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2 ] 2003년06월04일 제462호 

‘묻지 마 정부’에게 묻는다

기자들이 직접 ‘정보공개’ 청구하며 부딪힌 벽… 어렵게 자료 받아도 핵심과 거리 멀어

“기자가 알면 모든 사람이 다 안다.”

기자가 어떤 사안을 매체에 보도할 때쯤이면,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비아냥이 섞인 말이다. 직접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특히 핵심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그 말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면 기자야말로 ‘정보가 많은 사람’이다. 특히 기자라면 출입처의 동향에 대해서만큼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자라고 해도 접근 가능한 정보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취재원들이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 불리한 내용은 결코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은 18일, 기자는 바로?


사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는 제대로 되고 있는가. 2001년 6월25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8개 시민단체대표들이 국세청에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공개를 요구하는 정보공개청구서를 접수시키고 있다.(김진수 기자)


기자와 일반인의 차이를 보여주는 한 사례를 보자. <한겨레21>은 기자임을 밝히지 않은 채 일반인 이름으로 지난 4월21일 병무청에 대체복무자 현황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보통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 정보를 얻어보기 위한 것이었다. 병역법에 따라 대체복무를 수행하고 있는 공익근무요원과 산업체근무요원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지 열흘 만에 병무청은 ‘공개하겠다’고 통보해왔다. 담당자는 수수료(300원)와 우편요금(1490원)을 은행계좌로 넣으라고 했다. 은행 마감시각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은행으로 달려갔다. 송금 수수료로 1300원이 별도로 들어갔다. 담당자는 “오늘은 금요일이고 월요일은 휴일이니 화요일에 자료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5월9일 마침내 자료가 도착했다. 정보공개를 청구한 지 18일 만이었다.

기자로 오래 일해온 사람이라면, 우리가 병무청에 그런 내용의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을 아주 어리석게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굳이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대체복무자 현황은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보공개를 청구한 직후, 우리는 병무청 공보실에 ‘<한겨레21>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고 해당 자료를 요청했다. 곧바로 자료가 팩스로 날아왔다. 뒷날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는 팩스로 받은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자료/ <한겨레21>이 노동부, 금융감독원, 산업자원부 등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


그러나 제도적으로 보면, 정보공개 청구는 그렇게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 취재원이 공개를 꺼리는 정보를 합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199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의해 모든 국민에게 허용된 권리를 취재에 적극 활용해보기로 했다. 마침 정부가 기자실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정보공개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정부기관들이 정보를 어떻게 공개하고 있는지 시험해보는 의미도 있었다.

지난 4월5일, 우리는 전자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노동부에 첫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신라호텔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가 석연치 않게 설립신고가 취하된 것을 계기로 삼성 계열사의 노조 설립현황을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청구한 지 12일이 지난 뒤 노동부는 삼성 계열사 노조설립현황 자료를 우편으로 보냈다고 알려왔다. 수수료는 없었다. 우편으로 받아본 자료에는 에스원(주)를 비롯해 7개 계열사에 노조 설립필증을 교부한 현황이 대표자 및 조합원 수까지 나타나 있었다. 노동부의 결정은 우리를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보공개도 활용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왜 필요하냐고 왜 묻나


사진/ 5월20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기자실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정보공개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청와대사진기자단)


같은 날 우리는 산업자원부에 SK(주)의 주식을 대거 매집한 크레스트증권의 외국인투자 신고내역 공개를 청구했다. 4월14일 산자부 담당공무원이 전화를 해왔다. “법인의 영업상 비밀에 해당해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정보공개를 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산자부 담당자는 “그런 것을 정보공개 청구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국내기업은 모두 상업등기를 하고, 공개기업의 경우 공시를 하는데, 외국투자가라고 해서 투자내역이 영업상 비밀에 해당되느냐”고 따지고, 공개할 수 없다면 그 이유를 명시해 통보해달라고 대답했다. 일반인이라면 위압적으로 말하는 공무원에게 그렇게 따지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흘 뒤 산자부 담당자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공개를 하기로 했다며,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당신이 정보공개를 청구할 무렵에는 크레스트증권이 지분 10%를 사지 않은 상태여서 신고서를 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정보공개 청구를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혹시 크레스트증권 관계자가 아닌가 해서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4월22일 크레스트증권의 신고서 사본을 우편으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크레스트증권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거의 없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하면서 접한 공무원들은 왜 그런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 묻곤 했다. 우리는 4월29일 현재 원유 비축 현황과 필수비축량 산출근거에 대한 정보공개를 산자부에 청구했다.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석유비축 현황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정보공개 여부에 대한 답변시한(15일)이 임박해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와 “왜 그런 정보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정보공개를 청구하면서 사용목적란에 대개 ‘행정감시’ 또는 ‘학술연구’라고 썼다. 청구서에 쓴 대로 ‘학술연구용’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논문을 쓰려는 거냐, 책을 쓰려는 거냐”고 물었다. “그건 왜 알려고 하느냐”고 되묻자, 담당 공무원은 “그것도 말 못해주느냐”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히 서식에 맞춰 작성을 했는데도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사용목적란이 불분명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알아야겠다”고 말했다. “서식이 잘못됐으면 정보공개 신청서를 바꿔야겠네요”라고 대꾸했다. 그는 그때서야 “알겠다”고 말했다. 5월17일 마침내 통보가 왔다. 비축현황 란은 답이 비어 있었고, 비축분 산출식에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산식이 암호처럼 적혀 있었다.



곤란하면 무조건 ‘비공개’

정보공개 청구를 계속할수록 두터운 ‘벽’이 느껴졌다. 공개되는 정보는 핵심과 한참 거리가 멀었다. 재정경제부에 ‘예금보험공사의 부실채무기업 조사’와 관련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을 때, 재경부 관계자는 “우리 담당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것도 모르느냐는 투였다. 그러나 예보는 전자정부를 통해서나 예보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없다. 정보공개 청구 대상 기관이지만, 아직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급기관인 재경부가 예보에 이송하면 간단했다. 하지만 재경부는 ‘비공개’ 결정을 통보했다(뒷날 예보는 재경부에서 정보공개 청구서를 팩스로 받았다고 밝혔다). 할 수 없이 예금보험공사에 전화했다. 예보쪽은 ‘팩스’로 보내라고 했다.


사진/ 한국전쟁 관련 구술자료를 정리하는 국가기록연구원 관계자. 정보공개를 청구해본 결과 행정기관이 공개를 꺼리는 내용은 거의 예외 없이 ‘비공개’ 대상이었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예보의 결정통지서에는 이미 알려진 것 외에 새로운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정보공개 청구의 핵심은 ‘부실채무 기업 조사 우선순위 기준’이었다. 우리는 예보가 금융기관에 대규모 부실을 떠안긴 일부 재벌기업에 대해 왜 조사를 미루는지 궁금했다. 예보는 “대상기업의 부실채무액 규모와 기업주의 도덕적 해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으로 조사계획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고 했다. 예보가 조사 우선순위를 정할 때 주관적 판단이 많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외에는 수확이 없었다. 예보는 부실채무기업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고발 내용을 요약해 공개하곤 했다. 그러나 고발장 열람 청구에 대해서는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며,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이므로 비공개 대상 정보임을 양해해달라”고 밝혔다.

담당자 이름 밝히는 것도 안 된다?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현황에 대해 가장 근접한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전문가들은 국세청이 보유한 ‘소득신고 및 납세’ 자료를 꼽는다. 우리는 그 정보에 과연 접근할 수 있는지 국세청에 ‘2001년, 2002년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대상자의 연간 근로소득 분포’를 100만원 단위로 공개해줄 것을 청구했다. 국세청은 “별도로 작성 관리하는 자료가 아니므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개인의 납세정보는 정보공개 청구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소득 분포를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통해 국민의 소득 실태를 파악하고 있을까?


사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전경.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공개하는 미국에 비해, 우리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수준은 매우 떨어진다.(강재훈 기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부분적으로 얻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행정기관이 공개를 꺼리는 내용은 거의 예외 없이 ‘비공개’ 대상이었다. 법으로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재벌총수 특수관계인의 비상장기업 주식보유 현황’ 공개를 요구했다. 공정위가 보낸 책자에는 특수관계인 개개인의 지분보유현황이 아닌 모든 특수관계인의 지분합계가 실려 있었다. 이미 다 공개된 것이었다. 그 이상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공정위의 답변이었다. 금융감독원에는 “지난 99년 쌍용양회가 김석원 회장의 누나에게 땅을 판 사실을 공시했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이 공시 위반에 해당하는지, 공시위반이라면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물었다. <한겨레21>이 지난해 11월 보도한 내용이었다. 금감원으로 “공시위반 여부 판단과 조치 내용은 금감위의 일이라 청구서를 금감위로 이첩했다”고 밝혔다. 4월23일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금감위는 5월31일까지 아직 아무런 통보가 없다. 누가 접수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참여연대는 지난 2월 국가정보원에 국정원장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등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가 어이없는 통보를 받았다. 정보공개 담당직원의 이름과 연락처를 공개하라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국정원이 공개를 거부한 것이다. 국정원은 “조직·소재지 및 정원은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이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국정원법 6조를 내세웠다. 대국민서비스 업무를 맡는 사람 직원의 이름이나 연락처가 공개되는 것이 국가 안보에 정말 위협이 된다고 국정원은 판단한 것일까 국정원의 결정은 정보공개 청구를 대하는 공무원들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정보공개법을 뜯어 고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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