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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화해의 시대, 한나라당의 고민 ‘상호주의’ 원칙 고수하는 이 총재의 강경론… “통일에 대한 비전 없다” 내부 비판 들끓어
“우리 당이 반통일적이고, 남북관계에 발목만 잡는다는 이미지가 걱정스럽다. 2002년 12월 대선에서 국민이 우리 당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질지 의문이다.”(한 핵심 정책관계자) “대선을 고려해 좀더 정교한 통일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그러나 현실의 역동성이 문제다.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때문에 명확한 대응방안을 찾기도 어렵다.”(이 총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한 인사) “총재가 통일에 대한 비전이 없으니, 시대의 흐름을 못 읽는 것이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과실을 따먹으려면 우선 그 배에 올라타야 한다. 그런데 우리 당은 강가에서 서서 ‘배 떠내려간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한 수도권 초선의원)
남북관계가 거래관계인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급진전하면서 한나라당이 대북·통일정책 방향 설정을 놓고 내부논란에 빠져들고 있다. 핵심은 한나라당이 상호주의에 입각한 보수·강경 노선의 대북정책을 지속하는 게 올바르냐는 것이다. 사실 한나라당은 최근까지도 대북·통일정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성이 적었다. 북한의 ‘대남 적화노선’이 변하지 않았고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태도는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술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당내 보수파 의원들의 정세판단에 입각해 기존의 대북정책을 고수하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회창 총재가 정상회담 뒤 ‘6·15 남북공동선언’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국군포로와 남북어부 송환없는 비전향장기수 송환반대, 북한의 가시적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의 국보법 개정 반대 등을 제시한 것도 이런 분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물론 김원웅·안영근·김영춘 의원 등 몇몇 소장파들은 “상호주의는 남북관계를 거래관계로 보는 발상”이라고 반발하며 “상호이해에 바탕한 접근”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이 총재를 직접 찾아가 “당의 대북노선이 시대조류에 걸맞지 않다”며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총재가 ‘시기상조론’을 근거로 “상호주의 원칙 고수”를 강조하자, 지난 7월4일 의원 연찬회에서는 집단반란(?)까지 꾀했다. 일제히 국가보안법 폐지, 헌법 3조의 영토조항 개정, 비전향 장기수 송환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이 총재와 당내 보수파 의원들을 향해 직격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찬반표결 강행이라는 강공으로 이런 반발을 제압했다. 그뒤 “표결은 좀 지나쳤다”고 사과했지만, 7월6일 16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상호주의는 남북관계의 기본적 원천”이라며 “주한미군 문제, 헌법개정, 국가보안법 폐지가 지금 거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겉보기에는 대북·통일정책의 기본 노선에 전혀 변화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한나라당 내부가 서서히 들끓고 있다. 당내 여기저기서 “남북관계 및 북-미, 북-일관계의 급속한 진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전에 대한 전망 등을 고려할 때 보수일변도의 대북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격동기의 경험을 토대로 진보적 관점에서 한나라당의 대북노선을 비판했던 ‘386의원’들뿐이 아니다. 이번에는 이 총재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측근인사들도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대선이 두려워 진다!"
아직 “정부여당이 이 총재와 한나라당을 반통일 세력으로 낙인찍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목청이 높은 한나라당 안에서 왜 이런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을까. 우선 남북관계의 변화가 예상 밖으로 급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조건부로 미사일 개발 중단 용의를 표명하고 북-미, 북-일관계의 진전이 가시화하는 등 실질적 변화가 목격되면서 ‘당위론적 원칙’만을 강조하는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남북관계 진전 정도나 후속합의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2002년 대선에서는 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현재와 같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당위적 비판론을 고수할 경우 대선전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몰리고 대북정책에 대해 말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이 총재의 다른 한 측근) “대선을 의식해서 뭔가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이 총재 주변에서도 움트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안은 먼 미래의 일만이 아니다. 당장의 대여전략에서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총재의 최측근으로 분류돼온 하순봉 전 사무총장은 지난 7월20일 오후 정창화 총무가 부정선거 국정조사를 포기한 데 반발하는 보수성향의 의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남북고위급회담 등 8월 중순까지의 (남북관계) 일정을 볼 때 국민 정서가 한쪽으로 치우칠 우려가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괜히 시간을 끌다가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다 잃는다.” 행자위와 법사위 연석회의라도 열자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 싱크탱크를 자처한 인사들마저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인지, 일시적으로 고조된 뒤 냉랭해질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DJ 임기 동안 경제여건이 계속 좋다면 남북관계는 순항하겠지만, 여건이 나빠지면 대북정책을 추진할 휘발유가 떨어진다. 북한에 뭔가를 줘야하는 현재 같은 메커니즘 속에서는 남북관계를 결코 진전시킬 수 없다. 그러나 경제가 어떻게 될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여야 모두 남북문제를 놓고 일종의 ‘정치적 갬블링(놀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
대북 관련 ‘브레인’ 보수 일색
강경론을 부추기는 한나라당 내부의 구조적 한계를 수정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총재가 학자나 평론가라면 현재 우리 당의 지적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국가지도자가 되려면 국민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고 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내 보수파들이 이 총재 주변에 포진해 대북정책을 강성기조로만 몰아가고 있다.”(한나라당 다른 통일문제 전문가) 시대흐름에 걸맞은 통일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청사진이 없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격이 ‘딴죽걸기’로 비쳐지고 있는 만큼 그를 부추기는 내부구조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구조적 한계는 대북·통일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브레인’들이 보수 일색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의 대북·통일정책 형성의 핵심 경로는 크게 3가지다. 남북정상회담 이전부터 이 총재에게 통일문제에 대해 조언해온 남북관계특위(위원장 이세기 전 의원)가 핵심 중 핵심이다. 특위는 지금까지 10여차례 회의를 거듭하며 이 총재에게 남북간 주요 현안에 대한 각종보고서를 올렸다. 특위에는 정형근(부위원장)·김용갑·조웅규 의원, 이신범 전 의원, 송영대 전 통일원차관 등 보수주의자를 자임하는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다른 한축은 정책위. 정책위는 남북관계특위나 여의도연구소에서 내놓은 각종 아이디어나 제안을 정치적 현실을 고려해 정책적 현안으로 다듬는 역할을 맡고 있다. 외교·안보·국방문제를 전담한 1정조위원장은 정형근 의원이다. 경제를 다루는 제2정조위원장은 이한구 의원이다. 이 의원은 50만달러 이상 현금지급의 경우 국회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등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경협론을 다듬어 온 핵심인물이다. 나머지 또 한축은 여의도연구소다.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출신인 유승민 소장이 이회창 총재의 지시를 받아 조사반을 동원해 여론을 수렴하고, 외부 전문가들의 견해를 아웃소싱하는 창구역할을 담당한다. “소장파의 의견을 수렴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유 소장은 “아직 규모가 적은 게 한계”라고 말한다. 이 총재는 또 김경원 사회과학연구원원장, 백진현 서울대 교수 등 대표적인 보수논객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고 있다고 한나라당의 한 통일문제 전문가는 전했다. 활발한 의견개진 통로의 부재도 한나라당 대북정책의 유연화를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 수도권 초선의원은 “공식회의석상에서 통일정책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자, 이 총재 측근들이 ‘총재실 문이 열렸으니 총재에게 말하면 될 것을 왜 공개적으로 발언을 하느냐’고 질책했다”면서 “통일문제에 대한 공론화 장을 극소화하려는 이 총재의 권위주의적 발상이 싫어 아예 총재실을 찾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한 386의원은 “총재실을 찾아가 얘기했지만, 상호주의만 계속 강조하는 데 질려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좀더 본질적으로는 이 총재의 통일론 부재를 꼬집는 인사들도 있다. 한나라당 한 재선의원은 “이 총재가 남북문제에 대해 고뇌한 축적물이 없는 상황에서 급격히 남북관계가 진전되자 결국 주변에 포진한 보수파의 목소리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물론 한나라당이 무작정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이런 우려와 자가진단 속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두드러진 움직임은 보수색채 탈피. 남북관계특위 위원인 윤여준 의원은 “특위가 보수인사 중심이라는 부담을 덜기 위해 조만간 위원회에 386의원들을 참여시키는 등 조직을 확대개편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라고 말했다. 남북특위에 대한 ‘젊은 피 수혈론’인 셈이다. 아울러 중국, 미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연계 강화를 통한 관계개선 및 대북정보 수집에도 주력하기로 했다. 남북관계특위가 지난 7월4일 중국을 방문한 것은 이런 변신의 한 자락인 셈이다.
차별화된 통일정책 가능한가
남은 문제는 한나라당이 과연 김대중 대통령과 차별화된 신선한 통일방안을 만들 수 있는냐는 점이다. 한나라당 통일론 연구에 관여한 한 핵심인사는 “우리의 고민은 DJ의 진보적 통일관을 넘어설 수는 없고, 과거 정부의 통일방안을 답습할 경우 식상하다는 느낌을 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며 “과거 정부의 통일방안에 정상회담 이후 변화된 상황을 얹은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원 정책실장 출신인 구본태 남북관계특위 위원은 “DJ와는 다르게 하되, 남북정상회담의 긍정적인 성과를 떠안는 선이 될 것”이라며 “과거안 40%, 새로운안 60%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남북 현실에 대한 냉철한 현실인식과 통일에 대한 비전을 적절히 조화시킨 통일론을 만들어 국민을 설득할 수있는 대북·통일정책을 펼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임을출 기자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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