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점 ] 2000년08월02일 제320호 

[초점] 국민의 뺨 때리는 정치

명분없는 날치기 강행하는 여당, 무조건 발목 잡는 야당… 산소 같은 정치인이 그립다


(사진/손혁재/ 참여연대협동사무처장·정치학 박사)


이 땅에 정치는 있는가. 아마 최근의 우리 정치가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서 그렇다고 대답할 둔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은 많지만 정치는 없고, 국회의원은 많지만 국회는 없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절망은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다. 이러다가는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경멸당하고 마침내는 증오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과연 정치는 무엇인가. 정치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싸울거리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인도의 초대총리인 자와하를랄 네루의 말을 인용해서 정치를 “국민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더 좋은 정치는 아예 국민의 뺨에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될 터이다. 과연 우리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잘 닦아주고 있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 국민의 뺨을 때려 눈물을 흘리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정치였다.


(사진/방충망을 뚫고 탈출했다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발각된 김종호 국회부의장)


제15대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도 거센 국민의 비판을 받았다. IMF 위기를 막지 못한 ‘무능한 정치’, 그리고 IMF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싸움만 벌인 ‘정신 못 차린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은 싸늘했다. 15대 국회를 ‘뇌사국회’니 ‘식물국회’라 낮추어 불렀고, 제16대 총선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에 의한 낙천·낙선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새 천년 첫 국회인 제16대 국회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국민의 기대가 매우 크다. 15대와는 달리 법정 개원일을 지키고, 원 구성을 무사히 마치면서 16대 국회는 역시 15대 국회와 다르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요즘의 정치권 움직임을 보면 ‘혹시나’ 했던 국민의 바람은 ‘역시나’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최근에 정국이 경색된 원인은 의외로 사소한 것이다. 적법한 의안 처리 절차를 거치지 않은 날치기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더구나 교섭단체의 구성요건 완화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통과시켜야 할 정도로 중요하거나 급박한 사안이 절대 아니다. 야당도 잘못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여당의 날치기가 잘못된 일이라고 해서 야당의 잘못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교섭단체의 구성요건 완화가 국회의 원만한 운영을 포기하고서라도 ‘실력저지’를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여당이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나서는 것은 아닌가 의심받을 정도로 야당의 반응은 신경질적이다. 이쪽저쪽 줄타기를 하면서 교섭단체가 되고 싶어하는 자민련도 문제이다. 4·13총선에서 국민은 자민련을 외면했다. 자민련은 왜 국민이 자기 당에 등을 돌렸는지 깊이 반성해야 했다. 패배를 거울삼아 바른 정치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교섭단체 구성에만 연연하면 자민련에 내일은 없다.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치권의 정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본질을 정치인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정치가 잘 돌아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정치의 목적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의 꿈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다.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한다든지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든지 정의의 구현, 복지의 증진으로 삶의 질의 향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정치의 본령인 것이다. 여당은 비로 이같은 정치를 주도해 나갈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여당은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당으로 집권한 여당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야당에게만 책임을 미루는 것은 문제다. 언제까지 ‘머리 수의 정치’에만 연연할 작정인가. 이제 임기가 거의 절반이 다 되어가는 여당이 사는 길은 오직 개혁뿐이다.

정치는 상생의 싸움인데…


(사진/지난 7월24일 밤 국회법 개정안 변칙처리에 항의하기 위해 찾아온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술을 권하는 김 부의장)


원내 과반수에 육박하는 거대야당인 한나라당도 믿음직스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야당은 정치의 소금과 같은 존재이다. 소금이 부패를 막아주는 것처럼 야당도 정치의 타락과 권력의 부패를 막는 구실을 해야 한다. 야당이 제대로 섰을 때 권력이 한눈을 팔지 않고 민생에 힘을 쏟게 된다. 다음 선거 때 야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이 가질 수 있어야 정치불신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전한 정책야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예컨대 남북교류에 대해 상호주의를 내세워 비판부터 하는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다. 남북교류에 대해서는 초당적인 협력을 하다가 만일 정부와 여당이 잘못할 때에는 따끔하게 비판하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야당이 지금처럼 사보타주에 가까울 정도로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만 잡는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국민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정치를 비판하는 목소리 가운데 하나가 정치가 할 일은 안 하고 싸움만 일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기본적으로 싸움이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이쪽과 저쪽으로 갈라져 싸우는 것이 정치이다. 권력을 장악한 쪽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결국 정치란 정치세력들이 서로 우리가 국민을 잘살게 해주겠다고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은 치고 받고, 죽고 죽이는 사생결단의 싸움이어서는 안 된다. 서로 다같이 잘사는 상생의 싸움이어야 한다.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너도 살고 나도 살자, 누가 잘사나 겨뤄보자’는 싸움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상생의 정치’를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 표현만은 정치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그런데 왜 국민은 정치의 싸움을 못마땅해할까. 싸우라고 공식적으로 주어진 공간인 국회는 비워두고 장외에서 싸우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 말로써 싸우지 않고, 몸싸움만 벌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안은 제쳐두고 지엽적인 것에 매달려 죽기살기로 싸우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

정치의 실타래를 풀 사람은 국민뿐


(사진/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이 김종호 부의장을 찾기 위해 지붕 위에 올라가 주변을 살피고 있다)


<논어>를 보면 공자는 정치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정치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는커녕, 문제가 없는 것도 정치와 관련되면 문제가 생기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정치가 스스로 문제 해결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짓이나 마찬가지이다. 실타래처럼 엉킨 정치의 가장 강력한 해결사는 역시 주권자인 국민이다. 정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일, 어떤 정치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똑똑히 기억하는 일이 바로 정치를 살린다. 나아가 우리 자신이 사는 길이기도 하다. 잘못된 정치의 가장 커다란 피해자는 바로 국민 자신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정치란 산소와 같은 것이다. 늘 산소를 마시고 살면서 산소가 존재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공기가 나빠진 다음에야, 또는 공기가 희박한 곳에 가서야 산소의 존재를 인식하고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가. 산소 같은 정치, 산소 같은 정치인은 어디 있을까.

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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