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져야 할 짐은 지고 가겠다"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에 방망이 잡은 천정배 의원, 악역을 자처한 이유는?

천정배 민주당 의원(45·경기 안산을). 그는 15대 국회 의정활동을 통해 “튀지 않고 합리적이며, 여야를 떠나 날카로움을 잃지 않는 선량”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 4·13 총선을 통해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천 의원은 지난 7월24일 이런 이미지를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민주당 수석부총무인 그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의원 20명에서 10명으로 낮추는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를 사실상 주도했기 때문이다.

많은 유권자들은 ‘날치기의 주역’이 된 그의 모습을 보며 “천 의원, 당신마저…”라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천 의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그 악역을 떠맡았을까? <한겨레21>은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천 의원과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로 파문이 계속되고 있고, 내 발언이 여야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그래서 7월27일 오전 10시, 무작정 의원회관 512호로 그를 찾아갔다. 그는 기자와의 대화 도중 여러 차례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뷰를 안 하겠다고 해 불쑥 찾아왔다.

=여야 관계가 어떻게 흐를지 아무도 모른다. 뭐라 말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난 뒤 터놓고 이야기하자.

―여야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게 아니다. 다만 많은 유권자들이 천 의원에게 실망했고, “왜 그랬는지” 궁금해 한다. 그것이 알고 싶어서 왔다.

= ….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

―요즘 심적 고충이 클 것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다. 잘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책임과 소신에 따른 것이다.

―수석부총무라는 직책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인가.

=잘했다고 떠들고 다닐 수는 없지만, 그 필요성과 당위에는 어느 정도 공감했다. 나를 걱정해주는 분들은 “천정배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당에서 시켜서 마지못해 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한겨레>도 그렇게 썼는데…. 그렇다면 나는 뭐가 되나? 위에서 시킨다고 싫은데도 아무 생각없이 지시를 따르는 사람은 아니다. 당내 몇몇 강경파들이 “밀어붙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거기에 무작정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내 소신과 완전히 다르고 날치기는 정말 구악적인 것이고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일을 안 했을 것이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고 탈당을 했겠지….

―무슨 뜻인가.

=초선(15대 총선) 때 나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유권자의 95%는 우리 당(국민회의)을 보고 찍은 사람이다. “인간 천정배가 괜찮은 인물”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겠지만, 5%도 안 됐을 것이다. 이번에도 비슷하다. 15대 때 의정활동으로 나를 좋게 보는 사람들이 좀 늘었을 것이지만 20% 정도가 나를 보고 찍었을 것이고, 나머지 80%는 민주당을 보고 찍었다. 내가 뭔데…, 그것을 무시할 수 있냐. 그렇다면 탈당을 해야 하고, 그것은 곧 의원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다. 당에서 시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식으로 내 책임을 회피하고 싶지 않다. 그런 시각에서 바라본 언론 보도는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상당한 정치적 파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번 일로 내가 져야 할 역사적·정치적·도덕적 책임은 당연히 짊어지고 가겠다.

―하지만 24일 날치기 과정이 너무 갑작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그날 아침 당론이 너무 갑작스레 결정된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너무 짧은 시간에 이루어져 다른 사람들과 깊이 상의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깊이 고민했다. 내가 상처날 수도 있고, 앞으로 계속 나를 따라다닐 텐데…. “왜 나여야 하는가. 정말 재수가 없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당론은 이미 결정됐다. 꼭 나의 뜻대로 된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나도 의견을 개진했다. 의원총회 때 의원들의 분위기도 고려했다. 이건 꼭 통과시켜야 한다는…. 그날 아침 이미 상황이 다 벌어졌고, 나로서는 거스를 수 없을 정도로 나가 있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 거기서 내가 못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결국 나만 살자고 내 앞길이나 살피는 비겁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어차피 운영위원장(정균환 원내총무) 아니면, 간사(천 의원 자신)가 방망이를 두들겨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겠나?

―날치기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렇게까지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운영위회의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 총무가 가로막혔고….

―날치기를 꼭 해야 했나. 아까 공감했다고 말했는데.

=그래서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그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니까…. 이 일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유는 나중에 차분히 이야기하자. 지금도 기자가 찾아왔는데 말을 안 할 수는 없고 해서 내 행동에는 “이런 뿌리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석부총무’라는 가시방석

―고충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실망한 유권자들이 많다. 반응은 어떤가.

=항의가 많고, 안 좋은 글들이 자꾸 올라오지 뭐…. 일부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렇게 했어야 하는 거다. 잘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한나라당은 “천 의원이 아닌 다른 당직자가 방망이를 두드렸다”면서 “날치기 미수이므로 원인무효”라고 주장한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서로 너무 밀고 당기는 과정이라서 나도 정신이 없었다.

―통과를 선포했으니 괜찮다는 뜻인가.

=그렇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그렇게 보이는데….

=나도 봤다. 내가 방망이를 두드리려는 순간에 여기저기서 밀고 끌리니까 원내총무실의 한 당직자가 나에게 방망이를 건넸다. 그리고 그가 내 팔목을 잡고, 내가 방망이를 두드리는 것을 도왔다. 결국 혼란상황에서 내가 방망이를 두드리는 것을 도와준 것일 뿐 내가 한 일이다.

―천 의원의 그동안 이미지는 조용하고 합리적인 화이트칼라의 대표자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너무 의외다.

=글쎄…. 그 이미지라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잘 모르지만, 나는 전투적인 사람이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할 때도 주변에서 나를 상당히 전투적인 사람으로 분류했다. 15대 때도 총재권한대행 비서실장을 하면서 개혁추진 방안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지만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니까 나를 조용한 사람으로 본 것 같다. 내 얼굴이 부드럽고 남의 면전에서 심하게 못하니까 나를 ‘무골호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때(15대 때) 더 ‘보일드’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야당 때는 할말을 다 하고 내 나름대로 역할을 했지만, 여당이 된 뒤에는….

―보일드해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 국민의 정부가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개혁을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2년6개월이 지난 지금 개혁이 기대에 못 미친다, 결과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있지 않다. 그렇지 않나?

―결국 한나라당이 발목잡기에 나섰기 그 때문에 날치기를 했다는 뜻인가.

=그 이유는 이 문제가 잘 정리되면 충분히 얘기하겠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천 의원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수석부총무라는 직책 때문에 마지못해 했는지, 무언가 동조해서 했는지, 그런 것에 의문을 느낀다. 수석부총무라는 자리가 원래 그런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데 차라리 맡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없나.

=초선 때 나는 별로 한 게 없었다. 뭘 모르기도 했고…. 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나를 또 뽑아달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전보다 훨씬 많은 표가 나왔다. 지난 대선 때 우리 당이 졌던 지역에서도 내가 이겼다. 솔직히 많은 자부심을 느낀다. 적어도 내 지역구에서는 지역감정을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렇게 나를 찍어준 분들이 이번 일로 정말 실망이 클 것이다.

내가 뭘 잘해서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나를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그런데 당에서 제1정조위원장을 시키더라. 기분이 좋았다. 1정조위원장이면 개혁적인 법안을 만드는 등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가.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갑자기 수석부총무를 하라고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싫었다. 불과 한두달 사이에 그렇게 바뀌는 것도 문제라 여겼다. 또 여야 대치 속에서 악역도 맡아야 하고…. 하지만 재선의원으로 정조위원장이나 수석부총무 모두 해볼 만한 일이라는 욕심도 났다. 그래서 수석부총무를 맡았다. 수석부총무를 시작하면서 내 의지와 꼭 일치되지 않는 일도 있을 것이고, 여야 관계에 따라 악역을 맡아야 할 때도 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상처를 입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어느 정도는 각오했다. 물론 이번 일(날치기) 같은 것이 이렇게 급박하게 다가올 것이라고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정치인의 고민, 이해해 달라

―어쨌든 합리적인 이미지에 상처를 입었다. 앞으로 정치역정에 평생 따라 다닐 것이다. 몇몇 시민단체에서는 “17대 총선에서 낙선대상 1호가 될 것”이라고도 말하고 있는데.

=결국 그렇게 되겠지. (낯빛이 잠깐 어두워졌다.) 어느 정도의 정치적 파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나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있고, 현실정치에 몸담은 정치인은 현실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이 있다.

―날치기 이후 고민은 없었나.

=기분이 안 좋았다. 솔직히 잘한 일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내 주변의 친한 사람들이 내 행동을 비난하는데 왜 괴로움이 없겠냐? … 언론이 너무 현실정치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말해서는 안 된다.

―이미지 제고를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는가.

=글쎄. 나중에 터놓고 이야기하자. 솔직하게. 지금은 기사쓰지 말아달라.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