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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현대사가 걸어온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효자동 이발사> 등 새로운 역사영화 실험이 시작됐다
한국 영화들이 현대사를 만나고 있다. 조폭과 섹스코미디가 휩쓸고 간 자리에 한국 현대사가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씁쓸한 웃음과 함께 들어온다. 북파 특수부대를 소재로 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에 이어, 2004년에는 애국심이나 이념과 무관하게 한국전쟁에 휩쓸려든 형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통해 전쟁의 잔인함을 그린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와 박정희 정권의 폭압정치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몰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임찬상 감독의 블랙코미디 <효자동 이발사>가 잇따라 찾아온다. 또 명필름은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 최호 감독의 <노근리 다리>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으며,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감독은 10·26 사건을 청와대 경비원과 경호실 요원들의 하룻밤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그때 그 사람(들)>의 제작에 들어갔다. 폭압적이고 민감했던 시기와 멀어지고 사회적 분위기도 달라지면서 그동안 한국 영화가 다룰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시대와 사건들이 한꺼번에 영화 속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30~40대 감독들의 ‘부채의식’
이런 현상에 대해 <씨네21>의 김소희 편집장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감독들이 30~40대 초반의, 80년대를 격렬하게 통과한 세대들이다.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꼽히는 강우석 감독만 해도 영화계에 처음 나왔을 때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같은 정치적 억압을 다룬 영화를 만들었다. 이들 세대 감독들의 무의식에 있던 시대에 빚진 느낌이 달라진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역사의식이, 그런 의식이 덜한 20대 관객과 어떤 코드를 통해 소통할 것인지가 얼마 동안 한국 영화의 과제일 것 같다”고 분석한다. 한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잘 짜인 드라마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 새로운 소재를 찾아 헤매는 영화계에 대안으로 등장했다는 분석도 있다. <태극기…>를 만드는 강제규필름의 황정임씨는 “대작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드라마다. 지금까지 제작비를 많이 들이고도 드라마가 아닌 비주얼에 치중했던 영화들은 다 엄청난 실패로 끝났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복잡했던 현대사는 이제 극적이고 매력 있는 드라마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영화홍보사 영화인의 안수진 팀장도 “<실미도>와 <태극기…>라는 대작이 잇따라 개봉하면서 한동안은 역사 대작 영화들이 흐름을 주도할 것 같다”며 이런 현상이 “한국 영화의 제작기술과 자본이 해외시장을 겨냥할 만큼 성장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조폭영화나 섹스코미디는 국내 시장을 벗어날 수 없지만, 역사물은 우리만의 것이면서 세계 시장에서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는 기획 단계부터 해외시장을 바라보며 만들어졌다. 이미 유니버설재팬과 일본 배급계약을 맺었고, 북미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역사 대작들은 대규모 자본, 세트, 미술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인데 한국 영화의 기술적 발전이 이를 뒷받침할 만큼 성장한 것도 새로운 흐름의 원인이다. <실미도>가 실제 실미도에 부대 세트를 짓고 전북 부안에 1971년의 대방동 거리를 재현한 것이나, 600여명의 스태프들이 9개월 동안 전국 18개 지역을 돌아다니며 <태극기…>의 격렬한 전투 장면들을 찍은 것이 그렇다.
한국영화 기술과 자본의 성장 보여줘
지금까지 현대사를 껴안은 영화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남부군> <태백산맥> <꽃잎> <흑수선> <박하사탕>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이중간첩> <선택>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역사를 피해가지 않으면서도 짜임새 있는 완성도와 대중과의 소통을 제대로 이끌어낸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와 <쉬리>, <박하사탕> 정도다. 일부 작품은 역사적 내러티브의 무게에 짓눌렸고, 어떤 작품들은 소재를 정공법으로 보지 않고 너무 비틀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제 2000년대의 새로운 역사영화 실험들은 거기서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까.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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