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2 ] 2003년09월05일 제475호 

터키 여성의 사고방식을 깨다

[인터뷰 | 여성 게릴라 대장 사라]

17살부터 활동한 여성게릴라 대장 사라…투쟁을 통해 쿠르드여성과 터키여성을 변화시키다

여성게릴라대장인 사라는 17살 때 쿠르드노동당에 들어가 활동을 하다 터키 경찰에 검거되어 10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뒤 산에 들어가 게릴라로 변신해 13년을 지내면서 세권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게릴라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터키와의 싸움을 얘기해달라.

=1992년의 샌드위치 작전이 가장 규모가 컸고 힘들었다. 당시 우리쪽에서만 200명의 게릴라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작전에는 나토군까지 동원됐고 많은 나라에서 터키의 작전을 지원했다. 터키쪽에서 게릴라들의 씨를 말리려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희생된 여성 게릴라들의 수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거의 수백명에 달한다. 지금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하는 중이다.

-여성으로서 총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다른 대안은 없었는가.

=총을 잡은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다. 1970, 80년대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부정됐다. 우리의 민족성이나 언어도 부정됐고 삶까지도 부정됐다. 총을 잡으면서 비로소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됐고 우리들의 삶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총을 통해 지배계급의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의 투쟁에는 많은 장애가 있었다. 가족문제가 가장 큰 장애였다. 특히 쿠르드 가족제도는 투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했다. 지금은 쿠르드 여성들도 가족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쿠르드 여성 게릴라가 출현하면서 많은 쿠르드 여성들이나 심지어 터키 여성들까지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게릴라가 되는 것 자체가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투쟁을 통해 쿠르드 여성뿐 아니라 터키 여성들의 협소한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깨뜨려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쿠르드 여성과 터키 여성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게릴라가 된다는 것은 사회에서 쌓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무엇을 남기고 산에 들어왔나.

=산에 들어오면서 버린 것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닌 주어진 것이었다. 산에 들어오면서 얻은 것은 힘든 세월이었지만 그 가운데서 내 것을 얻었고 쌓을 수 있었다.

자그로스산맥 칸딜산(게릴라 근거지)=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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