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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여권 상승세, 문제는 없나 성급한 ‘반통일 세력’ 낙인 찍기 등 풀어야 할 과제 산적
2002년 대선을 잠깐 전망해보자. 4·13총선 이후 여권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였다. 첫째로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97년 대선에서 재미를 본 ‘충청+호남’ 지역연합론도 두번씩이나 통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권 핵심부는 당연히 고민에 빠졌다.
‘한반도 정치’ 시대, 대선이 보인다
여권의 인식은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2002년의 유권자들은 다음 정권의 담당자가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킬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꼽게 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이산가족 상봉이나 장관급 회담을 비롯해 남북관계가 한 단계씩 풀려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전통적 또는 보수적 정치의식이 점차 바뀔 가능성도 충분하다. 당장 북한쪽이 월북자 명단을 제시했는데도, 남한사회에선 연고자들이 스스럼없이 이산가족 상봉을 희망하고 나선 게 큰 변화다. 얼마 전까지도 월북 가족은 숨겨야 할 존재였다. 이러한 변화는 한마디로 ‘한반도 정치시대’의 개막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이 새로운 정치주역으로 등장했으며, 따라서 남한의 정치세력들도 모든 행보에서 북한이란 존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변화한 환경이 여권에 정치적으로 유리한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북한 방송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비난 사태를 둘러싸고 빚어졌던 남한 정치의 소용돌이는 단적인 예이다. 한나라당은 북의 비난이 쏟아지자 날카롭게 반응했다. 북의 선전이 과거처럼 무시해버리기는 곤란할 정도로 아픈 구석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선전이 반복되면 남한 주민들이 이 총재의 대북정책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국민들의 의식이 냉전적 대결의식을 벗어나는 것도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에 유리하다. 양당이 큰 이념적 차이가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어쨌든 민주당이 좀더 리버럴한 색채를 견지해왔고 색깔 시비로 종종 궁지에 몰렸던 것도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권이 한반도 정치시대에 걸맞게 시야를 넓히면서 제 구실을 한다고 보긴 어렵다. 여권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조급증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청와대의 일부 참모와 민주당은 일각의 비판처럼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국 주도권을 휘어잡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남궁진 정무수석은 북한 비난방송 사태 당시 이 총재를 겨냥해 “사려깊지 못하다”고 공격했다. 정무수석이 발언을 못할 바는 없지만 발언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이 총재의 어떤 점이 왜 잘못이라고 보는지를 지적하는 게 옳다. 그러면 상호 토론과 논쟁이라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려가 깊다는 둥 깊지 못하다는 둥 하는 것은 분위기에 편승한 인신공격이 될 수 있다. 비난방송에 따른 국회 파행 당시 민주당 의원총회는 더 나아갔다. “반통일세력들의 도전을 일치된 단결로 저지해야 한다”(이협 의원) “군사독재적, 파쇼적 모습이 한나라당에 잔존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송영길 의원)…. 상대를 한마디로 반통일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낙인 찍기’ 수법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진보적 의견을 ‘빨갱이’ ‘색깔이 의심스럽다’는 등의 낙인을 찍어 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하려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적으로 볼 때는 그냥 두어도 될 일을 갖고, 야당을 과잉자극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정쟁의 소용돌이로 끌고가는 측면도 있다.
비난방송 사태로 떠오른 ‘속도조절론'
정작 중요한 ‘한반도 정치’의 이슈로부터는 민주당이 소외되고 있다는 인상도 짙다. 당 차원의 특별기구인 남북관계지원특위는 정상회담 이후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청와대에 대한 건의문을 채택했다. 건의의 뼈대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와 달라진 남북관계 등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홍보할 것인지였다고 한다. 특위의 한 관계자는 “만화의 활용방안 등도 건의문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성과 홍보방안 등은 사실 국정홍보처가 광고대행사 따위의 자문을 얻을 일이지,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댈 일은 아니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당 차원의 고유 과제로는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가 떠올랐다. 그러나 임시국회에서 서영훈 대표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그나마 대정부 질문에 들어가자 여러 의원들은 제각각 “완전 폐지하자” “3단계로 개·폐하자” “즉각 정비할 용의는 없는가?” 등 말 그대로 ‘중구난방’식 의견을 쏟아냈다. 지난해 하반기 민주당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자민련의 협조를 구하려던 모습에 비해서도 오히려 후퇴한 것이다. 민주당의 모습은 정상회담 직후 검찰이 관련 법규 개정방안을 발표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인 것과도 비교됐다.
정부에 끌려가는 여당
여당의 ‘한반도 정치’로부터의 소외는 기본적으로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기인한 탓도 크다. 또한 관련 정보가 당에 적절하게 브리핑되고 있는지도 불확실하다(남북관계지원특위 관계자는 “신문에 나는 것보다 조금 더 아는 정도”라고 밝힘). 그러나 좀더 본질적 문제는 여당이 워낙 오래 전부터 자생력을 상실한 탓인 것 같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한반도 정치시대건 남한 정치시대건 관계없이 당은 여전히 정부의 ‘구전 홍보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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