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경제인 ] 2002년10월02일 제428호 

눈 먼 기금, 삼키면 임자?

정보화촉진기금 집행과정의 난맥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성의한 연구는 물론이고 사업을 갑자기 중단해버리거나 사업완결 이후 잔액을 자기 주머니에 챙기는 일도 있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된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실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정보화촉진기금을 집행하는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은 2000년 9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한 책임연구원에게 ‘영상게임기용 소프트웨어 개발’ 과제를 맡겼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연구비 2억4천만원을 받은 뒤 기존 자료를 적당히 포장해 연구보고서를 냈다. 물론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보통신진흥원은 ‘실패’(성실)란 애매한 판정을 내렸다. 과제수행에는 실패했지만 성실하게 연구를 진행했다는 뜻이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은 예산 낭비가 훨씬 심각했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은 1999년 11월 영세 소프트웨어 사업자가 고가장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서울공용장비지원센터를 설치하기로 하고 서울 강남역 인근에 사무실을 빌렸다. 그러나 이후 1년 동안 시설을 갖추지 않고 사무실을 놀리는 바람에 임대료와 관리비만 9742만원을 날렸다. 이후 공용장비지원센터 설립은 취소됐고, 이 일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사원은 또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정보화촉진기금 565억원을 들여 전국 16개 지역에 설립·운영하는 소프트웨어지원센터도 거의 일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항 등 8개 지원센터는 입주업체에 마케팅 및 컨설팅 지원을 하거나 기술개발 자금을 알선한 실적이 전혀 없었다. 부산·전주·춘천 3개 도시에 운영하는 멀티미디어기술지원센터도 사정은 비슷했다. 45억원을 들여 설치한 전주센터는 3년 동안 고작 3종의 콘텐츠를 생산했을 뿐 대부분의 시설을 단순 홍보물 제작에 썼다. 30억원을 들여 설치한 부산센터는 개소 이후 8개월 동안 콘텐츠 생산이나 소프트웨어 개발 없이 20개 업체를 대상으로 장비교육만 실시했다.

한국전산원 산하 정보문화센터는 정보화촉진기금에서 438억원을 출연받아 과천에 초고속정보통신전시관(정보나라)를 건립하면서 사업을 집행하고 남은 잔액과 이자 80억원을 기금에 반납하지 않고 자체 수익으로 챙겼다가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또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는 2000년 1월부터 2001년 7월 말까지 20개의 정보통신 표준화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금 6천만원을 연구와 상관없는 직원들의 해외출장비로 썼다가 정통부 감사에서 적발됐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은 더하다. 2000년 7월 ‘인터넷서비스 거부공격 대응기술’이란 연구과제에 착수했다가 2001년 말 갑자기 과제를 중단해버렸다. 같은 시기에 시작한 ‘침해대응 및 복구기술 개발’과 중복된다는 이유였다. 덕분에 5억원의 지금원 가운데 3억4400만원을 날렸다. 같은 기관이 동시에 추진한 사업인데 어이없게도 1년6개월 뒤에야 중복되는 사실을 발견하고 사업을 중단한 것이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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