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2년12월05일 제437호 

“실상을 알면 지망자 있을까요?”

인터뷰ㅣ전·의경 생활 다큐멘터리 만드는 대학생 김형렬씨



대학생 김형렬(25·청주대 경영정보2)씨는 의경 방범순찰대(이하 방순대) 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2000년 12월 제대한 김씨는 “전·의경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군인이다. 그들도 똑같은 자식이라는 마음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현재 전·의경 생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는 그에게 전·의경 생활에 대해 물었다.

왜 의경을 지망했나.

지망 동기는 단순했다. 뭔가 특별한 것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공군은 복무기간이 너무 길고, 해병은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나 가는 육군은 재미없을 것 같았다.

의경생활 동안 주로 어떤 일을 했나.

4주간 군사훈련 뒤 경찰학교 마치고 배치된 곳이 서울 종로경찰서 방순대였다. 당연히 교통위반 딱지를 떼거나 방범 순찰활동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많이 한 일은 시위진압이었다.

방범순찰대도 대부분 시위진압에 나서나.

대부분이 아니라 완전히 100% 시위진압에 동원된다. 물론 관내에 청와대 등 이른바 ‘특정지역’이 있기 때문에 시위진압 외에도 방범순찰과 경비업무에도 많이 나갔다. 특히 청운동이나 삼청동 같이 높은 분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사소한 절도 사건이라도 나면 부대가 발칵 뒤집힌다. 그런 일이 높은 분 귀에 들어갈까봐선지 아예 방순개 1개 중대 전원이 부근에 사나흘씩 깔려 경비를 서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잠이 부족했다. 밤새 야간방범 활동을 벌이고 들어와도 대규모 시위가 있는 날은 눈 붙일 새 없이 바로 출동을 나가야 했다. 피곤에 지친 상태에서 시위가 길어지면 당연히 시위대가 미워진다. 처음에는 존댓말이 나오던 입에서 어느새 욕설이 새어나오곤 했다. 아버지가 농민인데, 농민대회 하는 날 아버지하고 안 마주치려고 계속 휴대전화로 연락해가며 피했던 일이 있다.

최근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 재판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진압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전·의경들 가운데 미국 좋아하는 사람 없을 거다. 미국 관련 시설은 모두 경비를 서줘야 하지 않나. 제대할 때쯤 되면 미국 하면 치가 떨리는 정도다. 의경은 꼭두각시나 마찬가지 아니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군인 신분이다. 변명이 아니라 시위대와 충돌을 피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그들도 안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여야 하고, 쇠파이프를 휘둘러야 하고…. 왜 모르겠는가.

제대한 지 2년이 다 돼 가는데 전·의경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는 이유가 뭔가.

‘의경 가면 편하다’는 소문 때문에 지원하는 후배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싶다. ‘치안업무 보조’라지만 시위진압이 주업무라는 사실을 알고 지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의경이 생긴 역사적 배경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왜 시위진압에 나서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