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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국민의 뺨 때리는 정치 명분없는 날치기 강행하는 여당, 무조건 발목 잡는 야당… 산소 같은 정치인이 그립다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싸울거리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인도의 초대총리인 자와하를랄 네루의 말을 인용해서 정치를 “국민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더 좋은 정치는 아예 국민의 뺨에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될 터이다. 과연 우리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잘 닦아주고 있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 국민의 뺨을 때려 눈물을 흘리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정치였다.
최근에 정국이 경색된 원인은 의외로 사소한 것이다. 적법한 의안 처리 절차를 거치지 않은 날치기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더구나 교섭단체의 구성요건 완화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통과시켜야 할 정도로 중요하거나 급박한 사안이 절대 아니다. 야당도 잘못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여당의 날치기가 잘못된 일이라고 해서 야당의 잘못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교섭단체의 구성요건 완화가 국회의 원만한 운영을 포기하고서라도 ‘실력저지’를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여당이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나서는 것은 아닌가 의심받을 정도로 야당의 반응은 신경질적이다. 이쪽저쪽 줄타기를 하면서 교섭단체가 되고 싶어하는 자민련도 문제이다. 4·13총선에서 국민은 자민련을 외면했다. 자민련은 왜 국민이 자기 당에 등을 돌렸는지 깊이 반성해야 했다. 패배를 거울삼아 바른 정치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교섭단체 구성에만 연연하면 자민련에 내일은 없다.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치권의 정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본질을 정치인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정치가 잘 돌아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정치의 목적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의 꿈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다.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한다든지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든지 정의의 구현, 복지의 증진으로 삶의 질의 향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정치의 본령인 것이다. 여당은 비로 이같은 정치를 주도해 나갈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여당은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당으로 집권한 여당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야당에게만 책임을 미루는 것은 문제다. 언제까지 ‘머리 수의 정치’에만 연연할 작정인가. 이제 임기가 거의 절반이 다 되어가는 여당이 사는 길은 오직 개혁뿐이다.
정치는 상생의 싸움인데…
정치를 비판하는 목소리 가운데 하나가 정치가 할 일은 안 하고 싸움만 일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기본적으로 싸움이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이쪽과 저쪽으로 갈라져 싸우는 것이 정치이다. 권력을 장악한 쪽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결국 정치란 정치세력들이 서로 우리가 국민을 잘살게 해주겠다고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은 치고 받고, 죽고 죽이는 사생결단의 싸움이어서는 안 된다. 서로 다같이 잘사는 상생의 싸움이어야 한다.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너도 살고 나도 살자, 누가 잘사나 겨뤄보자’는 싸움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상생의 정치’를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 표현만은 정치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그런데 왜 국민은 정치의 싸움을 못마땅해할까. 싸우라고 공식적으로 주어진 공간인 국회는 비워두고 장외에서 싸우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 말로써 싸우지 않고, 몸싸움만 벌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안은 제쳐두고 지엽적인 것에 매달려 죽기살기로 싸우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
정치의 실타래를 풀 사람은 국민뿐
가장 좋은 정치란 산소와 같은 것이다. 늘 산소를 마시고 살면서 산소가 존재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공기가 나빠진 다음에야, 또는 공기가 희박한 곳에 가서야 산소의 존재를 인식하고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가. 산소 같은 정치, 산소 같은 정치인은 어디 있을까. 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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