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점 ] 2000년07월26일 제319호 

[초점] 여권 상승세, 문제는 없나

성급한 ‘반통일 세력’ 낙인 찍기 등 풀어야 할 과제 산적

2002년 대선을 잠깐 전망해보자. 4·13총선 이후 여권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였다. 첫째로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97년 대선에서 재미를 본 ‘충청+호남’ 지역연합론도 두번씩이나 통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권 핵심부는 당연히 고민에 빠졌다.

‘한반도 정치’ 시대, 대선이 보인다


(사진/남북관계의 개선으로 국민들의 보수적 정치의식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 회담 장면)


그러나 최근 이들의 표정에선 자신감이 읽힌다. 다름 아닌 남북관계 때문이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뒤바뀌면서 기본적으로 여권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차기 문제와 관련해 남궁진 청와대 정무수석은 “통일과 남북협력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내년 하반기에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7월14일)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2002년 대선의 최대 이슈가 될 것이며, 그에 관한 한 여권이 단연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비쳐보인 대목이다.

여권의 인식은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2002년의 유권자들은 다음 정권의 담당자가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킬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꼽게 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이산가족 상봉이나 장관급 회담을 비롯해 남북관계가 한 단계씩 풀려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전통적 또는 보수적 정치의식이 점차 바뀔 가능성도 충분하다. 당장 북한쪽이 월북자 명단을 제시했는데도, 남한사회에선 연고자들이 스스럼없이 이산가족 상봉을 희망하고 나선 게 큰 변화다. 얼마 전까지도 월북 가족은 숨겨야 할 존재였다.

이러한 변화는 한마디로 ‘한반도 정치시대’의 개막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이 새로운 정치주역으로 등장했으며, 따라서 남한의 정치세력들도 모든 행보에서 북한이란 존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변화한 환경이 여권에 정치적으로 유리한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북한 방송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비난 사태를 둘러싸고 빚어졌던 남한 정치의 소용돌이는 단적인 예이다. 한나라당은 북의 비난이 쏟아지자 날카롭게 반응했다. 북의 선전이 과거처럼 무시해버리기는 곤란할 정도로 아픈 구석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선전이 반복되면 남한 주민들이 이 총재의 대북정책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국민들의 의식이 냉전적 대결의식을 벗어나는 것도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에 유리하다. 양당이 큰 이념적 차이가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어쨌든 민주당이 좀더 리버럴한 색채를 견지해왔고 색깔 시비로 종종 궁지에 몰렸던 것도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권이 한반도 정치시대에 걸맞게 시야를 넓히면서 제 구실을 한다고 보긴 어렵다. 여권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조급증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청와대의 일부 참모와 민주당은 일각의 비판처럼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국 주도권을 휘어잡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남궁진 정무수석은 북한 비난방송 사태 당시 이 총재를 겨냥해 “사려깊지 못하다”고 공격했다. 정무수석이 발언을 못할 바는 없지만 발언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이 총재의 어떤 점이 왜 잘못이라고 보는지를 지적하는 게 옳다. 그러면 상호 토론과 논쟁이라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려가 깊다는 둥 깊지 못하다는 둥 하는 것은 분위기에 편승한 인신공격이 될 수 있다.

비난방송에 따른 국회 파행 당시 민주당 의원총회는 더 나아갔다. “반통일세력들의 도전을 일치된 단결로 저지해야 한다”(이협 의원) “군사독재적, 파쇼적 모습이 한나라당에 잔존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송영길 의원)…. 상대를 한마디로 반통일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낙인 찍기’ 수법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진보적 의견을 ‘빨갱이’ ‘색깔이 의심스럽다’는 등의 낙인을 찍어 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하려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적으로 볼 때는 그냥 두어도 될 일을 갖고, 야당을 과잉자극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정쟁의 소용돌이로 끌고가는 측면도 있다.

비난방송 사태로 떠오른 ‘속도조절론'


(사진/"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여권이 정국주도권을 휘어잡는 데 골몰하고 있지는 않은가." 민주당의 "반통일세력" 발언은 야당을 과잉자극할 위험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7월18일 김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중요한 것은 차분히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질서있고 차분하게 일을 추진해야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고 남북이 서로 안심하고 산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이산가족 상봉을 조심스럽게 추진하라는 맥락이었지만, 비난방송 사태로 빚어진 정국의 혼미와 관련해 일종의 ‘속도 조절론’으로도 해석될 대목이었다.

정작 중요한 ‘한반도 정치’의 이슈로부터는 민주당이 소외되고 있다는 인상도 짙다. 당 차원의 특별기구인 남북관계지원특위는 정상회담 이후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청와대에 대한 건의문을 채택했다. 건의의 뼈대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와 달라진 남북관계 등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홍보할 것인지였다고 한다. 특위의 한 관계자는 “만화의 활용방안 등도 건의문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성과 홍보방안 등은 사실 국정홍보처가 광고대행사 따위의 자문을 얻을 일이지,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댈 일은 아니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당 차원의 고유 과제로는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가 떠올랐다. 그러나 임시국회에서 서영훈 대표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그나마 대정부 질문에 들어가자 여러 의원들은 제각각 “완전 폐지하자” “3단계로 개·폐하자” “즉각 정비할 용의는 없는가?” 등 말 그대로 ‘중구난방’식 의견을 쏟아냈다. 지난해 하반기 민주당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자민련의 협조를 구하려던 모습에 비해서도 오히려 후퇴한 것이다. 민주당의 모습은 정상회담 직후 검찰이 관련 법규 개정방안을 발표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인 것과도 비교됐다.

정부에 끌려가는 여당

여당의 ‘한반도 정치’로부터의 소외는 기본적으로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기인한 탓도 크다. 또한 관련 정보가 당에 적절하게 브리핑되고 있는지도 불확실하다(남북관계지원특위 관계자는 “신문에 나는 것보다 조금 더 아는 정도”라고 밝힘).

그러나 좀더 본질적 문제는 여당이 워낙 오래 전부터 자생력을 상실한 탓인 것 같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한반도 정치시대건 남한 정치시대건 관계없이 당은 여전히 정부의 ‘구전 홍보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북의 <조선일보> 견제에 바른 해법은?

북한 당국과 <조선일보> 사이의 격한 감정 싸움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걸까.

한나라당은 북한 당국의 <조선일보> 기자의 입국 거부 등을 “북한의 국내언론 길들이기용”으로 규정하고 “정부의 굴욕적 대북 정책이 이를 부추겼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는 정부가 저자세를 버리고 북한 당국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사태해결을 앞당길 수 있게 된다.

과연 그럴까. 사실 북한 당국으로부터 입북을 거부당한 언론은 <조선일보>만은 아니었다. 외국 언론이긴 하지만 일본의 보수 우익여론을 대표하는 <산케이신문>도 92년 이후 줄곧 입북을 거부당했다. 지난해 12월 무라야마 전 총리를 단장으로 한 일본 초당파 의원들의 방북 때도 이 신문 기자만 북한으로부터 취재를 거부당했다. 이 신문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비방·중상기사를 썼다는 이유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산케이신문>이 입북을 거절 당할 때마다 일본쪽에서는 주로 북쪽 고위인사와 선이 닿아 있는 정치인이 나서 화해를 주선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했다. <산케이신문>의 보도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신문의 기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북한쪽 태도가 완강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물론 어느 누가 중재에 나서도 쉽사리 언론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강경태도를 누그러뜨릴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옛동독도 72년 동서독 정상회담이 이뤄진 뒤 서독 언론에 대한 ‘길들이기’에 나섰다. 동독은 사회주의에 대한 서독 언론의 비판적인 보도를 내정간섭과 모독으로 규정하고 1973년에 시행령까지 만들어 제재조처를 취했다. 75년 서독탈출주민의 동독 잔류가족에 대한 동독 정부 정책을 비판한 <슈피겔> 기자를 “도발적인 의도를 갖고 동독 정부를 모독했으며, 그에 따라 건설적인 두 진영간 평화정책 추진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추방하기도 했다. 그뒤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서독 기자 여럿이 추방되거나 입국이 거부된 적이 있다.

하지만 서독 정부는 한동안 동독 정부의 특정 언론 배제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동독 정부의 이런 태도는 체제유지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서독 정부로서는 정부 차원의 압력행사가 한계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독 정부는 동방정책을 더욱 가속화해 동독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주면서 서독 언론에 대한 편견과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남쪽 정부가 눈여겨 볼 대목인 것같다.

임을출 기자chul@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