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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자립형 사립고, 누굴 위한 것인가 교육당국 “이미 정해진 길”… 전교조 등에선 “교육의 불평등 심화” 강력한 반대
잠잠하던 고교 평준화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가만히 있는 고교 평준화를 흔드는 것은 자립형 사립고교 도입이다.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위원장 이돈희)는 지난 7월11일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립형 사립고를 2002년부터 도입하는 내용의 교육개혁안을 보고했다. 교육부도 자립형 사립고 제도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2002년 새 대입제도 시행에 발맞춰 이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사학재단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것
자립형 사립고는 학교 스스로 학생과 교사를 선발하고 수업료도 따로 매기는가 하면 교과과정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다. 거주지에 따라 이른바 ‘뺑뺑이’로 학교가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가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평준화제도를 뿌리부터 뒤흔들 수밖에 없다. 교육당국은 고교평준화를 ‘보완’하는 차원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평준화제도가 부분 해제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립형’이라는 수식어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홀로 서는 학교라는 의미에서 붙은 것이다. 자립형 사립고 논쟁은 지난 95년 교육개혁위원회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교개위는 ‘5·31 교육개혁과제’에서 98년부터 자립형 사립고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평준화 정책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빚어지면서 도입 추진이 백지화됐다. 가라앉았던 자립형 사립고 논란은 지난해 5월 교육부가 또다시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담은 ‘교육발전 5개년 계획시안’을 내놓으면서 불씨가 되살아났다. 그러나 역시 논란 끝에 도입 문제가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전교조와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를 비롯한 교육시민단체는 즉각 반대성명을 냈다. “자립형 사립고 제도는 어렵사리 지켜온 고교평준화 정책을 근간부터 뒤흔드는 것이다. 입시 과열경쟁과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학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제한받음으로써 불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전교조) “학부모들의 이기심 때문에 아이들만 피해를 본다. 교육의 형평성을 해치고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몰아 교육을 황폐화시킬 것이 뻔하다.”(참교육학부모회 박인옥 사무처장)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형성되는 지점은 △고교 평준화 △입시지옥 심화 △교육에 시장원리 도입 △사학재단 부패문제 등이다.
교육에도 시장논리가 도입돼야 하는가
입시지옥 가중 문제는 자립형 사학이 학생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입시’에 매달릴 것이란 점에서 이미 예고되고 있다. 좋은 대학 가기만을 지향하는 쪽으로 학생들을 내몰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평준화 학교보다 몇배나 더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까지 자녀를 자립형 사학에 보내는 학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려면 신흥 입시 명문고로 등장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게 전교조의 진단이다. 이 부분은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되는 학교가 몇곳이나 될 것인지와도 맞물려 있다. 교육부는 사립고가 원한다 해서 다 자립형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교육당국이 선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자립형이 되면 학교운영비에서 재단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20∼30%까지 올리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현재 사립고 재단전입금이 2%대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20∼30%를 감당하면서 자립형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립고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교육부의 판단이다. 재정적으로 탄탄한 학교 외에는 쉽사리 덤벼들기 어렵다는 논리다. 하지만 전교조의 예상은 다르다. 전교조 이금천 국장은 “재정이 탄탄한 곳만 가능하다는 논리는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함정이다. 몇개 학교에 한정한다 하지만, 일단 돌파구가 생기면 누구나 자립형으로 가려 할 것이다. 자립형만 되면 엄청나게 비싼 등록금을 받아 1년 만에 본전을 뽑을 수 있는데 어느 사립재단이 안 하겠느냐”고 반박한다. 자립형 사립고는 평준화의 보완이 아니라 걷잡을 수없이 평준화 고리를 끊을 파열구라는 얘기다. 자립형 사립고는 교육에도 시장원리가 도입돼야 하느냐는 논란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국가의 공교육 책임과도 맞닿아 있다. 올해 교육예산은 19조2천억원이다. 이 가운데 중·고교 사학에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돈은 한해 1조원 정도다. 사립고가 모두 자립형으로 전환되면 이 재원이 절약된다. 하지만 이는 공교육 책임을 사학에 떠넘기는 문제를 제기한다. 부산교대 심성보 교수는 “교육은 시장논리로 풀 수 없다.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국가의 교육이념은 누구에게나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공교육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런 근대국가의 공교육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자립형 사립고는 교육을 학부모들의 책임에 맡기던 중세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준다 하지만 치맛바람이 판치는 속물적 소비자 논리가 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교육개발원 강영혜 연구원은 시장논리를 옹호하는 쪽에 서 있다. 강 박사는 “자립형으로 바뀌면 등록금을 지금보다 5∼10배까지 더 받겠다는 학교도 있다. 하지만 교육의 질에 대한 담보없이 무한정 비싼 등록금을 내고 자녀를 보낼 학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립형을 선택한 사립고는 교육시장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도태될 수도 있는 위험을 안아야 한다”며 “지금의 공교육이나 평준화교육에 만족할 수 없는 ‘특수교육 수요자’가 분명히 있다. 교육권은 국가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위해 예외적 출구를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실사학 부패 부추긴다” 우려도
실제로 일단 학교를 세우기만 하면 학생수에 따라 대주는 국가보조금과 수업료를 챙기고 이 돈을 학교에 투자하기는커녕 오히려 재단으로 빼돌리는 사학법인 때문에 끝내 학교가 농성장이 되어버린 사례가 적지 않다. 부산교대 심성보 교수는 “겉으로 건학이념을 복원시켜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학부모들의 주머니에서 비싼 등록금을 걷어내겠다는 것이 사학재단의 본색”이라고 말했다. 새교위는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있는 58개 사립고가 우선적인 자립형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도 우선 각 시도에 한두개씩 자립형 사립고를 지정해 시범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김용호 정책연구부장은 “자립형은 사립이 본래 모습을 찾는 데 물꼬를 트는 것이다. 하지만 재정여건상 국가지원을 받지 않고 자립할 수 있다고 보는 학교는 100개 이하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교육시민단체는 비뚤어진 교육풍토에서 아무리 비싼 수업료를 내더라도 자녀를 입시 명문고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극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잉 교육열을 발판삼아 사립고는 너나할 것 없이 ‘자립’을 선언한 뒤 학생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몰고 대신 비싼 등록금을 요구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소수만을 위한 제도 될 공산 커
서울시내 고교의 경우 국·공립은 79개, 사립은 130개다. 70%에 가까운 사립고가 다들 자립으로 전환했을 때, 돈있는 학부모는 입시명문 사립고에 보내고 그럴 형편이 못되는 대다수 학부모들은 교육재정 부족으로 허덕이는 국·공립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다. 자립형 사립고는 입시에만 목을 매는 ‘일그러진 교육열’을 더욱 달구는, 소수만을 위한 제도가 될 공산이 크다. 헌법에 보장된 ‘교육받을 권리’는 교육의 평등이나 공공성을 뜻하는 것이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시민의 말은 되새겨볼 대목이다. “다들 ‘전국민이 교육 전문가’라고 하죠. 맞습니다. 우리 국민 누구나 다른 것은 몰라도 ‘교육적 차별’만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 여기에 깃들어 있습니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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