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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특별기획 | 등록 2003.03.20(목) 제45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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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특집] 병역거부 인정은 세계적 대세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세계 현황과 전략’국제회의… 유엔 인권위의 권고를 언제까지 무시할 것인가
“이스라엘은 스위스가 아니다.” 아랍나라들에 둘러싸여 건국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줄곧 ‘준전시 상태’로 지내온 이스라엘은 징병제의 모범국가로 불려왔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똑같이 병역의무를 지는 것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래서일까 어깨에 총을 멘 채 거리를 순찰하는 이스라엘 청춘남녀의 사진은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장에서 좋은 교재가 됐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얘기는 사뭇 교훈적이었다. 남과 북이 반세기 동안 전쟁 아닌 전쟁 상태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랬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이스라엘 현실
지난 3월11일부터 사흘간 서울 성공회대 등에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세계 현황과 전략’ 국제회의에 참가한 아미르 기볼(29)은 이스라엘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다. 그가 들려준 이스라엘 병역제도의 현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달랐다. ‘징병제의 모범’이라는 이스라엘에서도 청년들은 군복무를 거부하고 있고, 요르단강 서안이나 가자지구 등 이른바 ‘점령지’에서 근무할 수 없다며 ‘항명’한 젊은이들이 1천여명에 달한다. 기볼은 18살 때 군에 입대했다. 모든 사람이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입대하면서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정보부대에 배치돼 컴퓨터를 다루며 보낸 3년 동안의 군생활은 그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줬다. 비록 비전투요원이었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전쟁 준비의 일부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현역복무를 마친 이스라엘 남성은 45살까지 예비군으로 1년에 약 1달간 군복무를 해야 한다. 현역시절부터 시작해 6년여에 걸친 고민 끝에 그는 ‘평화주의’라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예비군 복무를 거부했다. 그가 병역을 거부하자 올해 13살이 된 그의 동생은 “왜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느냐”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더러는 “아랍사람과 결혼할 모양”이라고 비꼬았고, 거리에선 ‘반역자’라며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다. 기볼은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것을 도출해내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군복무를 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도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다양성은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국민이 병역의무를 다한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이스라엘의 병역대상 연령층의 과반수 가까이가 징집되기 전 병역을 면제받는다.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과 건강상의 이유나 범죄기록이 있는 사람 등을 포함해 징집되기 전 대략 45%가 면제된다. 기볼은 “정부는 병역거부자가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이를 사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때문에 면제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정부가 기밀로 묶어둬 이들 가운데 어느 정도가 병역거부자인지를 추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는 1995년 병역거부권이 법적으로 인정됐고, 병역거부위원회도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법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거의 비밀에 부치고 있다. 기볼은 “국방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1995년 이후 250여명만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신청을 했다. 이 가운데 병역거부권이 인정된 사례는 전체의 8%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이스라엘의 병역거부자는 1달여씩 모두 2~3차례 수감생활을 한 뒤, 국방부 산하 (병역)부적합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군복무가 면제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의 무력분쟁이 격화하면서 수감 횟수는 7~8차례로 늘어났다.
세르비아 젊은이의 고뇌
이 때문에 병역을 피하는 다른 방법을 찾는 이들이 많다.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신체와 정신에 대한 의학적 이유’로 군복무를 면제받는 것이다. 병역거부자와는 달리 군은 건강을 이유로 한 면제에 관해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 매우 느슨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군복무를 피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군복무 중 ‘부적합’ 판정을 받아 면제를 받는 이들도 전체 병역대상자의 10%에 이른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 중 상당수가 병역거부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병역제도의 근간을 떠받치고 있는 ‘안보 이데올로기’가 흔들릴 것을 염려한 탓이다. “호전성은 자랑스러운 국민성이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반도의 세르비아에서 온 이고르 세케(27)가 말하는 옛 유고슬라비아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세르비아에서도 군복무는 ‘선량한 시민’의 상징이라고 한다. 지난해 9월 그가 병역을 거부하자 정부가 정신감정부터 하려 든 것은 이 때문이다. 너무도 당연한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정신이 온전하다고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복무를 요구하는 세케에게 군 지휘관은 “누가 너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겠느냐”고 차갑게 대꾸했다. 그는 반문했다. “그럼 당신들은 왜 나를 원하느냐”고. 14살 되던 해인 1993년부터 전쟁을 지켜본 세케는 발칸반도 전역이 피로 물드는 것을 지켜보며 ‘평화주의’라는 신념을 마음에 품었다. “지난 1995년 보스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고향마을로 난민이 몰려온 일이 있다. 주민 3만명과 난민 3만명이 뒤엉키면서 평화롭던 마을은 삽시간에 난민촌으로 변했다.” 세케는 “물도 음식도 없는 난민이 무기는 가지고 있었다. 한 난민이 자신의 총과 신발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신발조차 없는 사람이 총은 왜 가지고 있었을까 총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보스니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 사이의 오랜 전쟁으로 수많은 병역거부자가 탄생했다. 탈영이 속출했고, 일부는 나라 밖으로 탈출했다. 10년여의 내전 기간 동안 10만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탈영을 선택했고, 30만명 이상이 동원소집을 피해 국외로 탈출했다. 그러다 붙잡힌 이들은 총살을 당하거나 감옥으로 보내졌다. 유고슬라비아 헌법은 민간 대체복무를 인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병역기피를 위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은 일상이 됐다. 세케는 “전체 병역대상자 가운데 약 10%가 건강상의 이유로 면제된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99%는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세케는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수감생활을 거치지 않고, 지난해 말 병역면제 처분을 받았다. 유엔인권위원회는 1987년 결의안(46호)을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사상·양심·종교적 자유의 정당한 행사’로 규정했다. 또 1998년에 내놓은 결의안(88호)에서는 △병역거부로 투옥이나 반복된 징계를 받지 않도록 조처할 것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없는 국가는 독립적이고 편견 없이 병역거부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기관을 설립할 것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취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제를 마련할 것 등을 각국 정부에 촉구했다.
대체복무 정착, 독일의 우여곡절
이번 회의에 참석한 루시에 비에르스마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연구원은 “유엔 인권위는 지난해에도 결의문 등을 통해 유엔 회원국들에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관련된 법령과 관행의 재검토를 요청한 바 있다. 한국 정부도 회원국으로서 특별 결의안을 자동인준한 것으로 봐야 하며, 따라서 결의안 권고사항을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냉전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독일에서는 이미 1949년부터 헌법에서 종교·양심의 자유의 하나로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왔다. 1957년 설립된 ’독일 병역거부자 지원연대’ 활동가 페터 토비아슨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하는 행동이고,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기에 독일에서는 현재 병역거부나 대체복무 등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처럼 징병제를 실시하는 독일에서는 1961년 대체복무제가 도입됐다. 현역복무는 9개월, 대체복무는 10개월을 근무한다. 대체복무자 대부분이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등 사회복지 시설에서 일하면서 사회복지 서비스에 혁신이 일어났다. 현재 독일의 대체복무자는 징병대상자의 약 50%에 달한다. 독일의 총리와 장관 가운데도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있으며, 지난해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한 토르스텐 프링스와 마르코 보데 등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대체복무를 했다. 물론 독일도 대체복무제가 정착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히틀러 치하의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대학살에 반대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시작됐고, 수많은 젊은이가 병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사형당했다.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헌법으로 보장했음에도 심사과정에서 상당수를 탈락시키기도 했다. 토비아슨은 “나는 1973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1975~76년까지 대체복무를 수행했다. 당시 독일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전체 병역대상자의 5.9%에 불과했다. 국가에 대한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고, 동독으로 가버리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제 독일에서 대체복무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지난 3월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면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레이첼 브렛 퀘이커 유엔 사무소 대표는 “그들의 신념과 생활방식에 비춰 군복무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을 군대로 보내도 아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명백히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이들을 형사처벌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했다.
“한국은 더 이상 가두지 말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1542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1년6개월~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는 전 세계 병역거부 수형자의 80%에 달한다. 브렛 대표는 “1998년 유엔 결의안에 따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양심수로 분류된다. 그들을 가둬서는 안 된다. 합당한 대체복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안보·국방에 대한 다른 방식이 있을 것이다. 신념에 찬 이들을 가둘 것이 아니라 사회에 생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는 그들의 인권을 보호할 뿐 아니라 사회적 자원의 낭비를 막는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사진 류우종 wjryu@orgi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