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점 ] 2000년09월06일 제325호 

[초점] 깃발만 나부끼는 ‘생산적 복지’

시민단체들 쥐꼬리 사회복지예산에 공동대응… 삐걱대는 기초생활보장제에도 우려 표시


(사진/사회보장제도예산 증대요구는 97년 구제금융위기이후 더욱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지난 9월1일 오전 11시30분 국회사무처 민원실. 일단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임종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 남인순 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등이다. 이날 이들은 들고 온 서류를 곧바로 민원실에 접수시켰다. 이들이 국회의장을 ‘받는이’로 해 접수시킨 서류 제목은 ‘2001년도 사회보장예산안 청원’. 청원인은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건강연대 등 시민단체 대표들이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 법안을 마련, 입법청원한 사례는 많았지만 정부 예산안에 대해 입법청원을 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임종대 위원장(한신대 교수)은 “그동안 끊임없이 복지, 보건, 노동 및 여성부문의 예산 증대를 주장해왔는데 기획예산처 등 정부가 적극적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아 국회가 내년도 예산 심의과정에서 정부의 오류를 시정해주길 바라는 뜻에서 청원을 내게 됐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서민복지 위해 최초로 예산안 입법청원

시민단체들은 청원안에서, 내년도 예산안 편성기조를 △빈곤계층에 대한 기초생활보장체계 수립 △여성, 장애인, 노인, 아동 등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충 및 내실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추진 △국민보건 및 의료보장 충실 등 네 가지 분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를 위한 구체적인 사업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50% 국고지원 약속이행 △기초생활보장제도상의 의료보호 대상자에 대한 의료급여 충실화 △장애인수당의 현실화 △노인전문인력은행 체계 구축 등 33개의 서민복지 사업에 대해 총 10조4530억원의 예산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이들은 오는 10월부터 시행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 시행이 2001년에는 그 기틀이 확실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생산적 복지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가장 자랑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예산미비, 과도하게 제한된 선정기준, 의료보호 환자 등 사각지대 발생 우려 등으로 출발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2000년 현재 생활보호대상자가 153만명인데, 자연증가율이나 최저생계비 이하 계층 등을 감안해 2001년에는 적어도 200만명의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런데도 내년도 예산안은 턱없이 부족하게 편성돼 있다”고 꼬집었다. 즉 기초생활보장제도 사업의 경우, 기획예산처안은 8월24일 현재 그 수급권자를 170만명으로 보고 약 2조4298억원으로 잠정 배정하고 있다. 이 수치에 대해 시민단체는 “수급권자는 약간 늘었으나 1인당 수급액을 줄여 편성한 것이므로 적어도 수급권자를 200만명으로 해 약 4조8188억원은 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여성단체가 여성복지 차원에서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는 출산비용에 대한 사회부담(분만수당, 분만급여, 출산휴가기초수당 등 신설)의 경우, 여성단체가 1417억원의 예산배정이 필요하다는 데 비해 정부는 단 한푼도 배정하고 있지 않다. 또한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건강관리 비용, 주치의등록제 시행 등 국민보건 사항에 대해서도 예산액 배정이 일절 없는 형편이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공적자금에 20조를 추가배정하면서도 서민관련 예산은 기껏 2천억원을 추가하는 데 그치는 등 내년도 정부예산안은 한마디로 수사에 그친 정부의 생산적 복지론, 그 허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라고 말했다.

5조원으로 고통을 나누려는 것인가

내년도 복지관련 예산안은 총 5조1957억원으로 이는 2000년 대비 4.5% 증가한 수치다. 시민단체의 10조 배정과 견줄 때는 기껏 절반 수준이다. 이태수 교수는 “더구나 내년도 예산안에는 생산적 복지의 주요 분야인 자활에 관한 예산도 없고, 실직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대비도 매우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우리나라 사회복지예산의 후진성은 오래 전부터 지적돼온 사항이다. 사회보장예산이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수년째 10%대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99년 현재도 여전히 12%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독일의 62.3%, 프랑스 62.1%, 일본 52.2%, 미국 48.9% 등 선진국에 견줘볼 때 턱없이 낮다. 아르헨티나 52.9%, 체코 46.3%, 멕시코 27.9% 등 중진국과 비교해볼 때도 1/3 수준이다. 시민단체들은 사회보장예산 확충을 위한 움직임을 이번 입법청원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는 민주당사나 국회의사당 등에서 다양한 집회를 열어 계속 주창할 계획이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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