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수도권 아파트 분양신청을 위해 몰린 시민들. 인구증가가 억제되는 것만으로도 가격상승 억제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겨레 장철규 기자)

“망아지를 낳으면 제주로 보내고, 자식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

이 속담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서울 지향성을 보여주는 말이다. 한신대 유봉학 교수(국사학)는 <추사와 그의 시대>에서 이 속담이 조선 정조∼순조 때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지방에 뿌리를 둔 사림세력이 정치의 중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대대로 서울에 살던 이른바 ‘경화사족’이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발돋움하면서, 서울이 정치·경제만이 아니라 문화와 학문·교육의 중심지로까지 부상하던 시기의 사회상을 반영한 속담이라는 것이다. 그때로부터 벌써 2세기가 흐른 지금도 사람의 자식들은 쉼없이 서울로, 수도권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20년 수도권 2223만명

서울의 폭발적 팽창은 도대체 임계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서울시 인구는 지난 90년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경기도 지역을 포함한 수도권 인구의 증가세는 지금도 가파르기만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중 우리나라 인구는 33만명가량 늘었는데, 서울과 경기도의 인구는 23만명이 늘었다. 이는 전국 순증인구의 68%나 된다. 서울·경기 지역 사람들이 자식을 많이 낳아서가 아니라 이전인구 때문이다.

서울·경기 지역 인구가 전 국민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 80년 32%에서 2001년에는 41%로 늘었다. 이대로 가면 2020년에는 서울·경기 인구가 2223만명으로 전 인구의 44%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통계청은 전망한다. 이 무렵 전체 인구는 한해 3만여명이 늘지만, 서울·경기 인구는 그보다 2배 많은 6만여명이 늘 것이라는 게 통계청의 분석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공약한 행정수도 이전이 실행되면 서울과 수도권은 이런 인구팽창을 과연 멈출 것인가 또 이를 바탕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은 얼마만큼 진척될 수 있을까

서울과 수도권의 팽창이 얼마나 억제될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는 새로 만들어질 행정수도의 성격, 행정부처 등의 이전규모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쨌든 서울·수도권의 팽창을 저지하는 효과가 없다면 행정수도 이전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점에서, 규모가 얼마가 되든 행정수도 이전 효과는 상당히 긍정적일 것이라는 데 별 이견은 없다.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대로라면 새로 건설될 새 행정수도에는 청와대와 중앙행정부처, 그리고 국회가 순차적으로 옮겨가게 된다. 중앙행정부처의 이전에 따라, 행정부처가 유발한 고용인구도 새 행정수도로 상당부분 옮겨간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 뒤 서울과 수도권이 어떻게 변할지를 구체적인 수치로 분석한 자료는 아직 없다. 지난 76∼77년의 행정수도 이전 추진계획에 따라 80년 한국개발연구원이 작성한 ‘행정수도 이전의 사회경제적 타당성 연구’란 보고서가 유일한 자료다. 보고서는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할 경우 서울 인구가 행정부처 이전이 이뤄지는 동안은 일시적으로 감소할 것이며, 이전이 끝난 뒤에는 전국의 인구증가율보다 낮은 수준에서 완만하게 증가할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교통소통, 그렇게 좋아지진 않을 것”

사진/ 교통난도 수도권 분산을 재촉한다. (한겨레 장철규 기자)

새 행정수도를 인구 100만명 정도의 규모로 건설할 경우 인구가 100만명에 이르는 데는 길면 20년가량 걸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지방행정연구원 권오혁 지역경제팀장은 “초기 7년 정도에 30만∼40만명 정도, 이후 7년에 걸쳐 다시 30만∼40만명이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행정수도로 행정부처가 옮겨갈 때 서울과 수도권 인구는 약간 감소하다, 이후 전국 인구증가율 수준의 완만한 증가에 그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수도권으로 인구가 이전하는 것은 수도권의 경제와 교육 중심지 기능 때문인데 새 행정수도로 일부 경제 기능도 옮겨가면서 수도권은 인구 유입 요인과 이탈 요인이 비슷해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인구의 지나친 밀집이 가져온 가장 큰 폐해인 비싼 부동산 가격 문제는 얼마나 완화될 수 있을까 높은 부동산 가격은 기업들에게는 생산비용을 높이고, 노동자들에게는 주거비 부담을 키운다. 부동산 가격은 도시가 팽창하고 인구가 과밀해질수록 급격히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인구증가가 억제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가격상승 억제 효과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80년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결과는 행정수도 이전으로 서울의 인구증가율이 전국 평균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전국 평균 상승률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행정부처가 실제로 옮겨가는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집값·땅값이 떨어질 것”이라며 “그보다 앞서 노무현 정부의 강력한 주거안정 정책이 부동산 가격에 주요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은 지나친 인구밀집으로 인한 주택난과 교통난, 환경오염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자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만으로 교통소통이 크게 좋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녹색교통운동 민만기 사무차장은 “중앙행정기관이 유발하는 교통량이 매우 많은데, 행정기관이 빠져나가면 교통소통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를 기존의 자동차 운전자들이 체감하는 정도는 크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교통소통이 어려워 차량 운행을 자제하던 사람들이 이제 차를 끌고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호남·강원은 계속 낙후되나

행정수도 이전은 지역 균형발전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지난 81년 김종기 박사가 쓴 ‘신행정수도 건설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는 행정수도가 충청권으로 이전할 경우 충청권이 급격히 성장하고, 서울·수도권은 평균적인 성장을 하지만, 호남과 강원 등 전통적 소외지역은 계속 낙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21> 좌담에 참석한 안건혁 교수도 “서해안 지역 개발 같은 집중투자가 없으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지역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인구 이전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경륭 교수도 “행정수도가 강원, 전북, 일부 경북지역에 얼마나 상대적인 악영향을 줄지 모르지만 염려는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차원에서 행정수도 이전과는 별도의 정책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서울과 수도권의 장래에 대해서는 행정수도 이전을 통한 과밀억제라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 발전을 겨냥한 적극적인 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토연구원 박인성 연구위원은 “서울과 수도권은 우리 국토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곳이고, 중국의 성장과 함께 발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행정수도 이전으로 인구과밀이 억제된다면 이제 적극적으로 서울·수도권을 동북아의 경제·금융·물류 중심지로 키워나가기 위한 계획된 투자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