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경제 등록 2002.01.09(수) 제392호

[경제] 김칫독에 달러를 쌓아라!

지구촌 식품으로 거듭난 김치산업 대폭발… 맛의 세계화·과학화 경쟁도 갈수록 치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을 둘러보면 매장 맨 앞에 눈에 띄는 것이 김치다. 국산품 가운데 매출이 단연 1위이기 때문이다. 김치는 지난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팔린 국산품 매상 가운데 18%를 차지했다. 액수로 치면 100억원대에 이르는 규모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잠정 집계한 지난해 김치 수출액은 7천만달러. 김치 수출시장은 지난 90년대 초 1700만달러에서 98년 4400만달러로 느는 등 날로 덩치가 커지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쪽은 “김치 수출의 93%를 일본시장이 차지하고 있다”며 “일본인은 주로 고기를 먹을 때 김치를 곁들여 먹는데 지난해 4차례의 광우병 파동으로 고깃집이 죽을 쒔지만 7천만달러의 수출을 달성한 건 일본 가정집에서도 김치가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우리 ‘김치’(Kimchi)를 공식 표기로 인정했지만, 김치의 ‘세계식품화’를 꾀하고 있는 건 수많은 수출업체들이다. 국내의 크고 작은 김치 수출업체는 120여개에 이른다. 김치 홈페이지(www.kimchi.or.kr)에는 포기김치, 백김치, 보쌈김치 등 90여개 수출용 김치상품 카탈로그가 올라 있다. 김치는 일본시장은 물론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 유럽 등지까지 수출되고 있다. 일본시장을 벗어나 이제 ‘신흥 김치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120여 업체들 90여종의 김치 내놔

농수산물유통공사쪽은 “수출 규모는 아직 작지만 지난해 미국과 중국 등지로 수출시장이 넓어졌다”며 “일본시장은 경쟁이 치열하고 시장 확대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업체들이 다른 지역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말했다.

김치의 글로벌화에 가장 앞장선 곳은 제일제당이다. 제일제당은 서양인이 좋아하는 소스, 스낵 등의 형태로 전통김치를 개량한 ‘크런치 오리엔탈’을 내놓고 미국시장을 뚫고 있다. 이미 미국의 슈퍼체인점인 ‘랄프’의 350개 점포를 통해 시장 공략을 꾀하고 있다. 크런치 오리엔탈은 김치의 이파리보다 줄기를 이용한 것으로, 줄기를 피클처럼 잘게 자른 일종의 김치 샐러드다. 제일제당은 “한국인이 먹는 원형 김치를 그대로 수출하면 서구인과 음식습관이 달라 통하지 않는다”며 “우선은 한국 김치의 맛을 알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오는 3월에는 소스처럼 멕시칸 스낵에 찍어먹는 ‘김치살사’를 미국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멕시코 살사소스와 김치가 모두 매콤한 맛을 가졌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김치는 절임과 발효 공정이 빠지면 더이상 김치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까지 건너가면서 발효가 진행되면 금방 시어버린다. 이 문제는 발효정지공법으로 해결했다. 유리병에 넣은 김치 속의 유산균을 일정 기간 기절시켜 발효를 정지시키는 원리다. 물론 뚜껑을 열면 바깥 공기가 들어가 발효가 다시 진행된다.

김치 수출시장 다변화 전략에 따라 수출업체들이 저마다 공략을 꾀하고 있는 곳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다. 여기에는 한류열풍도 한몫 거들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김영일 과장은 “김치 한 봉지가 아니라 한개씩만 먹어도 중국은 엄청난 시장”이라며 “올해는 한류열풍을 타고 중국 현지에서 대대적인 한국 김치 프로모션(홍보활동)을 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중국시장을 겨냥해 가장 발빠르게 치고 나선 곳은 두산식품이다. ‘종가집 김치’ 생산업체인 두산식품은 이달부터 상하이의 고급 레스토랑에 ‘종가집 김치’를 정식메뉴로 팔 예정이다. 시장조사 결과 마늘이나 매운 음식을 먹는 등 중국의 식습관이 우리와 비슷한데다 김치를 사먹을 만큼 구매력 있는 소비자층이 두텁다고 판단했다. 사실 국내에서 김치 한 봉지에 1달러라도 외국에 나가면 관세, 통관비, 유통마진을 더해 4∼5달러가 되기 때문에 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다. 가격 외에 유통문제도 걸린다. 우리는 김치가 시면 볶거나 끓여먹지만 외국에서는 포장이 부풀어 오르면 부패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냉장기한인 몇 개월 사이에 모두 팔아야 한다. ‘종가집 김치’ 해외영업팀은 “중국에서도 김치를 생산하지만 중국 배추는 두껍고 물기가 많아 금방 물러터져 버린다”며 “중국에 우리 김치를 풀어 자꾸 먹게 만드는 식으로 시장 형성을 도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우리 수출 김치에 대한 도전도 만만찮다. 김치가 ‘돈이 되는 상품’이란 사실을 깨달은 일본과 중국이 세계시장에서 우리와 겨룰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김치열풍을 탄 일본의 민간기업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기무치’를 세계화하면서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김치 담는 방법’이 몇몇 일본 여고의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중국에도 재중동포나 대만·홍콩계 자본이 운영하는 한국식 김치공장이 속속 생겨나 베이징과 산둥성에 18개 김치공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시장 쟁탈전… 김치 먹고 술도 깬다

수출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자 농수산물유통공사도 대비에 나섰다. 그래서 등장한 게 한국 김치캐릭터다. 한국산 무, 배추 등으로 제조한 발효김치에만 김치캐릭터를 붙여 수출시장에서 우리 김치를 차별화하는 데 나선 것이다.

김치의 세계화 못지않게 ‘과학화’도 질주하면서 이른바 ‘바이오 김치’ 또는 ‘기능성 김치’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벤처기업인 마이크로비아가 내놓은 ‘바이오 김치’는 알코올 분해 능력이 뛰어난 유산균을 듬뿍 넣은 ‘술 깨는 김치’로 불린다. 마이크로비아쪽은 “일반 김치에 들어 있는 수많은 유산균 중 ‘루코노스톡’이라는 유산균을 따로 배양해 넣었다”며 “집에서 담가먹는 김치보다 이 유산균이 10배가량 많아 술을 빨리 깨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바이오 김치’로 10억원의 매출을 올린 마이크로비아는 국내에서 누린 인기를 올해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몰아갈 예정이다. 고려인삼공사는 ‘인삼장아찌’를 김치에 넣어 만든 ‘인삼김치’를 개발해 미국 등지에 수출하고 있다. 피로회복, 항암작용 및 피부노화 방지 등에 효과가 있다는 게 회사쪽 설명이다. 이런 기능성 개량김치 제품의 등장은 매운 맛이 생명인 전통김치만으로는 세계시장 공략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치의 영양학적 가치를 살려 미래 식품으로 키워간다는 전략인 셈이다.

김치 맛은 유산균이 결정한다

김치의 독특한 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김치 맛의 비밀은 우선 절일 때 소금이 배추 표면에 닿으면서 삼투압 작용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아미노산과 젖산이 생성되는 데 있다. 또 절인 배추를 물에 헹군 뒤 양념과 부재료를 골고루 버무려놓으면 유연해진 섬유질 조직 속으로 양념 성분이 고루 스며든다. 특히 김장 김치가 익으면서 유산균 발효가 일어나고 이에 따라 구수하고 감칠맛 도는 김치가 만들어진다.

김치 숙성에서 ‘김장독 김치’가 맛있는 이유는 온도와 숙성기간에 있다. 12월 초순이 지나면 땅속 30cm의 온도는 0∼-1도로 지속되는데, 김치 특유의 상큼하고 개운한 맛을 내는 ‘루코노스톡’이라는 유산군은 영하 1도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지고 오래 생존한다. 갓 담근 김치의 경우 1㎖당 이 유산군이 1만개 안팎이지만 발효 초기에 급격히 증가해 1천만개까지 증식한다. 특히 저장온도가 -1도 상태(겨울철 김장독 온도)에서는 담근 지 12일 뒤에 유산균이 4천만개로 증가하고 4개월간 1천만개를 유지한다. 겨우내 시원한 김치맛을 즐길 수 있는 건 이런 온도조건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신 김치가 되는 건 루코노스톡이 소멸하는 과정이랄 수 있다.

김치냉장고는 이런 온도 차이를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삼성전자의 ‘다맛’은 쿨링커버 냉각방식을 채택해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 위 아래 온도 차를 줄여 김치가 쉽게 시는 것을 막는다. 반면 만도공조의 ‘딤채’는 직접냉각방식을 활용했다. 일반 냉장고는 뜨거운 바람을 바깥으로 빼내고 찬바람을 집어넣는 방식인데, 직접냉각은 김장 항아리에 숨구멍이 있어서 차가온 온도가 안으로 스며드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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