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3년03월14일 제450호 

[창간9돌] ‘국경 없는 언론’으로 가자

인도네시아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가 <한겨레21> 창간 9돌에 보내는 축하와 고언


사진/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타우픽, 너 요즘 뜸한 걸 보니 퇴짜 맞은 모양이지”

며칠 전, 3월6일로 창간 32주년을 맞는 <템포>(Tempo) 기념잔치 준비위원장- 오락반장- 을 맡아 동네 밴드와 무희들을 조직하느라 정신없는 나를 동료들이 놀렸다. “천만에 말씀, 매주 기사 달라고 그쪽에서 울며불며 애원하는데, 이 몸이 바빠서!” 나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열네살짜리 귀여운 무희와 ‘사업’ 이야기를 했다. “그럼, 내게 기회를 넘겨주게.” 한 동료가 어깨를 치며 비꼬듯 물었다. “이 사람아, 그게 어디 아무나 쓸 수 있는 지면인 줄 아나 세계적 언론인들만….” 나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야유와 집단폭행(!)을 당했다.

아시아 네트워크, 동료들의 질투


일러스트레이션/ 장관석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아시아 네트워크’를 통해 <한겨레21>과 인연을 맺은 뒤로 동료들이 내게 보이는 질투에 가득 찬 눈길을! 사실 <템포> 기자들 가운데 외국언론에 글을 쓰는 이들이 제법 있지만 서양쪽 일색이라 내가 한국 언론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템포> 편집실에서는 매우 희귀하면서도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내 기사가 실린 <한겨레21>이 올 때마다 나는 바빠진다. 뜻도 모르는 한글판 잡지를 들고 온 사무실 사람들을 불러모아 너스레를 떨며 <한겨레21> 전령사 노릇을 한 지 벌써 3년째다. “너 한글로 기사 쓸 리는 만무하고, 그럼 영어로 쓰니 니가 쓴 글이 어떻게 한글로 번역되고 편집됐는지 알기는 해” 자랑스레 <한겨레21>을 사무실에 걸어놓은 내게 동료들은 의혹에 찬 눈길을 보내왔다.

물론 나는 한글도 모르고 편집된 내용도 모르지만 그들에게 정성을 다해 설명해왔다. 다행히, 동료들이 내용은 알 수 없더라도 표지와 디자인과 사진을 통해 <한겨레21>과 <템포>가 거의 비슷한 성향이 있는 잡지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러나 때때로 <한겨레21>은 내게 뜻하지 않은 고민을 안겨줬다. 예컨대 지난번 아시아 네트워크가 ‘아시아 섹스’를 주제로 다뤘을 때 <템포> 사무실에서는 <한겨레21>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내 기사가 인도네시아 섹스 실태를 다룬 내용이었는데 ‘놀랍게도’ <한겨레21> 편집실에서 이슬람 교도 복장을 한 여성들 사진을 기사와 함께 올렸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 사진이 ‘이미지컷’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슬람 사회에서는 감히 용납할 수 없는 ‘용감한 편집’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동료들은 한동안 언론과 문화 차이를 놓고 입씨름을 벌였다. 탈종교적이며 진보적 흐름이 지배하는 <템포> 내부에서도 이 사진건만은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 <한겨레21>이 세계적 매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제언론이 지닌 ‘표준’을 연구해야 한다는 애정어린 의견들이 나왔다. 동료들은 이 사진건을 놓고 언론자유에서 금기니 성역을 거론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라 말하며 이렇게 결론내렸다. “<한겨레21>을 인도네시아나 이슬람 사회에서 발행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2번 폐간·3번 복간, <템포>의 고난사


사진/ 94년 폐간조처를 당하면서 거리로 나선 기자들. 끝날 것만 같던 <템포>의 운명은 98년 수하르토 퇴진과 함께 다시 살아났다.


창간 9주년을 맞는 <한겨레21>에 타박과 함께 축하인사를 올린 꼴이 되고 말았는데,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나와 <템포> 동료들은 <한겨레21>에 깊은 동지애가 담긴 꽃다발을 보낸다. 덧붙여 <템포>와 <한겨레21>이 걸어온 고난에 찬 역경이 아시아 언론문화를 선도하는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돌아보면 <템포>와 <한겨레21>은 이름만 달랐고 발행지역만 달랐지 결코 두개의 이름이 아니었다. 둘의 독립언론을 향한 염원, 그리고 투쟁은 아시아 언론사에 중대한 획을 그었다는 것이 언론인들과 언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 일치된 의견이다.

<템포>는 1971년 발행 뒤 2번이나 폐간당하며 3번이나 복간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템포> 출발은 <한겨레21>처럼 자유언론에 대한 ‘화려한’ 의지에서 비롯하지는 않았다. 수카르노 대통령을 거부하며 수하르토를 지지한 일단의 학생운동가들과 예술가들이 1969년 잡지 <엑스프레스(Ekspres)>를 만든 뒤, 다시 1971년 자카르타 스포츠재단인 자야 라야(Jaya Raya)와 50 대 50으로 재원을 꾸려 새로운 잡지 <템포>를 창간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템포>가 지닌 자유언론·독립언론의 상징성은 지난 32년 동안 수하르토 독재정권이 ‘선물’한 것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는 왜 <템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아는 이가 없을 정도로 미숙한 기반에서 출발했다. “부르기 편하고… 아마도 <타임>의 영향이 아니었는가 싶다.” 창간 때부터 주도적 역할을 해온 전 편집장 구나완 모하마드마저 정확한 기억이 없을 정도다.

그런 <템포>가 결정적 계기를 맞은 건 1994년 6월24일 독일 함정 구입건 부정을 폭로하면서부터다. 수하르토 정부는 1982년에 이어 또다시 <템포>를 폐간했다. 1982년 이른바 와이트 그룹(정당 선택을 하지 않는 이들) 관련기사로 폐간당했을 때는 3개월 만에 <템포>가 공보장관 알리 무르토포에게 사과함으로써 다시 복간하는 절차를 겪었지만, 1994년 사태는 전혀 달랐다.

폐간과 동시에 <템포>는 라군타워힐턴호텔 경영자이자 수하르토 사위인 프라보오 장군의 형인 하심 죠오하두구수모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았다. “내일 아침 8시 전까지 결정하라. 편집책임자들을 쫓아내고 대신 나와 수하르토 가족이 경영권을 쥐는 것으로 해서 <템포>를 복간시켜주겠다.” <템포> 기자들은 격론 끝에 그날 밤 자정 무렵 하심에게 통보했다. “노 땡큐!”

그리고 <템포> 기자들과 <템포>를 지원하는 여러 언론사 기자들은 거리로 나섰다. 군인과 경찰들은 기자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편집장 구나완을 비롯해 모든 기자들은 마감 날마다 편집실에 모여 기사 대신 몸으로 때우며 장기간 항의농성을 벌였다. 그렇게 끝날 것만 같던 <템포> 운명은 1998년 수하르토 독재정권 퇴진과 함께 다시 살아났다.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뿔뿔이 흩어져 시장판에서 채소를 팔던 기자, 다른 언론사에서 억눌린 가슴으로 글을 쓰던 기자들이 다시 모여 <템포> 복간을 서둘렀다.

영문판 <한겨레21>을 진심으로 기대한다


사진/ <템포>는 인도네시아어판에 이어 영문판과 함께 일간 <코란템포>도 발행하고 있다. (정문태)


그러나 <템포> 복간은 내부적으로 큰 진통을 겪었다. 전 편집장이자 저명한 언론인 구나완 같은 이들은 “언론을 탄압한 정권은 결국 언론과 함께 사라진다”는 교훈을 영원히 ‘언론탄압사’로 남기자며 복간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던 탓이다. 그럼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어제의 용사들은 긴 토론과 결연한 투표를 거쳐 마침내 <템포> 복간을 결정했다. <템포> 복간소식이 전해지자 조지 소로스를 포함해 거액을 뿌리며 <템포>를 유혹하는 불결한 돈들이 몰려들었다. “<템포>는 기자들의 집이다.”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사원지주제를 채택한 <템포>는 전 회사와 반씩 지분을 나눠 혼자 일어섰다. 그리고 2001년 일간 <코란템포>에 이어 영자 시사주간지 <템포>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템포>와 <한겨레21> 함께 길을 가기 위해 우리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 좋든 싫든 현실을 인정한다면, 부디 영문판 <한겨레21>이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템포> 동료들에게 매주 <한겨레21>을 설명하는 수고를 덜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 경험을 한마디 보태자면, 많은 이들이 부정하던 중에 <템포> 영문판을 발행하면서부터 <템포>는 이제 자유언론의 상징성으로서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를 알리는 국제적 매체로 자리잡았다. 서양언론이 지배하는 아시아 현실에서 아시아인들은 인도네시아를 보기 위해 <템포> 영문판을 뽑아들고 있다는 사실을 <한겨레21>이 하루빨리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이 경제뿐 아니라 민주화와 예술과 과학 그리고 역사 모든 면에서 아시아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거듭 당부하고 싶다. 아시아 사회가 한국을 알고, 한국이 아시아에 한국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면, 그건 <한겨레21> 몫이다.

보수적인 한국 경쟁언론사들이 영문 시사잡지를 먼저 발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한겨레21>이 생각해본다면, 그래도 <한겨레21> 동지들은 편히 잠잘 수 있을까 손바닥만한 광고 몇개가 전부고 기껏 주간 판매부수 11만부에 지나지 않는 <템포>가 영문판을 발행할 수 있었던 건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영문판 <템포>가 언론자유투쟁의 또 다른 한 방식이라 믿었기 때문이고, 아시아 시민들에게 인도네시아를 정확히 알리자는 의지였다.

세계적 언론매체로 성장하기 위한 대들보임도 굳이 숨길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더구나 <한겨레21>은 이미 아시아 네트워크로 누구보다 든든한 언론실험을 거치지 않았는가. 비교하자면 <템포> 영문판은 허허벌판에서 시작한 셈이었다.

국경 없는 언론, 이제부터 <한겨레21>과 <템포>가 함께 가야 할 길이다. <템포> 동료들은 거듭 <한겨레21> 창간 9주년을 축하하며, 내년 창간 10주년에는 두 잡지 동료들이 함께 어울려 춤이라도 한판 출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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