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2년11월13일 제434호 

과시욕과 상술의 절묘한 만남

주거문화의 변화로 보기는 어려워…뉴욕 주상복합 아파트와는 다른 50대 부유층의 거대한 공간

타워팰리스는 한국 주거문화에 나타난 하나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타워팰리스가, 획일화된 아파트 문화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주거공간을 바꿔놓는 획을 그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라는 관점에서 타워팰리스를 바라볼 때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나 지금 타워팰리스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넘어 우리 사회 부유층의 특별한 주거공간이라는 뜻에서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고소득층의 주거특구라는 측면에서 타워팰리스가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강남 신흥 부유층이 몰려든 이유


사진/ 타워팰리스는 한국 사회에 신흥 부유층이 두껍게 형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타워팰리스 안에 마련된 당구장과 독서실. (김종수 기자)

외환위기를 거치며 우리 사회의 중산층은 약화되고, 소득계층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 이 과정에서 50평∼60평형대 대형 아파트의 수요와 공급은 폭주했다. 그만큼 부자들이 살 만한 집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도시의 평균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삼아온 기존 아파트 문화를 거부하는 흐름이 형성됐다. 해안종합건축사 윤세한 소장은 “고소득층은 수영장·골프연습장·의료시설 등 그들만의 커뮤니티 시설을 한지붕 아래서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형·고급 주거공간을 바란다”며 미국에서 확산되는 공동관심단지(CIDs·common-interest developments)를 꼽았다. 공동관심단지는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우아한 생활양식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곳으로, 생활방식과 소득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살고, 정원·공원·수영장 등 공동시설이 제공된다. 외부인의 출입제한으로 입주자의 안전도 보장받는다.

타워팰리스 열기는 한국의 도시 부유층도 호텔식 서비스, 전용커뮤니티 시설, 완벽한 보안설비 등을 갖춘 고급 주거공간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집값을 떨어뜨릴 수 있는 사람은 공동관심단지로의 진입을 철저하게 막아 집의 가치를 보장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급커뮤니티’를 표방하는 타워팰리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타워팰리스에는 평균 4식구가 무려 100평형에 이르는 공간에 살고 있다. 소수 부유층이 평당 2천만원이 넘는 도심 땅을 지나치게 많이 깔고 누워 자는 형국이다. 반면 뉴욕의 주상복합 아파트는 30여평이 표준규모로, 평수가 그리 크지 않다. 이에 대해 현실문화연구 김수기 대표는 “주거문화가 뒤틀렸다고 할까. 부유층의 과시욕과 건설회사의 마케팅 상술이 서로 작용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때맞춰 그들에게 상류층이라는 점을 보증할 명품 아파트를 던져줬다는 것이다. 타워팰리스의 성공은 한국 사회에 이런 신흥 부유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부유층의 상징은 단독주택이나 빌라였다. 성북동·평창동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부유층의 주거공간은 좀체 드러나지 않고 잘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이 소유한 부를 바깥에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숨기려는 것이다. 그만큼 단단하고 견고한 부촌을 형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성북동·평창동 등에 진입하기 어려운 신흥 상류층들은 주로 강남에 몰렸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일부가 타워팰리스로 옮겨갔다. 김수기 대표는 “성북동·평창동쪽 부유층은 나름대로 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그 세계는 문화적·역사적인 뿌리 없이 돈만으로 진입할 수 없다. 따라서 강남쪽 신흥 부유층의 상류의식·허영심을 충족시켜줄 뭔가가 필요했다”고 분석했다. 명품쪽으로 돈이 우르르 몰리는 현상이 최고급 명품 아파트를 내세운 타워팰리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물산이 애초 타워팰리스의 주요 고객대상에서 강북의 부자들은 제외시켰다는 점과 맥을 같이한다.

강남의 부유층이 타워팰리스로 이동한 것은 단지 ‘방범’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초호화 고급 아파트라서가 아니라 완벽한 보안시설 때문에 타워팰리스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이아무개(성북동 주민)씨는 “부자들은 집이 도둑맞을까봐 가장 걱정한다. 보안장치를 아무리 달고 담장을 아무리 높여도 안심이 안 된다. 도둑맞아도 경찰에 알릴 수도 없다. 경찰에 알렸다가 소문 나면 남편의 인생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속편하게 첨단 출입통제시스템 등 보안시설을 갖춘 타워팰리스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타워팰리스에 입주한 50대 남자는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통제하는 보안시스템이 가장 맘에 든다”고 말했다.

안전과 익명성 보장

단독주택보다 초고층 공동주택에서 부유층의 익명성은 오히려 더욱 보장된다. 기용건축 정기용 소장은 “단독주택은 가정부·운전기사·정원사 등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부유층 생활이 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노출된다. 하지만 호화 아파트는 엄청난 관리비를 내는 대신 철저한 관리시스템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의 부와 귀족적 신분을 보호해준다. 호텔처럼 수위가 있고 방범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단독주택은 집이 커질수록 호화주택으로 분류돼 이웃의 눈길이 두렵다. 하지만 호화 공동주택에 집단적으로 들어서면 몇층 오른쪽 집이 누구집인지 다 헤아릴 수도 없고, 따라서 단독주택보다 익명성이 더욱 보장된다는 것이다.

부유층이 초고층으로 옮겨가는 가장 큰 까닭은 ‘전망’ 때문이다. 정기용 소장은 “뉴욕 맨해튼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30∼40층 펜트하우스에 살면서 전 도시를 자기 호주머니에 넣은 듯한 느낌을 향유한다. 산다는 것보다는 자신이 별처럼 공중에 떠 있다는 근사한 느낌을 체험한다는 게 더 정확한데, 그 바탕에는 남들과 달리 산다는 차별화 욕망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다는 자체가 신분의 표상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높은 곳에서 강남 한복판을 내려다보며 산다는 특별한 체험을 집에서 호젓하게 맛보는 것이다.

타워팰리스가 과연 주거개념을 뒤바꿔놓을 수 있을까. 뉴욕은 오래전부터 주상복합건물이 주거문화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가족이 아니라 개인적 삶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전문직종 젊은이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평균나이 55살의 중년층 가족이 입주한 타워팰리스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본래 성격에 비춰볼 때 어딘지 어색하다. 현실문화연구 김수기 대표는 “건설회사의 상술이 뉴욕의 젊은 층에 맞는 주거공간 시스템을 우리 사회 상류층의 주거공간으로 둔갑시키려 하고 있다. 타워팰리스가 주거공간을 둘러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 주거문화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도 섣부르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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