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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떠나자! 계절의 향취 만끽하며 우울한 일상 떨쳐… 자연의 품에서 무딘 감각이 깨어난다
가을은 정말 슬픈 계절인가? 그런 느낌은 가을의 겉모습만을 보아서 생기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불교의 윤회설이나 만물유전이라는 유학의 세계관으로 보면 가을은 결코 죽어가는 계절만은 아니다. 태극의 음 속에는 항상 양이 살아 있듯이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는 뭇 생명들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분주한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숲은 장엄하기까지 한 ‘작은 우주’가 살아 있는 공간이다. 그 가을숲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자!
잃어버린 것에 대한 재발견의 공간
국민 10명 중 1명 가까이가 등산을 취미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새삼스레 왜 숲인가? 등산 취미도 사람에 따라 얻으려는 바가 다르겠지만 등산은 글자 그대로 낮은 곳에서 하늘 가까이로 ‘오르는’ 것이다. 맑은 공기로 코를 즐겁게 하고, 펼쳐진 녹음과 단풍으로 눈을 즐겁게 하며, 시냇물 소리와 새소리로 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숲이다. 산이 아니라 숲을 강조하는 이유는 ‘오름’이 아니라 ‘그 속으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애초 우리 조상들은 산에 ‘오르지’ 않고, 산에 ‘든다’고 했으며, 산짐승이 놀라게 “야호”를 소리높여 외치지도 않았다고 한다. ‘숲’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재발견인 셈이다. 지난 10월5일 오후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에서는 숲해설가협회가 주관하는 숲해설가 양성교육 5기 수강생들의 현장학습이 열리고 있었다. 수목원의 이유미 연구원은 소나무 종류의 구별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던 노인들이라면 모양새만 보고도 나무를 곧 구별하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가장 간단한 구분법은 바늘모양의 이파리가 어떻게 모여 있는가 하는 것이다. 소나무는 이파리가 2개씩, 리기다소나무는 3개씩, 잣나무는 5개씩 모여 있다. “줄기에 털북숭이처럼 이파리가 붙어 있는 리기다소나무는 일본 사람들이 서둘러 숲을 조성하기 위해 들여다 심었어요. 우리나라의 적송을 놔두고 리기다소나무를 심었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지만, 척박한 토양에도 잘 견뎠던 나무로 세계 조림역사에서 도입수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죠.” “소나무과 중 갈잎나무인 낙엽송(일본 이깔나무)은 곧게 빨리 자라기 때문에 전봇대나 철도 침목용으로 많이 썼어요. 지금은 별로 쓸 곳 없어 천덕꾸러기가 됐지만 시인들한테 영감을 주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한다고 봐야죠.” 이런저런 강좌를 이미 많이 들은 수강생들에게도 나무 이야기는 들을수록 재미있는 모양이다. “나무 끝에 매달린 잣송이는 따기가 힘들어요. 한번은 시험삼아 원숭이를 들여왔는데 이 원숭이들이 한번 잣나무에 올라갔다 오더니 더는 올라가지 않아 실패했대요. 끈끈한 송진이 털에 묻기 때문이었겠지요. 잣은 대부분 청설모가 차지하는데, 특히 잣 알을 쉽게 꺼낼 수 있게 잣송이를 순식간에 갉아냅니다. 숲에 가만히 숨어 있다가 청설모가 잣송이를 다 갉아낸 뒤 놀라게 하면 잣송이를 그만 떨어뜨리죠. 잣송이 하나에는 약 200개의 잣이 들어 있으니까 2번만 놀라게 하면 겨울 내내 식혜에 넣어 먹을 만큼은 충분합니다. 그러니까 두번 이상은 놀라게 하면 안 돼요!” 전국에 잣나무 묘목을 많이 퍼뜨렸는데, 남부지방 사람들은 잣이 왜 열리지 않느냐고 불만의 소리를 한다고 한다. 그런 불만에는 생명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이기심이 묻어 있다. “식물은 적절히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 번식을 준비합니다. 남부지방은 따뜻하니까 위기의식이 없어 잣나무가 열매 맺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이파리 하나에도 자연의 신비 가득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흔히 얘기합니다. 그러나 시큼달큼한 맛이 나는 빨간 열매가 열리는 보리수나무는 부처님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득도하신 것은 무화과나무과의 나무라고 해요. 그 이름이 ‘보히’와 비슷해 한자로 ‘보리’로 옮기고, 그래서 보리수나무를 그렇게 착각하는 것이라지요.”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중심적으로만 세계를 본다. 4장의 꽃잎이 마치 십자가 모양으로 퍼져 있는 산딸나무는 한때 “예수님이 못박혀 죽은 나무”로 알려져 교회에서 정원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무 하나하나에도 이처럼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동백꽃이 노란 이유는 그것이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는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의 꽃이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산동백’이라고 부른다. 씨앗으로 기름을 짜 동백기름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생강나무꽃은 산수유꽃으로 흔히 오해를 받는데, 산수유나무는 대개 인가 근처에 있지 산 속에는 거의 없다. 생강나무 이파리에서는 생강 냄새가 난다. 숲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씨앗에 잠자리날개 같은 날개를 달아놓은 단풍나무, 한해 열매를 맺고는 이듬해 몸살을 앓는 신갈나무를 통해 숲은 나무도 사람처럼 자식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잎자루에 작은 젖꼭지 모양의 꿀샘을 달아놓고 개미에게 달콤한 수액을 선사하는 대신 다른 벌레들이 꼬이는 것을 막는 벚나무는 공존의 지혜를 가르쳐준다. 모기가 들끓지 않도록 집에 심었다는 산초나무, 우물가에 심었다가 그 잎을 물 위에 띄워 나그네의 물갈이를 막아준 버드나무(버드나무에서 사람들은 아스피린 성분을 추출했다)는 자연과 조화할 줄 알았던 조상들의 삶을 보여준다. 먼길을 떠나는 나그네를 위해 오리(2km)마다 심은 오리나무와, 십리마다 심은 시무나무, 옛 시골집 손님에게 뒷간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던 감나무, 가을일을 돕기 위해 처가에 온 사위의 지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약한 덩굴로 지게끈(질빵)을 매줬다는 데서 이름붙은 ‘사위질빵’을 통해 우리는 옛 사람들의 여유를 읽는다. 숲은 이들 나무만이 아니라 풀, 곤충과 새들, 그리고 산짐승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그들에겐 또 그들 수만큼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숲 전문가 되려는 사람들 크게 늘어
손님들이 숲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숲연구소 남효창 소장은 “숲은 모든 존재가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는 폴리네시아 동쪽 끝 이스터섬(라파누이섬)의 슬픈 역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해변에 수십t의 무게가 나가는 600여개의 석상 모아이를 세우느라 야자나무숲을 모조리 베어버린 이스터섬 사람들은 결국 서로 잡아먹는 싸움을 벌이다 1만명이 넘던 주민이 10여명까지 줄어드는 등 멸족의 위기에 처했다. 숲을 계속해서 추방하고 있는 지구라는 섬에서 인간들은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백인들에게 대학살당한 인디언의 죽음의 노래에는 이런 가사도 있다고 한다. “오래 살아남는 것은 없다. 이 땅과 산뿐.” 환경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숲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부터가 새로운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유미 연구원은 “처음엔 재미로 이름을 아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숲과 사귀다 보면 존재의 깊은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 숲은 지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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