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초점] 말 안 통하는 노동시간 단축 연내 입법화 확정됐지만 임금삭감 여부 등 방법·시기 놓고 노사 팽팽한 대립
사용자쪽 7개 선결조건에 노동자쪽 반발
노·사·정 사이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단축특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협상테이블은 그동안 12번 열렸다. ‘주 40시간·주 5일제’의 노동시간 단축 원칙에는 노사정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기와 방법을 놓고는 노사간에 팽팽한 대립만 계속될 뿐, 합의된 대목은 단 하나다. 결코 합의할 수 없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지점은 임금삭감 여부다. 노동계는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줄곧 요구하고 있는 반면 사용자는 임금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양쪽 사이에 흐르고 있는 건널 수 없는 강이다.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올해 안에 입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경총은 지난 6월22일 즉각 나섰다. 월차휴가 폐지와 탄력 근로시간제 확대 등 7가지 선결조건이 받아들여지면 법정근로시간 단축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게 경총의 대응이었다. 물론 노동계는 선결조건 7개항을 수용하게 되면 노동시간 단축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경총의 김영배 상무는 “노동시간을 현행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면 인건비가 14.4% 상승해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가져온다. 7가지 선결조건은 임금상승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불과하다”며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을 교묘하게 무력화시키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노총 노진귀 정책본부장은 “경영계의 주장은 휴일과 법정근로시간을 맞교환하자는 것이다. 결국 노동시간을 오히려 늘리고 임금도 깎자는 것 외에 다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정부는 일단 노사정위쪽만 지켜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사정위에 여전히 복귀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은 최근 독자적으로 노동시간 단축 입법을 청원했다. 입법청원안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규정을 현행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고 특별법에 대통령직속(노사정위처럼 자문이 아니라) 노동시간단축특위를 구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사정위에서의 타협은 불가능하며 결국 투쟁의 무대가 올 연말 국회환경노동위로 옮겨질 것이라는 게 민주노총의 ‘정세판단’이다.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는 길’에 있어서 사용자쪽은 노동시간 단축을 휴일·휴가제도 등의 개편과 맞물려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쟁점은 △노동시간 단축일정 △근로시간제도 탄력화 △연장근로 할증률 조정 △월차휴가 폐지와 생리휴가 무급화 △주휴일 무급화 등으로 정리된다.
근로시간 탄력제, 빅딜 고리 될 수도
노동계는 내부적으로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민주노총은 전 산업과 업종에 걸쳐 내년부터 전면적으로 실시하자는 쪽이다. 민주노총 주진우 정책국장은 “토요일 근무를 내년에는 3시간, 내후년에는 2시간 하자는 것이냐”며 “그렇지 않아도 차별받고 있는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에서마저 차별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한국노총은 곧바로 주 5일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호텔, 병원 등의 업종은 유예기간을 둘 수도 있다며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근로시간 탄력제는 노사간 타협이 가능하다면 서구의 경험에서처럼 ‘빅딜’의 고리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쟁점으로 점쳐지고 있다. 현재 1개월까지 허용되고 있는 근로시간 탄력제는 특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기준노동시간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노동시간을 배치하는 일종의 노동시간 유연화다. 예컨대 월요일에 4시간을, 수요일에는 10시간 일을 시키더라도 한주 총노동시간이 44시간 범위 안이라면 초과근로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사용자쪽은 이를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배 상무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업이라면 여름에 일을 많이 시키는 대신 겨울에는 사업장에 투입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며 노동시간 배치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그러나 “근로시간 탄력제 확대는 노동시간이 30시간대로 진입한 뒤에나 가능한 것”이라며 “확대 요구는 초과노동 수당과 휴업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발상으로서 결과적으로 잔업을 늘려 실근로시간을 증가시킬 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초과근로시간에 대해 임금을 50% 더 쳐주고 있는 연장근로시간 할증률을 조정하자는 대목은 실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조처라는 데 노사 양쪽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정반대다. 사용자쪽은 할증률을 선진국처럼 25%로 낮추자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할증률을 오히려 더 올려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사용자쪽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어서 시간외 노동을 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사용자들의 초과근로 유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면 할증률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논리다. 그러나 경총은 할증률이 높아지면 저임금 노동자들의 연장근로 선호가 커지는 만큼 할증률을 되레 낮춰야 실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월차휴가와 생리휴가 문제는 현장 노동자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사용자쪽은 월차휴가와 생리휴가를 법에 정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월차휴가 폐지와 생리휴가 무급화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 주진우 국장은 “서구는 연차휴가가 40일이 넘는다. 우리는 연차 10일, 월차 12일을 합쳐 22일이다. 우리의 월차휴가는 연차휴가를 월단위로 나눠주는 것일 뿐이다. 연차휴가를 늘려 그쪽으로 월차를 옮기는 것은 고려할 수 있지만 그냥 폐지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생리휴가 역시 외국은 없으니 폐지하자는 접근은 안 된다”며 “대신 남녀에게 똑같이 정기검진휴가를 주는 방안도 있다”고 덧붙였다. 휴일을 손대 휴가기간이 줄게 되면 노동시간 단축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게 노동계의 판단이다.
정부안으로 입법화될 공산 커
유급주휴일 무급화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는 쟁점이다. 쉬는 토요일 무급화를 주장하고 있는 경총은 임금삭감을 전제로 무노동 무임금 논리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반면 임금삭감 거부를 외치고 있는 노동계는 휴일 무급화가 무노동 무임금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노사정위 선한승 위원은 “주 44시간 일할 때와 같은 월급을 주면 결국 평일의 시간당 급여가 인상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면 사용자는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돼서, 노동계는 임금삭감이 없어서 둘 다 좋은 것”이라고 절충안을 제시했다. 노동계는 현재 연 2500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을 2천시간으로 줄이려면 주 40시간 노동 외에도 초과노동을 줄이고 휴일·휴가를 더욱 확대해야 하는데, 사용자쪽의 주장은 오히려 법정노동시간 단축효과를 완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의 시나리오는 노사정 모두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견해 차이가 워낙 큰 만큼 ‘합의 부재’ 상태에서 정부안으로 입법화될 공산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노사정위는 9월 말까지 최대한 타협을 모색한다고 말하지만 속내는 단계별 전략을 짜고 있다. 9월 말에 임박해 단축특위 공익위원들이 만든 안을 정부로 넘기고 손을 터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노동부와 노사정위 공익위원들이 월차·생리휴가 폐지와 휴일무급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등 사용자쪽 안을 지지하는 모습을 내비치자 노동계는 하반기 총력투쟁을 벌써부터 조직화하고 있다. 노사정위 선한승 위원은 노동계나 사용자의 동의없이, 사회적 합의에 실패한 채 정부입법으로 가면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