3중의 모럴 해저드’라고 보고했다. 위에서부터 처벌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재산세 과표 현실화 얘기가 나오자마자, 재정경제부에서 부동산 세율 인하 얘기가 나왔다. 청와대 정책실과 재경부는 발상이 서로 다른 것 같다. =내 업무분야가 아니라서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와 경제관료들은) 발상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동북아중심 구상은 구체적으로 뭔가 =용어에 노 대통령의 경제철학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지난해 7월 만들어진 포스트월드컵 대책은 경쟁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나라의 비즈니스 허브와 경쟁해 빼앗아온다는 시각이다. 노 대통령 구상은 조금 다르다. 동아시아 국가 간 협조, 네트워크 구성이 더 중심이다. 국가 간 허브 경쟁이 있겠지만, 아시아 경제공동체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이 중국을 다녀올 때쯤엔 (경제협력에) 상당한 성과가 나올 것이다.
비즈니스 허브, 금융 중심은 곤란
-비즈니스 허브 육성전략을 놓고 인수위 때부터 논란이 있었다. =재경부가 2년간 고민해 만든 것을 인수위가 한달 만에 뒤집는다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경제특구에 대한 시각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물류는 필요하다. 그러나 금융을 중심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자유구역을 만들어 특혜를 줘가며 외자를 유치한다는 구상도 옳지 않다. 우리나라는 중국처럼 외국기업에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는 경쟁할 수 없다. 허브 안에 기술·정보 네트워크가 잘 만들어지면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들어온다. 재벌들도 폐쇄회로 안에서 움직이지 말고, 서로 기술교류를 해야 한다. 대기업들의 첨단기술연구소, 학제적 연구개발센터들이 한곳에 들어서면 저절로 기술교류가 된다. 그런 네트워크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동북아중심추진위가 할 일이다. -지역 거점들이 똑같은 산업을 하겠다고 하지 않을까 =현재 30여개의 크고 작은 거점이 있다. 핵을 중심으로 묶여 4~5개가 광역거점으로 육성될 것이다. 지역 기업인, 학계인사, 자치단체, 정부관리 등이 모여 연구와 토론을 하고 각자 계획을 만들 것이다. 물론 모두 정보기술(IT)을 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나서서 조절할 생각은 없다. 지금까지는 무조건 지원만 하고 평가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 지속적으로 평가를 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 네트워크 구성에 가장 큰 걸림돌은 =남북관계 개선이 동북아 구상의 선결조건이다. 남북관계가 나쁘면 미국이 동북아 국가 간 관계에 지속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많고, 우리나라의 대중국관계 개선도 어렵다. 대북 문제가 걸림돌이 될 때는 일본도 미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핵문제 해결은 결국 ‘비용’을 누가 대느냐는 문제로 이어질 것 아닌가 =지금까지 북한 지원비용에 대해 ‘통일비용’이라는 얘기를 써왔다. 이제는 ‘동북아 공동체 건설비용’이란 표현을 써야 할 것으로 본다. 아시아가 잘돼야 미국·유럽·동아시아 이렇게 삼각구도가 형성된다. 이런 구도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좋을 뿐 아니라, 유럽연합에도 좋은 일이다. 비용을 분담하기 위해 유럽쪽도 설득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지금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외환위기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때는 과잉투자에 따른 위기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과소투자가 문제다. 이라크 전쟁, 북한 핵문제 등으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인데 하나씩 걷히고 있다. 특별한 정책이 필요한 때가 아닌 것 같다. 다만 나빠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회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니까 그것을 막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비판보다 설득쪽에 무게 두겠다”
-말을 너무 거침없이 한다는 평가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체질적으로 내가 고위층을 싫어한다고 하더라.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었고 방송 일을 했다. 자유롭게 말하고 살아왔다. 요즘도 하고 싶은 말은 그냥 한다. 하지만 내가 남의 말을 잘 듣는다는 점도 이해해주면 좋겠다. 나는 틀렸다는 것을 알면 바로 고친다. 이정우 실장이 내게 충고를 하더라. 다른 사람도 당신과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왜 관료들이 당신만 싫어하는지 잘 생각해보라고. 비판보다 설득쪽에 더 무게를 두려 한다. 사실 나는 방송에서 훈련을 받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토론에 임할 뿐인데, 나이 든 분들은 나처럼 ‘나이 어린’ 사람과 토론하는 데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토론은 대통령이 가장 익숙하다. 토론문화가 성숙하면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고 본다.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