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2 ] 2003년10월30일 제482호 

스크린쿼터 무용론의 함정

직배사들의 ‘묶음판매’로 한국영화 입지 좁아져…폐지한 뒤 영화산업 황폐화된 외국사례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이 휩쓸고 지나간 뒤, <스캔들>이 관객 300만명 고지를 바라보고 <황산벌>이 개봉 3일 만에 90만5천명의 관객과 만났다. 1993년 15.9%였던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99년 39.7%, 2000년 32.6%, 2001년 46.1%, 2002년 48.6%로 급상승했다. 이제 국내에서 ‘스크린쿼터’에 도전하는 가장 막강한 질문은 “이제 스크린쿼터 없이도 한국 영화는 잘될 수 있는 것 아니야? 없애지는 않아도 며칠만 줄여도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영화인들은 영화 유통과 배급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현실을 안다면 스크린쿼터는 비할리우드 영화가 자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조건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금도 한국 영화에 많은 관객이 몰리는데도 갑자기 한국 영화가 내려지고 할리우드 영화가 상영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직배사들의 ‘묶음판매’(끼워팔기)라는 배급방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할리우드 영화보다 훨씬 인기가 많은 한국 영화가 있더라도 ‘이 영화를 걸지 않으면 대형영화(예를 들면 <매트릭스>나 <스타워즈> 시리즈 같은)를 주기 어렵다’는 직배사 앞에서는 별 인기 없는 할리우드 영화라도 틀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 영화를 틀기 위해 손님이 많이 오는 한국 영화까지 억지로 내려야 할 만큼 직배사들의 힘이 막강한 현실에서 “영화만 잘 만들면 되지, 이제 꼭 스크린쿼터가 필요하냐”는 주장은 냉혹한 유통 배급의 메커니즘을 모르는 논리라는 것이 영화인들의 이야기다.

할리우드 영화가 자유롭게 수입되는 전 세계의 나라들 중에서 자국영화 비율이 30%가 넘는 나라는 한국과 프랑스, 일본뿐이다. 프랑스는 방송쿼터, 한국은 스크린쿼터, 일본은 배급쿼터를 통해 자국영화를 보호하고 있다.

스크린쿼터가 사라진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많다. 대만은 90년대 이전까지 쿼터제를 시행했지만 87년 계엄령 해제 이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한 준비라는 이유로 쿼터를 단계적으로 축소해, 90년대 초반까지 35%였던 대만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94년 23%, 95년 15%, 96년 4.6%, 98년 5%대 이하로 떨어졌다. 99년 미국 영화의 점유율은 95%였다. 에드워드 양이나 차이밍량 같은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감독들이 있지만, 실제로 대만 국내에서 그들의 영화를 보는 관객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94년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멕시코는 애초 30%의 스크린쿼터를 해마다 5%씩 줄여서 98년에 완전 폐지됐다. 88년에는 107편이 만들어졌던 멕시코 자국영화는 2002년 14편으로 줄어들었다. 영화계가 이 문제를 지적하자 외교통상부 등 경제부처에서는 이에 반박하는 논리로 “90년대 들어 멕시코 국산영화 제작이 급감한 원인은 경제사정 악화로 인해 정부지원이 깎이고 영화 제작업자들의 제작비가 줄었기 때문이지 스크린쿼터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크린쿼터 문화연대나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들은 멕시코 국내에서 자국영화 쇠퇴의 원인이 스크린쿼터 축소 때문이라는 공감대가 모아져 야당이 중심이 돼 스크린쿼터를 매년 5%씩 늘리는 법안을 만들었으나, 이미 시장이 할리우드 영화 중심으로 재편돼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한번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 자국영화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기 때문에 제작편수가 줄고 상영할 자국영화가 모자라 다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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