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2년12월26일 제440호 

재생의학은 꿈이런가

윤리적 장벽에 갇힌 치료용 복제의 가능성… 난치병 정복의 돌파구임에도 법적 뒷받침 미비



최근 줄기세포에 관련된 획기적인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21세기판 불로초로 불리며 난치병 치료의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이는 줄기세포. 하지만 연구자들은 ‘치료용 복제’를 둘러싼 논란에 휩싸여 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 때문이다. 현재 국무조정실에서 최종안을 조율하고 있는 생명윤리 관련 정부입법안은 인간 배아복제 연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도대체 치료용 복제가 무엇이기에 관련법 연내 제정이 끝내 무산되고 해를 넘길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여기에서는 치료용 복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줄기세포 연구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

영화 <슈퍼맨>의 주연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는 끊임없는 재활훈련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이게 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휠체어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이다. 그는 지난 1995년 승마를 하다 떨어지면서 척추손상을 입었다. ‘클론’의 강원래씨도 2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현대의학으로는 아직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척추 손상 장애. 리브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슈퍼맨의 연기를 하고, 강씨가 무대를 휘젓는 댄스가수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앉은뱅이 일으켜 세우는 기적 예고

현대의학이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수많은 난치병. 그것을 정복하고자 하는 생명의 불씨들이 자라고 있다. 생명공학연구소의 세균 배양용 ‘페트리 접시‘(배아 배양기)에 둥둥 떠 있는 반투명의 점처럼 생긴 배아. 이것은 적어도 6개의 세포로 이뤄진 것이라 해도 마침표보다 훨씬 작은 세포 덩어리일 뿐이다. 체세포 복제로 만들어진 ‘인간 배아’(Human embryo)라 할지라도 육안으로 살피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조그맣다. 이 세포 덩어리는 작지만 놀라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척추의 세포를 재생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심지어 망가진 장기를 대체할 미래를 예고한다.


사진/ 줄기세포는 생명공학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마리아병원 생명공학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배아 줄기세포주(왼쪽). 줄기세포는 화학물질의 작용에 따라 특정 세포로 유도된다.


초기배아는 속이 빈 공의 형태를 이루는 100개가량의 세포 덩어리인 ‘포배’(blastocysts) 단계를 거친 뒤 포배낭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분리하는 ‘줄기세포’(stem cell)가 의학혁명의 불씨 구실을 한다. 줄기세포는 일종의 태생기 ‘만능세포‘로 어떤 조직으로든 발달할 수 있다. 초기 분열 단계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는 자동적으로 장기를 형성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사전에 충분한 연구로 분화 과정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분화 정보를 입력하고 그에 따라 특정 조직으로 발달하는 ‘세포계’(cell line)로 배양된다. 줄기세포는 키우는 방식에 따라 언젠가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현대의학의 최대 딜레마가 발생한다.

인간 배아 전단계 세포 덩어리는 생명공학 최고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꼽힌다. 내로라 하는 생명공학자들이 ‘치료용 복제’(therapeutic cloning)에 매달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치료용 복제는 환자의 유전물질을 이용한 ‘세포 치료’를 실현한다. 적용 분야도 광범위하다. 신경이나 심혈관계질환, 자기면역질환, 혈액과 골수에 관련된 질환 등에서 놀라운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컨대 복제된 배아에서 신경세포를 추출하면 손상된 척수뿐 아니라 파킨슨병 같은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파킨슨병은 부신에서 만들어져 뇌에 필요한 ‘도파민’(dopamine)을 형성하는 뇌세포가 죽어서 발생한다. 알츠하이머병, 발작 간질 같은 질병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치료용 복제는 생물학상의 제과점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배아줄기세포는 ‘밀가루’ 구실을 한다. 어떤 성분을 첨가해 어떻게 반죽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는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당뇨 치료에 쓰이는 인슐린을 만드는 이자섬 세포나 울혈성 심부전, 부정맥, 심장마비 등으로 손상된 심장조직을 치료하는 심장근육세포도 만들 수 있다. 복제된 줄기세포를 혈액과 골수 세포로 분화시키면 더욱 광범위하게 쓸 수 있다. 다발성 경화증이나 류머티즘성 관절염, 폐렴 등의 자가면역질환은 골수에서 생성되는 면역계 세포인 백혈구가 신체의 조직을 공격해서 일어난다. 이때 조혈 기능이 있는 줄기세포를 주입하면 환자들의 면역계가 새롭게 조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설명>

1. 생체 밖에서 수정된 난자. 난가자 분할을 활성화하도록 설계된 다양한 화학물질과 성장인자에 노출시킨다.
2. 100개가량의 세포 덩어리로 이뤄진 포배 단계. 4~7일이 지난 상태로 속이 빈 공 모양을 이루고 있다.
3. 내부 세포군 형성하는 배반포 단계. 이 세포 덩어리에 줄기세포가 함유되어 있다.
4. 줄기세포 배양. 포배를 열고 내부세포군을 채취해 배양접시에 기르면서 줄기세포를 생산하도록 한다.
5. 조직과 장기로 분화. 줄기세포는 환자에 주입될 수 있는 다양한 세포를 생성하도록 유도된다.

고장난 장기와 조직에 생명력 부여

이처럼 치료용 복제는 고장난 장기와 조직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재생의학’(regenerative medicine)을 실현한다. 예컨대 자동차의 엔진이 고장났을 때 교체 이외의 방법이 없듯 재기 불능의 인체 조직을 새로운 조직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복제 줄기세포가 당장 ‘장기(臟器) 공장’ 노릇을 할 수는 없다. 정형민 차병원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장은 “치료용 복제는 분신을 만들어 췌장·심장 등을 꺼내 쓰는 게 아니다. 지금은 배아세포를 줄기세포까지 자라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줄기세포의 기능을 밝혀내는 데만 해도 10여년은 걸릴 것이다. 그런 연구 성과를 모아냈을 때 언젠가는 장기를 재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진/ 인간 배아가 자궁에 이식되면 완전한 생명체로 자란다.


인간 배아를 만드는 치료용 복제는 무한한 가능성 있는데도 실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윤리적 논란에서 예외가 아닌 탓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정자 없이 난자만으로 배아를 만드는 ‘처녀생식’(단성생식·parthenogenesis) 방법으로 치료용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고 있다. 처녀생식으로 만드는 배아는 정자 없이 만들어지기에 자궁에 이식해도 임신이 안 된다. 2001년 11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생명공학 회사인 어드밴스트 셀 테크놀로지(ACT)가 세계 최초로 인간의 난자를 처녀생식으로 복제배아를 만들었다. 하지만 줄기세포를 만드는 단계까지 가지 못해 연구 성과를 의심받았다.

ACT는 2002년 2월 영장류에서 처녀생식으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원숭이의 포배기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맥박이 뛰는 심장세포 소화관의 상피조직, 도파민 생성 신경세포 등의 세포를 생산한 것이다. 2002년 12월5일에는 소를 복제해 얻은 줄기세포를 소에게 재이식하면 면역기능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2002년 7월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에서 생쥐의 난자를 배아로 전환하는 처녀생식으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동물실험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줄기세포에서 60~80회의 심박수를 가진 고순도 심근세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사진/ 연구자가 줄기세포를 특정 세포로 분화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첨가하고 있다.


이렇듯 치료용 복제의 효용성을 뒷받침하는 연구성과가 잇따라 대중에게 다가오고 있다. 손발이 떨리는 파킨슨병과 운동기능이 쇠퇴하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등 신경에 이상이 발생하는 병, 교통사고 등에 의한 척추 손상과 같이 근본적 치료방법이 없는 병에 걸린 환자들은 분화한 세포로 치료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심지어 자기 몸을 임상실험에 써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있다. 파킨슨병 환자인 배우 마이클 제이 폭스는 줄기세포 연구를 장려할 정치인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혔고, 알츠하이머병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도 배아복제 연구를 가로막는 부시 행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체세포 핵이식을 이용한 치료용 복제에 관한 연구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난자의 핵을 제거한 다음 체세포의 핵을 공여된 난자에 주입해 얻는 배아줄기세포는 세포 치료의 최대 걸림돌인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 놀라운 가능성에도 치료용 복제는 법적으로 원천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2001년 7월31일 어떠한 인간 배아복제도 금지하는 ‘웰던(Welden)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배아에서 얻은 줄기세포와 관련된 연구에 대한 연방 기금 지급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인간복제 가능성이 있는 연구는 어떤 식으로든 이뤄질 수 없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생명론’ 윤리적 충돌 의원 정부 입법안 표류

국내에서도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에 치료용 복제를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아무리 치료 목적으로 복제된 배아라도 아기로 성장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황금과실이 열릴 수 있는 나무를 싹이 트기도 전에 진드기가 생길지 모른다는 예견으로 뿌리를 뽑아버린 격이다. 물론 복제된 배아를 여성의 자궁에 이식해 복제 아기의 탄생을 유도하는 인간복제 가능성이 있는 ‘생식용 복제’(reproductive cloning)는 윤리적 문제뿐 아니라 산모와 태아에도 치명적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재생의학으로 가는 치료용 복제를 막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정과 동시에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믿는 탓이다. 하지만 줄기세포 연구에 쓰이는 배아세포 덩어리를 하나의 인간 개체로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다.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자그마한 배아의 3분의 2가 여성이 자신의 임신 여부를 알기도 전에 파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 뒤 2주 된 세포 덩어리에서부터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나타나는데 이는 배아의 머리와 꼬리, 왼쪽과 오른쪽을 결정하는 세포들의 열이다. 아울러 중요한 일부 유전자들이 갑자기 활동하기 시작해 세포들은 각기 다른 발달 과정을 거치며 간이나 심장 등으로 자라게 된다.

치료용 복제를 지지하는 연구자들은 배아가 생물학적으로 임신 14일 뒤부터 성장한다는 사실을 내세운다. 원시선 이전은 조그만 세포 덩어리로 원시 생명체일 뿐이며 이후에야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원시선이 인간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선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실제로 대다수 생명공학 연구자들은 배아 전 수정 초기 세포 덩어리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할 정도로 작아서 기술적으로 임신이 됐다고 말할 수 없는 단계라고 여긴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생명이란 임신에서부터 시작되기에 배아가 얼마나 작든 또는 배아가 얼마나 많은 희망을 주건 배아를 연구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치료용 복제 금지 법안은 낙태라는 상황과 맞물려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재 낙태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해마다 1만여건의 인공수태 시술이 이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 상태의 배아를 인간으로 인정한다면 출생까지 가지 않을 페트리 접시의 세포가 여자 자궁 속의 배아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갖는 격이다. 체세포 핵이식의 권위자인 황우석 교수(서울대 수의학)는 “치료용 복제가 배아의 희생을 동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배아의 희생이란 이유로 배아의 모든 치료적 가능성을 차단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은 안팎의 반대 여론에 밀려 국회 심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 등 여야 의원 88명이 인간복제를 금지하고 체세포 복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의 ‘생명윤리법안‘을 2002년 11월14일 의원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과학기술부는 줄기세포 연구를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에 포함해 해마다 100억원씩 10년간 1천억원을 지원한다. 치료용 복제는 주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재생의학에서 상대적으로 효용성이 높은 연구 분야를 도외시한 채 반쪽의 성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줄기세포, 반쪽의 성과만 기대할 건가

그렇다면 치료용 복제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인가. 사정은 그렇지 않다.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은 1990년에 제정된 ‘인간의 수정 및 발생에 관한 법’을 2000년에 수정해 치료용 복제에 관해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불치병 치료의 새 장을 여는 것이 배아를 조작하는 위험성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효용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이 인간 배아줄기세포가 유사 이래 한 가지 세포로 모든 질병을 치료할 유일한 수단으로 꼽히는 상황에서 수천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황금시장’을 각국의 생명공학 기업들이 포기할 리 만무하다. 미국만 해도 정부의 연구비 지원만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체세포 핵이식이나 처녀생식 등으로 인간 배아를 만드는 치료용 복제 실험의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생명공학의 기술적 진보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의 주장처럼 ‘원칙적 금지’가 현실화된다면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차세대 생명공학 산업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물론 ‘무제한 허용’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져 내리는 ‘미끄러운 경사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다시 생명이다. 배아가 존중받아야 하듯 불치병으로 대책 없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생명 역시 소중하다. 그들에게 치료용 복제는 ‘생명의 불씨’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윤리가 내일도 적용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어떤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는 재생의학의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류우종 wji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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