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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2 | 등록 2003.12.17(수) 제48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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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유기농 식단 ‘귀족의 식탁’ ? 일반 농산물보다 비싼 것은 생명 살리는 대가… 대량 공급 · 직거래 통하면 비용 크게 줄일 수도
유기농산물은 일반농산물보다 평균 2배가량 비싸다. 지난달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서울 지역 백화점과 할인점에서 배추·무·양파·오이·호박·양배추·고추·상추·당근 등 유기농 채소류 10개 품목 42가지의 값을 조사한 결과다. 제일기획이 2001년과 2002년 전국 28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유기농산물 소비실태를 조사한 결과도 흥미롭다. 전체 응답자의 29.8%가 유기농산물을 먹는다고 답했다. 서울의 경우 응답자의 30.7%, 월소득 500만원 이상 가구의 경우 45.7%가 유기농산물을 먹는다고 대답했다. 먹고살기 힘든 서민들 처지에서 보면 유기농은 배부른 자의 허영이란 생각이 들 만도 하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이평리 솔뫼농장은 유기농 쌀을 한살림에 납품한다. 이 쌀 한 가마 값은 일반 쌀값의 2배인 32만원가량이다. 왜 이리 비쌀까. 유기농산물이 비싼 것은 생산량이 적기 때문이다. 유기농 농사를 제대로 짓기 위해 드는 품을 생각하면 유기농산물 값을 ‘폭리’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반 쌀은 볍씨를 농약으로 소독하지만 유기농 쌀은 소금물과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에 번갈아 소독한다. 못자리로 옮겨진 일반 벼는 싹을 잘 틔우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사용한다. 유기농 벼는 농약 대신 목초액 등을 쓴다. 이렇게 해도 못자리에서 싹이 나오지 않는 볍씨가 30%가량 된다. 모내기를 한 뒤 일반 벼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3차례가량 뿌리지만 유기농 벼는 효소, 깻묵, 자연 퇴비 등을 뿌린다. 가을걷이 때 유기농 벼의 수확량은 일반 벼의 70%가량에 불과하다.
노력은 많고 생산량 적어… 판로 확보 어렵기도
김용옥 솔뫼마을 회장은 “노력에 비해 생산량이 적지만 생명과 자연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사는 사람들도 그런 마음으로 사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생산자와 소비자, 한살림 실무자가 합의해서 쌀값을 책정한다. 올해 비가 자주 와서 쌀 수확량이 일반 쌀의 60%선으로 떨어지자 오히려 소비자쪽에서 쌀값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일부 농가는 애써 지은 친환경 농산물을 일반 농산물 값에 팔기도 한다. 올해 강원도 한 지역의 경우 친환경 쌀농사로 전환하는 농가가 크게 늘었지만 마땅한 소비처를 찾지 못했다. 이 지역에서 생산한 친환경쌀은 400여t이지만 가을 수확 전 판로를 확보한 물량은 200여t에 불과하다. 끝까지 못 팔고 남은 쌀은 일반 쌀값에 처분해야 한다. 한국유기농업협회 관계자는 “유기농산물은 생산량의 70%가 팔리는 등 판로 확보가 어렵다. 공동물류센터가 없어 유통업체마다 생산지에 가서 사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류비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 2분기 도시 근로자 가구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 가구의 한달 평균 명목소득은 282만8천원이다. 이 중 식료품비는 18만6100원(6.6%)가량이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일반농산물보다 2배가량 비싼 유기농산물로 밥상을 모두 바꿀 경우 식료품비 부담이 최대 18만원가량 더 늘어난다. 하지만 실제 쌀, 김치부터 아이들 간식, 음료수까지 먹는 것을 모두 유기농을 쓰는 집은 별로 없다. 대부분 가정은 유기농 식품 중에서도 쌀 같은 주식, 아이들이 먹을 것, 조리할 때마다 들어가는 식용유, 조미료, 농약이 많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채소, 과일 중에서 몇개를 선택한다. 이남형(35·경기 고양시 행신동)씨는 “반찬과 아이 이유식은 유기농을 쓴다. 유기농산물 값이 비싼 것 같지만 외식을 자주 하는 집이라면 그 돈만 아껴도 집에서 유기농 식품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정에서 먹는 것을 유기농을 바꿀 경우 실제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하게 따져보자. 예를 들어 유기농 쌀 한 가마(80kg) 값은 32만원이고 일반 쌀 한 가마 값은 17만원가량이다. 유기농 쌀을 사먹으면 쌀값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 도시에 사는 4인 가족은 한달에 쌀 20kg가량을 먹는다. 80kg 쌀 한 가마를 사면 4인 가족이 넉달을 먹는다. 4인 가족이 유기농 쌀을 먹으면 한달에 4만원, 1년에 45만원가량의 쌀값이 더 드는 셈이다.
유기농 식단 관건은 “돈이 아니라 의지”
기존의 식성과 식단을 그대로 두고 재료만 유기농으로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들뿐더러 농촌과 환경, 사람을 살리자는 유기농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인스턴트 식품과 고기를 덜 먹고 야채와 제철 음식을 먹는 등 식생활을 바꾸면 유기농산물을 먹더라도 생각보다 돈이 적게 든다. 서울 성동구 구립 도선어린이집은 올 4월부터 아홉달째 유기농 식단으로 아이들을 먹이고 있다. 김이주 도선 어린이집 원장은 “유기농 식단으로 오전·오후 간식과 점심을 준비하고 있지만 급식비에는 큰 변화가 없다. 유기농 식단 시행은 돈 문제가 아니라 ‘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립 어린이집의 하루 급식비는 1745원이다. 8개월 동안 들어간 유기농 식비는 평균 1829원인데, 이 정도 차액은 예비비 등으로 어린이집 예산 안에서 자체 조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김이주 원장은 “유기농 식단을 도입하기 전에도 아이들을 신경써서 먹이려면 하루 급식비가 약 2천원은 들었다. 유기농 식품을 사용한 뒤 식비 부담이 늘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기농 식단 도입 초기에 일부 학부모들은 ‘성장하는 아이들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고기나 생선 공급이 이전에 비해 줄어든 탓에 유기농 식단이 부실해진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이런 심리적 불안감을 감안해 생선, 해물, 고기 등은 동네 재래시장 등에서 따로 구입해서 유기농 식단을 보완했다. 김 원장은 “요즘 어린이들의 몸은 패스트푸드, 고기, 유제품 등을 많이 먹어 과잉 영양 상태에 있다. ‘고기를 먹어야 잘 먹는다’는 이야기는 먹고사는 형편이 어려웠던 60·70년대라면 몰라도 요즘은 맞지 않다. 가뜩이나 집에서 고칼로리 식사를 하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저칼로리 식품과 야채를 많이 먹어야 영양상 균형이 맞는다”고 말했다. 도선 어린이집에서는 과잉 영양 공급에 대한 문제점을 알리는 학부모 교육을 병행해 유기농 식단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했다.
살림을 생각하는 생태유아공동체 설립
도선어린이집은 수도권 생태유아공동체(www.ecokid.org, 02-2260-8590)에 회원으로 가입해 유기농 식품을 공급받고 있다. 생태유아공동체는 아이들에게 유기농산물을 먹여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살리고 자연과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자는 운동이다. 생태유아공동체는 이런 뜻에 공감하는 학부모, 교사,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 유기농 생산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비영리 사단법인체로 운영된다. 생태유아공동체 관계자는 “‘세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린 시절의 식습관이 평생을 좌우한다. 유치원·어린이집의 유기농 단체 급식은 대량 공급과 직거래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수도권 여러 지역 유치원과 어린이집들이 참여하면서 유기농이 가진 자의 귀족상품이란 오해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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