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경제인 ] 2002년06월19일 제414호 

‘불온한 색’의 오명을 깨고

세살배기 아이를 붉은 방에 두면 맥박이 정상보다 1분에 20번 더 뛴다고 한다. 그만큼 붉은색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색깔이다. 색채사전도 빨강은 흥분·열광·정열·혁명 등을 연상시킨다고 적고 있다. 색깔에 대한 이미지는 남녀노소, 계절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어린 시절에는 색을 하늘, 바다, 동식물 등 자연현상과 연결시켜 상상하지만 나이가 들면 추상적인 문화, 사회, 정치적인 것까지 연상의 범위가 넓어진다. ‘붉은 가난’이란 말이 보여주듯 붉은색을 가난으로 인식하는 게 대표적이다.

우리 국어사전에 등장하는 붉은색 어휘는 ‘붉다’, ‘발갛다’, ‘발그레하다’ 등 무려 55가지에 이른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색에 대한 감성은 풍부하다. 하지만 정작 색깔이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린 건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붉은 돼지저금통만 봐도 그렇다. 단지 때를 덜 타고 플라스틱에 넣기 좋은 색상이란 이유로 색깔의 미학은 생각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붉은색으로 저금통을 만든 것이다. 금지곡 시대처럼 특정한 색깔을 국가에서 금지한 때도 있었다. 이른바 ‘국금색’이다. 한국색채연구소 권옥현 실장은 “조선시대 왕이 입는 곤룡포에 들어가는 황금색·붉은색 등은 일반 백성들이 쓸 수 없었다”며 “그러다 보니 서민들은 색이 없는 흰색을 입게 됐고, 그래서 백의민족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분단체제에서 선동적이란 이유로 붉은색을 불온시하기도 했다. 청군-홍군으로 나뉜 운동회의 편가르기가 나중에 청군-백군으로 바뀐 게 그 예다.

물론 우리나라의 국색이 흰색인 것은 아니다. 월드컵을 계기로 이참에 국색을 정하자는 운동도 일어났다. 한국색채연구소 한동수 소장은 “외국 언론이 돌출적으로 ‘붉은악마’라는 호칭을 쓴 뒤 붉은색이 마치 한국의 색처럼 돼버렸다”며 “나를 비롯해 붉은색을 우려하는 몇몇 사람들이 앞장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색을 정하려 했다”고 말했다. 색채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어 몇 가지 색을 정한 뒤 전 국민이 참여하는 서명투표에 부치자는 계획이었다. 이 과정에서 월드컵조직위원회와 몇 차례 협의가 진행됐으나 결국 비용 문제에 부닥쳐 무산되고 말았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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