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점 ] 2000년08월29일 제324호 

[초점] 민주당 ‘도덕적 파산’이 오나

선거비용 실사 개입 관련 윤철상 파문 확산… 여당-선관위 유착 여부 진상 밝혀내야


(사진/여당과 선관위의 '검은 거래'에 대한 의혹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지난 8월 25일 열린 문제의 민주당 의원총회모습.)


“98년 옷로비 사건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닌가.”(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당직자)

민주당 관계자들의 표정에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8월25일 윤철상 의원(사무부총장)의 의원총회 발언이 일파만파의 파문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 10여명 고발 대상서 뺐다”

총선 선거비용 실사와 관련해 중앙선관위와 접촉해 10여명의 의원이 고발 대상에서 빠지도록 자신이 ‘활약’했다는 윤 의원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한나라당은 즉각 엄청난 선거부정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특검제를 도입해 진상을 규명하자고 대여공세에 나섰다. 자민련(공동여당 여부가 모호하긴 하지만)도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사건의 1차적 초점은 과연 윤 의원의 ‘최초 발언’(“제3의 정보를 입수해 해당 의원들에게 ‘당신은 이런 애로사항이 있다는데 어떤 일이냐’고 물은 뒤 우리가 사전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분명히 기소돼야 하는데 기소 안 된 분들이 열 손가락이 넘는다”… 발언 중 ‘기소’는 검찰이 하는 것이며, 선관위는 ‘고발’을 하게 돼 있는데 윤 의원이 용어를 착각)대로 여당과 선관위 사이에 ‘검은 거래’가 있었느냐는 점이다.이에 대해 윤 의원은 최초 발언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말썽이 일자 석명서를 발표해 해명을 시도했다.

“15대 한 동료의원의 예를 들면서 법정 선거비용과 정당활동비용에 대한 회계처리가 잘못된 결과 의원직을 상실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지구당 회계책임자들에게 이런 사실을 교육시켰기 때문에 약 10명 정도는 선관위에 의해 고발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을 뿐이다.”

중앙선관위도 펄쩍 뛰고 나섰다. 윤 의원의 발언으로 ‘공범’이 되는 상황을 피하려 한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8월25일 저녁 늦게 성명서를 내 “제16대 총선비용 실사와 그 처리과정에 있어 한점 의혹없이 엄정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정당이나 누구로부터도 청탁이나 요구를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위원회의 선거비용 실사결과를 정치권 일각에서 당리당략적으로 이용하거나 근거없는 사실을 제멋대로 말하여 우리 위원회의 명예에 금이 가게 하는 작금의 상황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로서 개탄한다”고 했다.


(사진/김옥두 민주당 사무총장이 윤철상의원의 발언을 해명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양쪽의 해명을 있는 그대로 믿어줄 사람은 적을 것 같다. 첫째로, 윤 의원의 최초 발언은 흥분 상태의 착각 또는 실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구체적이다. “제3의 정보를 입수해 사전에 알아보고 조처를 취했다”는 말과 “지구당 회계책임자들에게 교육을 열심히 시켰다”는 말은 전혀 성격이 다른 것으로, 뒤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앞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중앙선관위의 성명서는 민주당 당직자들의 발언과 모순을 빚고 있다. 중앙선관위 성명서는 “어떠한 정당이나 누구로부터도 청탁이나 요구를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앙선관위 고위관계자는 8월26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도 “민주당의 당직자로부터 전화 한통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의 의원총회에서 정균환 원내총무는 “나도 개별적으로 선관위와 검찰과 계속 연락하면서 ‘부탁드린 일은 이렇게 저렇게 처리해 나갑시다’라고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나갈 것이다”라고 발언했다고 한다(정 총무는 말썽이 나자 이런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함). 민주당 관계자들도 고위당직자들이 비용실사 기간에 선관위 사무총장이나 사무총장 등과 이따금 통화하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과거 정권 때와 달리 오늘날의 검찰과 선관위는 여당의 청탁이 먹히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발언이라고 해명하긴 하지만, 적어도 선관위쪽과 종종 접촉했던 사실 자체는 숨기기 어려운 것이다.

세 번째로 선관위가 ‘여당 편향’ 시비라는 ‘원죄’를 안고 있는 점도 의혹을 가중시키는 대목이다. 선관위는 97년 대선 이전까지 구여당쪽을 감싼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정권교체 이후에는 국민회의, 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신여당으로 기우는 듯한 태도를 종종 보였다. 99년 3·30 안양, 구로을 국회의원 재·보선 때는 국민회의에 의한 대규모 ‘동네 특위’ 조직사건이 불거졌으나 선관위는 이의 불법성에 대한 판단을 끝내 유보했다.

도덕불감증 악순환 고리 끊어야


(사진/한나라당 의원들이 지난 8월28일 선관위를 항의방문했다)


이번 사건은 여당-선관위간 유착 외에, 돈선거를 뿌리뽑는다는 정치개혁의 과제가 어느 지점까지 와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4·13총선이 끝난 뒤 각 후보자 진영이 선거비용 회계보고를 짜맞추느라 골머리를 앓던 풍경은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알려져왔다. 30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20억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30당20락’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극심한 돈선거를 치른 마당에, 공식 선거비용인 1억2천만원(평균)에 맞춰 회계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후보자들은 선거운동 개시 전부터 이중회계 처리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믿을 수 있는 후보자의 핵심 측근이 주로 조직관리 비용 등 전체 선거자금을 관리하고, 회계 담당자는 선거운동 개시일에 맞춰 개설한 후보자 이름의 통장으로 법정 선거비용만을 입·출금해 선관위 실사에 대비한 것이다. 몇억에서 10억원에까지 이르는 조직 관리비, 자원봉사자 급여, 청중 동원비 따위는 이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빠져나가게 돼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선관위가 실시한 비용실사도 처음부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조직 관리비 같은 뭉칫돈은 아예 조사의 단서조차 없으니 실사 대상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대신 후보자가 제출한 서류상의 모순점, 허점 따위를 파악하는 데 집중됐다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8월22일 발표된 고발 또는 수사의뢰 대상 당선자 19명이 초선 당선자 위주로 된 것도 이들이 회계보고서 작성 등에 서툴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 윤 의원이 밝힌 ‘당내 교육’은 돈선거에 관한 한 개혁불감증이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실감케 하는 것이었다. “여야 모두 (법정) 선거비용을 초과하지 않은 의원은 없을 것이다”, “법정 한도를 넘길 수도 있으니 반드시 2분의 1만 신고하라고 공개적으로 다 교육했다”고 함으로써, ‘손벌리는 유권자’→‘무조건 당선되고 보자’→‘눈감는 선관위’의 악순환에 ‘당차원의 조직적인 단속’까지 이뤄지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독립적 수사기관이 진상 규명해야 한다


(사진/민주당 공천심사위 회의에서 장을병 위원장에게 보고하는 윤철상의원)


어쨌든 여당의 선거실무 당직자의 입을 통해 여당-선관위간 유착 의혹이 불거진 만큼 어떤 형태로든 관련된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 유야무야하긴 어렵게 됐다. 당장 시민단체인 정치개혁시민연대는 8월26일 “선관위와 검찰 등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기소대상자를 10여명 넘게 ‘구제’했다는 것은 단순한 해프닝이나 의원 다독거리기용 발언으로 보기 어렵다”며 특별검사 도입 등을 통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특별검사와 같은 독립적인 수사기관이 나선다면 진상규명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중앙선관위가 일선 시·군·구 및 시·도 선관위로부터 고발대상자 기초자료를 취합한 것은 8월 초순의 일이다. 그뒤 보름여 동안 중앙선관위는 법령 적용의 적절성 여부, 지역간 형평성 등을 검토하다가 22일에 19명의 문제 의원을 발표했다. 따라서 일선 선관위 등에서 중앙으로 올린 숫자와 최종 확정된 숫자에 차이가 있는지 여부 따위를 확인하면 선관위 차원의 ‘엿 바꿔먹기’가 있었는지는 가릴 수 있는 셈이다. 선관위 업무는 일선이든, 중앙이든 철저하게 문서와 기록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검증도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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