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경제인 ] 2000년09월27일 제327호 

[경제] ‘두번째 위기’ 얕보면 다친다

국제유가 급등, 대우자동차 매각 실패 등 잇단 악재에 맞닥뜨린 현 경제상황을 지난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빗대 ‘제2차 위기’라고들 한다. 심지어 ‘제2의 IMF 사태’라는 주장까지 제기될 정도로 경제위기론이 확산돼 있다.

지금의 경제상황이 위기상태라는 데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지난 97년 IMF 사태 직전 상황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견해도 많다.

지난 97년 당시의 위기는 외화유동성 위기에서 비롯됐다. 당시 가용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내 한때 39억달러까지 주저앉는 지경에 빠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 및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져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며 결국 IMF에 손을 벌리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가용 외환보유고가 900억달러를 넘는다. 충분한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난번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대처 능력이 있다.

경제의 주요 변수인 금리 움직임도 차이를 보인다. 외환위기 직전이었던 97년 9월 회사채수익률은 15∼16%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한 자릿수대에서 안정돼 있다. 정부나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위기를 한번 겪어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도 차이점으로 꼽을 수 있다. 지난번의 외환위기는 불시에 기습적으로 당한 측면이 컸으나 지금은 ‘노출된 악재’에 직면해 있으며 경험 축적으로 대비능력이 커졌다는 평이다.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위기인 것은 분명하며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고질병은 여전하다는 점에서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각종 대내외 여건이 악화일로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IMF 사태 직전과 지금은 닮은꼴이다. 외환위기를 맞기 직전에도 반도체 값 하락 등 외생변수 불안에 따른 경기 하강 국면이 뚜렷하게 감지됐다. 지금도 반도체 가격 하락, 유가급등 국내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악재들이 수두룩하다.

경제체질 또한 크게 강화되지 않았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줄기차게 추진해왔지만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민간부문의 부실을 정부 부문으로 옮겨놓은 데 불과할 뿐이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는 대외 변수 움직임에 따라 심하게 요동치는 허약체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환보유고가 높아졌지만 단기외채 비중에선 외환위기 직전과 차이가 없어 외채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공통점으로 꼽힌다.

지난번의 외환위기는 집권 초반기여서 정부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구조개혁을 이끌 수 있었으나 이젠 ‘레임 덕’을 걱정해야 할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고 있다. 위기극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훨씬 약해져 있다. 이 때문에 IMF 사태를 맞기 직전에 비해 위기의 정도는 덜 할지라도 헤쳐나가는 더 어렵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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