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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투기꾼을 키웠다 건설업 부양책이 투기 부추겨… 서민 울리는 부동산 띄우기는 이제 그만
정부의 뻔한 대책을 누가 두려워하랴
특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단골메뉴는 반사적으로 식상함을 불러일으킨다. 팔짱끼고 있는 것보다야 낫지 않냐고 이해심을 발휘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간의 정부 행적을 되밟아보노라면 이 또한 뜻같지 않다. 정부가 언제는 투기를 조장하더니 이제와서 투기꾼을 잡겠다고 나선다는 비아냥을 들을 만한 발자취를 곳곳에 어지러이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권의 주택정책 목표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된다.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양적 목표와 투기억제 및 서민주거 안정이 그것이다. 양적 확대에 주력하는 목표에 약간의 논란거리가 있는 것을 빼고는 누가 봐도 시비를 걸기 어려운, 더없이 훌륭한 목표로 여겨진다. 문제는 이런 번듯한 목표가 현실에서 얼마나 달성되고 있느냐 하는 점인데 이 대목에서 정부의 처지는 참으로 궁색해진다. 숨막히는 통계 숫자를 나열할 필요도 없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투기바람과 전·월세난에서 이는 간명하게 설명된다. 외환위기가 터진 뒤에는 그나마 명분으로라도 지켜져오던 목표조차 헌신짝처럼 팽개쳐졌다. 외환위기 와중에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면서 투기를 부추길 가능성이 짙은 ‘건설경기 살리기’에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대형 건설업체가 무너질 경우 하청업체의 연쇄도산이 이어지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실직할 수 있다는 걱정은 이같은 정책에 든든하게 힘을 실어주는 명분 좋은 지렛대였다. 서민주거 안정이란 목표는 한참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껏 이어지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기조는 고용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고육책으로 이해해야 할까?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송태경 위원은 “극심한 불황으로 회사가 도산하고 고용 사정이 심각해진 건 건설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며 “투기를 조장할 수 있는 건설업 살리기가 과연 바람직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송 위원은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면 건설업종 역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줄일 것은 줄이는 구조조정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가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현대건설 같은 대형 업체들이 줄줄이 망가진 데서 볼 수 있듯 건설업 살리기라는 목표조차 제대로 달성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르면 도대체 누굴 위한 정책이었는지 의심스러워진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아주 흥미로운 분석이 있어 눈길을 끈다.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정권 출범 때부터 토지자본(토지소유자)의 이해를 대변할 것으로 예견됐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정권 출범 초기인 98년 4월24일 공개된 고위공직자재산 자료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은 1인당 평균 8553평의 부동산을 보유한 땅부자들이었다. 더욱이 부동산 정책의 중심축이었던 자민련쪽 인사들은 하나같이 대토지 소유자였다. 이정무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은 24억여원에 이르는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던 이규성씨는 충남 논산군에 35만㎡, 전북 완주에 7853㎡ 등 넓은 임야와 충남 논산군의 논밭 및 서울에 대형 연립주택을 보유한 부동산 알부자로 기록돼 있다. ‘건설경기 부양→부동산 개발→토지자본 이득’이란 연쇄고리에서 땅없는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일찌감치 물건너갔다는 해석을 끌어낸다면 너무 지나친 단순화일까? 그렇다면 대다수 사회 구성원에게는 유익하나 토지소유자에게는 불리한 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 비업무용토지 제도 같은 투기억제 장치가 김대중 정권 출범과 함께 잇따라 흐물흐물 없어진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토지소유자들을 위한 건설경기 부양이었나
정부는 지난 98년 8월 및 99년 2월 두 차례에 걸친 법령 개정을 통해 아파트 분양권 매매를 전격 허용하고 청약 관련 규제들을 풀었다. 이때 역시 명분은 주택경기 활성화였다. 외환위기 뒤 형편이 어려워진 분양권 당첨자들이 중도금을 내지 못함에 따라 건설업체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빠진 게 그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일면 수긍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2001년 저금리 기조가 본격화하면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주요한 수단이 됐다. 이미 지난해 초부터 전세가격이 급등하고 전세가 월세로 바뀌는 등 부동산 시장 상황이 심상치 않았음에도 정부당국의 안이함 때문에 상황 변화에 따른 적절한 후속대책이 마련되지 못했던 것이다. 분양권 매매나 실(實)수요와 무관한 청약은 예로부터 부동산 투기의 상징이었다. 실수요와 관계없이 청약을 하고 분양권을 사고팔아 매매차익을 얻을 수 있는 풍토에선 거품이 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긴 거품은 부동산 및 전셋값 폭등, 투기 조장, 실수요자의 부동산 매입 기회 차단으로 이어진다는 교과서적 구도는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실태에서 그대로 예증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 93년부터 분양권 매매를 금지하고 재당첨 제한기간(2년)을 뒀던 것인데 건설경기 회복이란 명분을 내세워 이를 덜컥 풀어버린 것이다. 범죄행위였던 분양권 전매가 합법적인 투자수단으로 둔갑한 뒤 투기 열풍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지난 1월8일 실시된 서울지역 동시분양 접수 결과 2105가구 모집에 9만1358명이 몰려들어 무려 4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92년 동시분양이 시작된 뒤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른바 ‘떴다방’이 활개를 치며 가수요를 잔뜩 부풀려놓은 결과다. 떴다방이 건설업체들의 은밀한 지원까지 받아가며 실수요자들을 울리고 있는 일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돼버렸다.
범죄행위가 합법적 투자수단으로 둔갑
서민층은 아랑곳없다는 듯 건설경기 회복에만 초점을 맞춘 부동산 정책은 분양권 매매 허용에만 그치지 않았다.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외국인에 대한 부동산 시장 대폭 개방, 주택임대 사업자 범위 확대와 양도소득세 비과세 또는 감면 조처, 주택소유자에 대한 전세반환자금 대출 등 하나같이 토지소유자 또는 건설업자쪽에 시각이 맞춰져 있는 것들투성이다. 영세상인 보호를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된 것 정도가 생색을 낼 만한 부동산 정책인데, 이 또한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의 줄기찬 요구에 마지못해 응한 경우이고 그나마 중간에서 적지않게 변질됐다. 하성규 교수는 “주택은 일반상품과 달리 공급을 늘리는 데 따라 가격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게 아닌데도 정부는 공급물량 확대라는 양적인 목표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 교수는 “주택을 많이 짓는다는 목표에 누구도 반대할 명분은 없지만 문제는 어디에, 누굴 위해 짓느냐가 중요하다”며 “토지공사나 주택공사 같은 공공기관들은 일반 분양을 위해 땅을 개발하는 데 주력할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소형 영구임대 주택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5% 수준에 머물고 있는 공공주택의 비중을 15∼20% 정도로 끌어올리기만 해도 대책없이 날뛰는 주택시장에서 커다란 안전판 하나를 확보하게 될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물량 위주 방안은 해결책 아니다
이런 바람과는 달리 정부가 지난 1월8일에 내놓은 대책도 서울근교 그린벨트 해제, 아파트 10만 가구 공급, 민간자본의 임대주택 투자유도 등 땅 가진 자와 건설업자에 시각을 맞춘 물량 위주 방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처가 일시적인 효과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부동산 시장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양권 전매와 분양가 자율화 등 부동산 가격 급등을 불러일으킨 주요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경기부양 차원의 부동산 띄우기를 시급히 중단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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