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ni.co.kr/h21

기사섹션 : 특별기획 등록 2003.01.22(수) 제444호

[특별기획] “착한 여자들은 아프다”

속앓이 심한 이들은 심장·유방 관련 질환, 남편과 안 좋은 이들은 방광·자궁 관련 질환

서울 마포에 있는 남강한의원 진료실은 ‘착한 여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착한 여자 ㄱ(20대 후반)씨. 어느 날 애 하나는 유모차에 태우고, 하나는 걸리면서 한의원 문을 열었다. 결혼한 지 3년 된 ㄱ씨의 몸무게는 95kg. 눈코입이 푹 파묻힐 정도로 부어 있었다. 병든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학원강사 일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으면서’ 살이 쪄버렸다. 데리고 온 두 아이는 자기 아이가 아닌 언니 아이와 오빠 아이. 아버지 병수발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맡아 키워주는 중이었다. 급속한 체중 증가의 주범은 자기 삶을 완전히 유보한 데서 오는 스트레스. 그는 바쁜 오빠 내외, 언니 내외의 몫까지 책임지는 ‘착한 딸’이었다.

생리 중도 아니면서 생리대를 차는 여자

착한 여자 ㄴ(30대 중반)씨. 한의원을 찾았을 때 그는 생리대를 하고 있었다. 생리 중은 아니었다. 그가 습관적으로 생리대를 하는 이유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는 가슴이 가빠 숨을 제대로 못 쉬었다. 얼굴이 툭하면 달아오르고 머리카락도 뭉텅뭉텅 빠졌다. 남편이 너무 싫지만 남편 뜻을 거스른 적은 없다. 남편과의 끔찍한 잠자리 역시 아이를 안고 자거나 생리 중이라는 핑계를 대며 피할뿐 정면으로 거부한 적은 없다. 그는 이런 부부생활을 참고 이어가는 ‘착한 아내’였다.

착한 여자 ㄷ(40대 중반)씨. 유방에 깨알만한 종양이 많이 생겼다. 몇 차례 수술로 제거했지만 또 생긴다. 하지만 맘놓고 아플 수도 없다. 조금이라도 아플 기미를 보이면 시어머니가 먼저 아프다며 드러누워 버리기 때문이다. 상태가 심각해져 입원을 하게 되면 한술 더 떠 시어머니가 병간호를 하겠다고 나선다. 시어머니는 그의 일상에 사사건건 개입했다. 결혼한 뒤 시어머니가 동행하지 않는 부부 여행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는 시어머니 비위를 거스르지 못하는 ‘착한 며느리’였다.

남강한의원 이유명호 원장은 “착한 여자들은 아프다”고 말한다. 속앓이가 심한 이들은 심장·유방 관련 질환을 앓고,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이들은 방광·자궁 관련 질환을 앓는다. 울화를 그때그때 풀어내지 못하고, 하기 싫은 잠자리나 폭력적인 잠자리를 억지로 하는 탓이다.

착한 딸,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가 앓는 보편적인 질환은 울화병이다. 예부터 유방에 병이 생기면 천간해울탕으로 처방을 했다. 간을 맑게 하고 울체를 풀어준다는 뜻이다. 유방 관련 질환에 유(乳)자 대신 간(肝)자가 들어가 있다. 간은 오행 중 분노에 관련되는 장기다. 떨어지고, 졸이고, 붓고, 콩알만해지는 간의 고생으로 간기에 속해 있는 유방에 울혈이 생긴다고 보았던 것이다.

울화는 매핵기라는 증상을 낳기도 한다. 매실열매가 목에 걸렸다는 뜻이다. 자꾸 캑캑거리고, 말을 제대로 못하고, 답답하게 목이 졸리는 증상이다. 양방에서 스트레스형 인후염이라고 하는 이 증상도 일종의 울화병이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안 되다 점점 증상이 식도를 타고 올라와 목에 딱 걸려버리는 것이다.

제1수칙은 ‘자신을 위해 살라’

남강한의원을 찾는 ‘착한 여자’들의 상당수는 아무런 처방을 받지 못하고 돌아설 때가 많다. 자기 자신을, 자신의 몸을 아끼고 사랑하기 전에는 백약이 무효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에게 이유명호 원장이 권하는 것은 ‘일기쓰기’. 할말 못하고 자신을 억누르다 보면 자포자기 심정에 빠지고, 그 결과 파괴본능과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우선적인 해결방법은 털어놓는 것, 말하는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다. 혼자 쓰기 싫다면 이유명호 원장의 홈페이지(www.yakchobat.com)에 공개 일기를 쓸 수도 있다. 자궁근종으로 7번이나 습관성 유산을 했던 한 30대 중반의 환자는 공개 일기를 쓰며 몸이 아주 좋아졌다. 그는 처음엔 ‘바른 꽃’이라는 아이디를 썼으나 ‘랄랄라’로 바꿨다. 아이디를 바꾸면서 바른생활 교과서 같은 삶, 꾹 참고 견디는 삶도 거둬들였다고 한다.

이유명호 원장은 “시부모·남편·자식을 데려와 약 지어먹이면서도 정작 훨씬 망가져 있는 자기 몸은 돌보지 않는 여자들이 많다. 여성 건강 제1수칙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07000/2003/01/021007000200301220444034.html



The Internet Hankyoreh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