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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2 등록 2003.10.23(목) 제481호

[특집2] 시민사회 강력 반대‥ 정부가 두손 들다

미국에 ‘파병 불가’ 통보한 인디아 사회의 내부 논쟁… 힌두원리주의자들의 도발 실패로 끝나

19세기 중엽 인디아를 합병한 영국이 동·서로 팽창하면서 사용한 도구는 ‘앵글로-인디아군’이었다. 그로부터 10만명이 넘는 인디아 군인들이 대영제국 확장에 희생됐다.

그 가운데 인디아 군인들이 가장 많이 희생된 곳이 1917년 이라크였다. 당시 영국은 ‘압제자로부터 해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규모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면서 인디아 군인들을 앞세웠다.

옳다. “영국이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그때도 본질은 석유였고 ‘해방의 수사학’은 21세기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게 86년이 지난 오늘, 대다수 인디아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라크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이라크 전쟁은 인디아에서 극도로 인기 없는 종목이 되었다. 500개가 넘는 도시들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언론도 모두 한목소리를 내면서 반전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사회 여론이 정부를 압박해서 바그다드 함락 하루 전 인디아 의회는 이라크 침공 비난 결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며 정치적으로도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1917년 이라크 참전을 기억한다

그러나 인디아에서 ‘이라크’는 순순히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힌두 원리주의자들을 비롯한 일부에서 지저분한 역사를 되돌리고자 떠들어대고, 정책 입안자들이 이라크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 파견을 궁리해보겠다는 약속을 워싱턴에 냉큼 던져버린 탓이다.

사실은 지난 6월 말 워싱턴과 델리 사이에 ‘파병 거래’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지만, 파병찬성론과 파병반대론 사이에 강력한 논쟁이 일면서 인디아 사회 여론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 논쟁은 주로 친미 안보전문가들이 찬성론을, 그리고 자유주의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반대론을 각각 떠맡았다. 이 논쟁에서 국가이익에 따라 공공의 도덕성을 제거해버리는 매우 협소한 ‘전략공동체’ 의지를 반영한 파병찬성론을 시민들은 거부했다. 시민들은 정부가 무엇이 ‘정의’인가를 놓고 선택하기를 원했다. 시민들은 정부가 미국과 ‘한패’가 되는 일을 원치 않았다.

파병찬성론자들은 유엔 표준으로 지급하는 해외파병용 임금에서 거둬들일 ‘현금 환상’에 빠진 군사조직과 이라크 재건에서 챙길 부를 놓고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를 꿈꾸는 사업가들에게 포박당한 모양새였다. 여기다 ‘문명충돌론’을 믿는 극우 힌두민족주의자들은 힌두교도 인디아가 크리스천 미국과 함께 이슬람 이라크를 정복해야 한다며 가세했다.

이에 맞선 파병반대론자들은 부당한 전쟁을 결코 옹호할 수 없다는 원칙과 도덕성을 앞세웠다. 고압적인 군사력을 통해 지구적 규모의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미국의 야망과 이라크 침공을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특히 이들은 유엔과 국제상호주의를 비웃고, 조작한 정보를 바탕 삼아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거만한 ‘초강대국’에 협조하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져놓았다.

“인디아가 이라크 침공 때 연합국도 아니었고 미국이 인디아를 그렇게 여긴 적도 없는데, 왜 이라크 민중저항이 격렬해지는 현 시점에서 미군을 돕겠다고 군대를 파견해야 하는가?” “이라크 침공을 지원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기껏 3천여명을, 그리고 주축인 영국이 최대 1만5천명(현재 1만1천명)을 이라크에 파견했는데, 왜 인디아가 2만명에 이르는 군인을 보내야 하는가?”

이런 논쟁은 전통적으로 아랍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온 인디아로서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이라크에 대한 의약품과 식량 봉쇄를 푸는 데 기여한 인디아 입장을 놓고 보면 더 그렇다. 군대를 파견하든 하지 않든 이라크 사안을 놓고 미국쪽에 기울어버린 인디아는 이미 아랍 시민들로부터 명예를 상실했다.

아직도 미국이 압박할 가능성은 남아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시민사회에 파병반대론이 우세해지면서 정부가 파병안을 거둬들였다는 점이다. 인디아 정부는 7월 중순 ‘유엔으로부터 명백한 위임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를 붙여 미국 정부에 파병 불가를 통보했다. 그 뒤 인디아 정부는 미국과 파키스탄 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바라보면서 파병 불가를 놓고 한 가지 이유를 덧붙였다. 쓴 입맛을 다시며. “안방에 군대가 더 필요하다. 국경을 침범하는 테러와 싸우기 위해.”

그렇다고 모든 일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유엔에서 대이라크 결의안이 통과된 마당에 아직 한번쯤은 더 파병 건을 놓고 미국이 인디아를 압박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탓이다. 물론 인디아 정부가 시민여론을 뒤집을 만큼 간 큰 짓을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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