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대선 전 행정수도 이전에 관해 기자회견하는 노무현 후보. 그는 아직 새 행정수도 후보지로 특정지역을 거론한 적이 없다. (이용호 기자)

“충청권에 새 행정수도를 건설해 청와대와 중앙부처, 국회를 이전한다.”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민주당이 공식 제시한 내용은 이것이 거의 전부다. 노 당선자가 새 행정수도 후보지로 특정지역을 거론한 적도 없다.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 때 이전될 수도

현재 행정수도 이전을 연구 검토하는 곳은 민주당 대전시지부에 설치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상임위원장 강용식·이하 추진위)다. 추진위는, 대충 잡은 막연한 밑그림에 지나지 않지만 대략 10년에 걸쳐 수도 이전을 추진하는 일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1단계로 2003년에 행정수도 이전계획을 수립하고 후보지를 선정한다. 현재의 추진위는 대통령 직속의 장관급 민·관 합동기구로 개편된다. 추진위 산하에는 전문가와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신행정수도입지선정분과위원회’를 두고 2003년 말까지 입지를 최종선정할 예정이다. 2단계로 2004년부터 2005년까지 2년 동안 후보지 토지매입과 보상절차를 끝낸다. 3단계로 2006년에 첫 삽질에 들어가 2008년까지 부지를 조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한다. 그리고 마지막 4단계로 2009년부터 4년간 청사를 짓고 이전한다.

이런 일정대로라면 노무현 정부 안에 정부청사 이전은 사실상 어렵고, 부지 조성과 인프라 구축 등 ‘가시적 조처’만 이뤄질 뿐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 안에 이전될 가능성이 있다. 추진위가 청와대, 중앙부처, 국회의 단계적 이전과 일괄 이전 방안을 함께 검토하는데, 초기 단계에 청와대와 비경제부처를 먼저 옮기고, 그 다음에 경제부처를, 최종단계에서 국회와 협의를 거쳐 국회 기능을 이전하는 안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2003년에는 후보지 선정과 함께 행정수도 이전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신행정수도건설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이 야당의 반대 속에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치적 합의가 순탄치 않을 공산이 크다. 정작 넘어야 할 산은 국민적 공론화 과정이다. 국민적 합의는 특별법 제정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리대결만 무성할 뿐 합의 없이 질질 끌다가 결국 무산될 가능성마저 벌써 점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의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행정수도 이전의 발목을 잡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정수도 이전을 국민투표에 붙여야 하는 것일까? 추진위쪽은 국민투표 절차는 아직 고려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노 후보가 당선됐으므로 사전 국민투표를 거친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다.

‘남북통일시대’라는 상황변화

합의과정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를 논란은 남북통일시대라는 장래의 상황 변화다. 통일 이후를 감안할 때 “수도를 서울 남쪽으로 이전하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기다렸다가 통일 뒤에 개성이나 판문점 등으로 천도하자는 주장도 만만찮게 나온다. 풍수지리연구가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북한 사람들은 통일 이후 서울까지 내려오는 것조차 꺼릴 것이다. 충청권은 국토의 중간이라기보다 한반도 전체로 보면 남쪽에 해당한다. 통일 뒤 또다시 수도를 옮겨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진위는 “현행 수도권 체제로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의 수도권 유입이 가속화돼 수도권 집중이 더 심화된다. 서울·평양과 함께 충청권 신행정수도가 3각 다극체제를 형성하면서 분권형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가장 치열한 공방은 행정수도 유치에 사활을 건 충청권 각 지역 간에 펼쳐질 공산이 크다. 이를 우려한 듯 추진위는 자치단체로부터 후보지 제안서를 받는 것보다 중앙정부가 주체적으로 후보지를 선정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추진위쪽은 “전문가 집단이 지역의견을 수렴하겠지만 독자적으로 연구할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국가적 과제다. 지역에 맡겼다가는 자칫 사방에서 잡아당겨 가랑이가 찢어지고 원칙이 상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