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소파를 개악하자고?미국쪽 “3년이하 범죄 재판권 포기 요구”… 다른 핵심사항 손 못대게 하려는 속셈
“국회 결의안을 북한이 악용하리라고 염려할 이유가 없고, 미국이 어떻게 생각할지 눈치볼 사안이 아닙니다.”(민주당 심재권 의원) “이런 결의안으로 미국이 눈이나 깜짝할까요? ‘미안하지만 나가달라’고 해야 협상에 힘이 실리지 ‘평등하게 하자’고 해서는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한나라당 김영춘 의원) 임시국회가 열린 지난 7월14일 낮 국회 귀빈식당.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 ‘평화통일포럼’ 등 6개 국회 연구단체 소속 여야의원 41명이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오전 본회의장에서 부정선거와 편파수사 시비로 한 차례 핏대를 세운 뒤였다. 그러나 간담회에서는 참석자들이 모두 한목소리를 냈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불평등하고 따라서 전면 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쪽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야당 의원들의 주장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한미군이 독극물인 포름알데히드를 한강에 무단 방류한 사실이 최근 밝혀지면서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소파를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런 모멸을 당하고도 반미감정이 안 생기면 생명력 있는 국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정부도 오는 8월2일 4년 만에 열리는 소파 개정 협상에서 ‘불평등’ 조항들을 개정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를 보면 개정 협상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미국쪽에 협상안을 전달했다. 미국은 지난 5월31일 협상 시안을 한국쪽에 건넸다. 한국이나 미국의 협상안은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지난 7월1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가 소파 개정 협상의 경과보고를 듣기 위해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을 불러 비공개로 마련한 조찬간담회에서 미국쪽 협상 시안의 일부가 처음으로 흘러나왔다.
한국 사법권 위에 선 주한미군사령관
그 가운데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군범죄인의 신병이 한국쪽에 넘겨진 이후 중대한 법적 권리 침해가 발생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한미군사령관이 판단하는 경우, 한국은 형 집행을 할 수 없고 미국쪽이 요구할 때에는 피의자 신병을 송환해야 하며, 한국쪽이 이를 거부할 경우 범죄인 인도와 관련한 소파 규정의 효력을 정지시킨다.” 한마디로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군범죄자에 대한 한국 법원의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최종적으로 사법적 판단을 내리겠다는 뜻이다. 한국 법원이 유죄를 확정해도 미군이 신병 인도를 요청하면 신병을 인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한미군사령관이 사실상 한국의 사법권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미국쪽은 미군범죄인 신병 인도시점을 현재의 형확정 뒤에서 기소 시점으로 앞당기자는 한국쪽 요구를 받아들이는 전제조건으로 다른 요구안을 내놓았다. 법정 형량 3년 이하에 해당하는 경미한(?) 범죄에 대한 한국의 재판권 포기, 한국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대범죄의 리스트화, 미결피의자 구금 시설의 신축을 통한 시설개선 등이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소파의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으로 ‘형사관할권’(제22조)을 꼽았다. 한·미 사이에 맺은 소파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협정과 비교하면 한국 사법권이 미치는 영역을 크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표 참조). 지난 92년 윤금이씨 살해사건이나 지난 4월 이태원 술집 여종업원 살해사건 등을 통해서도 이 대목이 부각됐다. 국민 정서에 비춰볼 때 가장 민감한 소파 개정 사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미국은 사실상 ‘개악안’을 내놓은 것이다. 우선 법정형량 3년 이하는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음주운전이나 무면허운전 등도 2년 이하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고, 형법상 폭행·협박죄 등도 모두 법정형이 2∼3년 이하다. 미군과 군속 및 가족의 가장 빈번한 범죄형태인 폭행과 교통범죄에 대한 재판권을 포기하라고 해 한국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를 극도로 좁힌 것이다.
환경오염 원상회복 의무 없어
미국의 협상시안에 대해 외교부는 “미국쪽 협상시안을 우리는 협상안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 안이 협상안으로 관철하도록 하겠다”고 원칙적인 태도를 밝혔다. 이한동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미국의 안이 기대에 못 미쳐 협상이 난항을 겪으리라고 예상된다”고 실토했다. 이 총리는 최근 소파 개정 방향에 대해 미군피의자 신병인도 시기를 기소 단계로 앞당기고, 미군주둔지를 환경범죄 영향권에 포함시키며 미군에 고용된 한국인 노동자에 대해 한국 노동법을 적용시키는 등 3가지 방향을 천명했다. 그러나 17쪽에 이르는 미국의 협상시안은 이런 기대를 외면했다. 미국은 형사관할권 소파 개정에 대해서만 안을 냈을 뿐 한국쪽이 요구한 미군부대의 환경오염, 미군 고용 한국인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등에 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은 어떤 속셈에서 이런 협상시안을 냈을까? 성균관대 법대 성재호 교수는 “형사관할권 개정에서는 미국도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며 “환경문제 등 다른 핵심적인 사항을 손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개악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최근 독극물 한강방류사건으로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소파 개정문제가 불거지고 있으나 소파 제4조 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합중국 정부는 본 협정의 종료시나 그 이전에 대한민국 정부에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에 이들 시설과 구역이 합중국 군대에 제공되었던 당시의 상태로 시설과 구역을 원상회복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아니하며 또한 이러한 원상회복 대신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보상해야 할 의무도 지지 아니한다.” 소파에 환경 관련 조항이 없음은 물론이고 주한미군이 주둔지의 환경을 오염시켜도 이를 원상회복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미군은‘군사상 필요’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미군은 언제든지 한국인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지난 94년 대법원은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도 임금 등 고용조건에 관해서는 한국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나 미군쪽은 소파를 근거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또 미군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에 들어가더라도 지나치게 긴 냉각기간으로 단체행동권이 무의미하다. 한국 사업체의 경우 냉각기간이 10일 혹은 15일이지만 미군기지의 경우에는 70일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부터 재검토해야
소파 개정 협상에 나서는 한국쪽의 안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협상 전에 외부에 알려지면 협상 성과를 둘러싼 시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쪽 안을 전달받은 뒤 외교부는 민주당, 법무부, 국방부 등과 협의하며 한국쪽 안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20개 시민·사회·종교 단체는 이미 지난 4월27일 기자회견을 통해 16개항의 소파 개정 요구안을 냈다. 이들은 미군 피의자의 신병인도 시기를 기소 시점으로 조정하는 것은 물론 미군기지 임대계약 체결 및 불필요한 기지 즉각 반환, 환경 관련 규정 신설, 간접 고용제로 전환 및 노동3권 보장, 농산물 검역권 확보 등을 요구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우리의 안은 기지 임대료 등 임대계약과 관련된 소파 개정을 제외하면 시민단체의 요구 수준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외교부쪽의 설명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미군에 제공되는 토지에 대해 임대료를 내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불평등한 SOFA개정 국민행동’의 차승렬 사무국장은 “임대계약은 소파 개정에서 핵심적인 사항”라며 “임대계약 기간, 계약 재협상 조건 등을 규정해 미국이 토지를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쪽이 임대계약 사항을 제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지난 54년 발효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조항들 때문이다. 소파는 이 조약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조약 제4조는 “상호적 합의에 의해 미합중국의 육군과 해군, 공군을 대한민국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규정했다. 조약 제6조에는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뒤 1년 뒤에 본 조약을 종지시킬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미군의 주둔지를 한정하지 않고, 영토와 영해, 영공 등 한국의 전 국토에 미군주둔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일 협정이나 미-필리핀 협정은 미군기지 시설과 구역의 공여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또 이들 나라는 미군기지 임대기한도 정해 기간이 끝나면 갱신했다. 한국외대 이장희 교수는 “소파의 불평등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려면 소파의 모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국가간의 관계도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데 무기한 유효한 조약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상철 기자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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