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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2 | 등록 2003.10.22(수) 제4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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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파병과 북핵, 별로 관계없음! 미국에 뭔가 얻어내려 애썼으나 언짢은 대답만… 한반도 안보상황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커
노무현 정부의 한국군 이라크 파병 결정은 북핵 문제 해결에는 얼마나 보탬이 될까.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10월20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북핵 6자회담이 지난 8월 열린 이후 2개월이 지났으나 2차 회담 일정이 안 잡히고 있으며 북한에선 핵 재처리와 관련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등 어려운 국면인데 파병이 이런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핵 문제, 6자회담 진전 등이 파병 결정의 중요 고려요소임은 부인할 수 없다”며 “연계는 아니나 고려될 수 있는 사항임은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차장은 파병이 북핵 문제 해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부시의 심기 거스르지 말아라”
전문가들은 당장 눈에 잡히는 파병의 외교·경제적 실익은 북핵 문제 외에 찾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이 10월18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한반도 안보상황은 파병 결정의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 가운데 하나다. 한반도 안보상황은 곧 북핵 문제를 염두에 둔 상징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종석 차장의 설명도 파병 결정의 핵심 요인이 북핵 문제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간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과 북핵 문제는 연계하지 않고 있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파병과 북핵 문제는 별개로 다룰 사안이라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이런 한국 정부의 연계 요구를 언짢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파병과 북핵 연계에 극도의 불쾌감을 표출한 징후는 여러 군데서 포착됐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유엔총회 참석 중에 열린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에 양보하면 국내적으로 이라크 파병 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전했으나 파월로부터 큰 반발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실무책임자인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도 같은 달 28일 윤 장관에게 비슷한 불쾌감을 전달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 대사가 외교안보팀 관계자를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파병이 조기에 결정되지 않으면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귀띔했다. 미국은 동맹국끼리 도와주려면 조건 없이 화끈하게 도와줄 것이지 치사하게 이런저런 요구를 붙이는 걸 영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근 파병 결정이 미뤄지고 연계설 파문으로 사정이 급속히 악화되자 노무현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간신히 제자리에 돌려놓은 한-미 관계에 또다시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최근 청와대가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을 워싱턴에 급파하고, 한승주 주미 한국대사가 급거 귀국한 것도 이런 대미 불화설과 무관치 않다. 노무현 대통령이 10월18일 유엔의 이라크 결의안 통과를 빌미로 부랴부랴 이라크에 대한 한국군 추가 파병을 전격 결정한 것은 이런 급박한 사정이 작용했던 셈이다. 정부는 엄청난 국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쓴 파병을 결정하면서 미국으로부터 뭔가 얻어내려고 나름대로 애쓴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국민들 앞에 가시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게 북핵 문제로 불거진 한반도 전쟁 불안의 제거였다. 얼마 전 노 대통령이 추가 파병을 위해서는 한반도 안정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배경이다. 북핵 문제를 에둘러 표현한 게 한반도 안정인 셈이다. 이는 곧 북-미 대결 구도의 완화였다. 그래서 윤 장관이 지난달 파월을 만나 직접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서 미국의 양보를 요구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더 가관인 것은 윤 장관의 이런 소신 주장이 <뉴욕타임스>를 통해 흘러나오자 청와대를 비롯해 외교부 관계자들이 윤 장관의 발언을 개인적 견해로 깎아내리면서 불끄기에 나선 점이다. 그 뒤 청와대나 외교부 주요 관계자들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유독 연계설 부인에 강조점을 찍었다. 부시 정부의 성난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다. 최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부시를 만나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면서, 들어줄 것은 들어준 자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남긴 것
부시 대통령은 10월20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법을 내놓았다. 두 정상이 합의한 공동발표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폐기에 진전을 보인다는 것을 전제로, 다자틀 내에서 어떻게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설명했고, 노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부시 대통령의 노력을 평가했다. 또 두 정상은 차기 회담에서 진전을 모색하기 위한 수단과 방안을 연구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는 파병을 결정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여전히 인색한 대안을 제시한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공동발표문을 통해 “미국은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이 핵무기 개발 야심을 포기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으나 대북 안전보장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부시 정부가 검토 중인 다자틀 내에서의 대북 안전보장안은 문서 형태를 갖추더라도 미 상·하원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조약 형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10월11일 “북한이 요구하는 불가침조약에 부응하는 문서보장에 응하기로 했으며 이미 그 초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전보다 한 발짝 진전된 안이긴 하나 여전히 북한의 요구사항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 정도 양보로 북핵 문제가 타결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북한은 미국의 이런 움직임을 시간끌기 전술로 간주하고 있다. 이라크 사태의 조기 수습에 급급한 부시 정권이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 어정쩡하면서도 기만적인 유화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외무성 대변인은 10월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최근 부시 행정부는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 무슨 양보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여론을 유포시키고 있으나 부시 행정부의 실제 움직임은 이런 양보나 평화적 해결 논의와는 정반대”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움직임은 결국 사술이거나 시간벌기용으로 북-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며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나 불가침조약을 거부하는 어떤 회담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른 시일 내 북한이 6자회담에 참석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남쪽 당국도 똑같이 고심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다자간 틀 내에서의 북한의 체제 안정보장이라는 양보안을 이끌어내긴 했으나 북한의 수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다. 북한 설득 실패는 지난 10월17일 북핵과 관련된 진전된 합의안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종결된 남북장관급회담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남쪽 대표단은 북한 체제에 대한 미국의 다자보장안이 전혀 불리할 게 없다며 수용을 설득했으나 북한이 불가침조약 체결을 고수하면서 회담이 결렬됐다.
북한이 미국에 엄포를 놓는 이유
북한 지도부는 미국이 수세에 처해 있다는 약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에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미국의 대북 강경자세가 조금씩 뒷걸음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수렁에 빠진 부시 정권에게 북한의 핵 실험이나 보유 선언은 부시 정권의 또 다른 외교정책 실패로 부각돼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려 부시 정부의 불가침조약 수용을 이끌어내려는 끝내기 수순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최근 부쩍 부시 정권이 시간만 질질 끌고 갈 경우 핵 억제력을 공개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까닭이다. 미국이 끝내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 파병은 파병대로 흘러가고, 한반도 안보상황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정부도 내부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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