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2년07월31일 제420호 

늙은 섬총각의 ‘경호’를 받고…

문화계 인사 5명의 가슴에 남아있는 추억의 민박집


일러스트레이션/ 김성희

휴가철이 되면 늘 고민스럽습니다. 어디로 갈까, 누구와 갈까, 어디서 잘까…. 호텔처럼 잘 지은 콘도가 곳곳에 들어섰지만, 불쑥 찾아가는 민박 여행은 어떨까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정겨운 추억을 만들기에는 민박집이 알맞아 보입니다. 배우, 소설가, 시인, 만화가, 대중음악가 다섯분이 각자의 사연이 담긴 민박집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충남 보령군 오천면 외연도]


사진/ 오지혜·배우


6년 전 봄. 난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부모 잘 만난 애들은 걱정거리라곤 연애질밖에 없다는 어느 선배 말처럼 난 실연의 충격으로 어디든 떠나야 했다. 섬에 많이 다녀본 터라 이번엔 어딜 가서 내 마음의 오물을 맑은 바닷물에 ‘무단투기’하고 오나 생각하다가 외연도를 택했다. “맑은 날에도 늘 안개에 싸여서 바깥 ‘외’, 연기 ‘연’자를 쓴다”는 신비스러운 섬 외연도. 망망대해 속에 고기잡이배들의 불빛이 장관을 이룬다는 섬 외연도.

내가 묵은 민박집은 다른 섬으로 향하는 나를 자기네 섬으로 ‘꼬신’ 아주머니네 집이었다. 아저씨가 배주인이라 정식 민박집이 아닌데도 손님을 치를 맘의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날 섬 산책을 나갔다. 산책 내내 멀찌감치 자전거로 날 따라오는 남자가 있었다. 방파제 끝에 가서야 왜 따라오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자긴 내가 실연당한 여자라는 걸 단박에 알았으며 엉뚱한 짓 할까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니 신경쓰지 말란다.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을 지키는 이정재 같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다음 날 떠날 예정이었지만 섬여행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안개가 심해 배가 못 뜬다는 것이었다. 4일을 더 머물렀다. 3시간이면 한바퀴 도는 섬에서 그동안 내가 한 일은 늙은 섬총각의 ‘경호’를 받으며 바닷바람을 맞는 것 말고는 줄곧 집에서 5살짜리 유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유미는 갖은 성대모사를 하며 동화책을 읽어준 ‘딴따라 이모’한테 완전 ‘뿅’ 갔다.

그러다 날이 개어 떠날 날이 왔다. 이산가족의 이별이 따로 없었다. 식대와 숙박비를 받지 않는 건 물론이고, 내 가슴을 부여잡고 대성통곡하는 유미 때문에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8살 의준인 의젓한 척하더니만 문 뒤로 가서 소매로 눈가를 쓱 한번 훔치고 나오고…. 이제와 생각하니 괜히 실연의 상처를 보듬는다고 가서 착한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고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뻐드렁니 경호원 아저씬 자못 심각했기 때문이다.

보령8경 가운데 하나인 ‘외연도어화’에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이 잘 나타난 외연도는 충남 보령군 오천면에 속하는 섬이다. 대천항에서 배 떠나는 시간은 계절마다 다르니까 알아보고 출발하는 게 좋다. 뱃길에, 멀었던 탓에 아직은 라면봉지나 비닐팩이 뒹굴지 않아 좋다곤 하지만 나한테 남겨진 외연도 모습은 뻐드렁니에 포마드 머리를 하고 긴장한 모습으로 자신을 소개한 경호원 아저씨와 유미, 의준이와의 인연이 더 오롯이 남아 있다. 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만 여행을 떠나는 내게 친구들이 거기 뭐 볼 게 있어서 가느냐고 물으면 ‘사람’이 있어서 간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외연도야말로 그런 곳이었다.

허나 이것도 꽤 오래 전 얘기니 지금은 뱃길이 짧아져 비닐팩도 뒹굴고 유미 어머니도 식사비를 받으실지 모른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시라.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느냐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매서운 바닷바람은 여전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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