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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욕망! 노예적 존재에서 인간형 기계로 탈바꿈… 2050월드컵에선 로봇축구 돌풍 있을까
언제까지 ‘로봇 축구’를 비난할 건가
현재 로봇은 생산현장의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지난 1962년 미국 뉴저지의 제너럴모터스(GM) 자동차공장에 유니메이션사의 ‘유니메이트’(unimate)가 처음 등장한 이래 산업용 로봇은 생산현장의 필수품이 되다시피 했다.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로봇이 없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산업용 로봇은 크게 진화하지 못했다. ‘예정된 동작’을 반복할 뿐이다. 사전에 철저히 프로그래밍된 원칙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탓이다. 그래도 산업적 수요는 엄청나 전 세계 로봇 시장의 60%를 장악한 일본은 2000년 한해에만 로봇으로 57억달러를 벌어들였다. 로봇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작업한다. 하지만 유연성이 필요한 작업에는 무용지물이다. 사람의 손 동작 하나도 따라하지 못한다. 이런 로봇들이 자동화된 프로그램으로 유연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인간이라면 깊은 바닷속이나 원자력발전소 중수로, 유해가스 방사선 노출지역 등지에서 임무를 수행하기는 힘들다. 폭발물을 찾기 위해 건물에 매설된 파이프를 탐색하고, 우주의 진공 상태나 활화산 등 극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로봇도 있다.
로봇 전사도 출현… 고령화 사회의 버팀목
로봇들은 산업현장과 특정환경에 얽매인 작업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인간과의 교감을 꾀하는 로봇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도우미(Helper) 로봇’들은 인간과의 협동작업을 벌이며, 사람과 물리적인 접촉을 통해 정신적·감정적인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물론 감정적인 의사소통이라는 게 사람들 사이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문화적 요소까지 개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교감할 수 있는가에 있다. 포항공과대학 도낙주 교수(로봇공학)는 “로봇이 인간생활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제 인간과 로봇 간의 의사소통을 정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얼굴 표정을 지표화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고 내다봤다. 도우미 로봇은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의 든든한 친구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립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는 노인과 로봇의 감정 교류를 측정하는 지표를 마련해 노인복지센터에서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 실험에서 노인과 로봇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감정의 농도가 진해지고 의료진의 방문 횟수도 줄어들었다. 일본 마쓰시타사는 오사카에 병실 107개짜리 로봇 요양원을 지난해 12월 설립했다. 이 요양원에서는 로봇 곰이 간호사들의 도우미로 쓰인다. 로봇 곰은 환자와 교류하며, 인사를 해도 환자의 반응이 없으면 중앙간호실에 신속히 연락한다. 로봇이 기계 아바타로서 수호천사 구실을 하는 셈이다. 언젠가는 가사활동도 로봇의 몫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측된다. 처음에는 기묘한 모양으로 거실을 떠도는 로봇이 거추장스러울 게 당연하다. 하지만 첨단장비로 감정을 나누고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면 마다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노인이 요양원에 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로봇밖에 대안이 없을 것이다. 일본 로봇 협회는 도우미 로봇 시장이 5년 뒤에 2억5천만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살아 있는 로봇이 인체에 들어온다
지구상에서 가장 인간에 가까운 로봇으로는 일본 혼다사가 개발한 ‘아시모’(ASIMO)를 꼽을 수 있다. 아시모는 자연스럽게 직립보행하며 5개의 손가락도 서로 독립해 움직인다. 인간의 일상생활을 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전등 스위치를 작동하거나 주방에서 여러 작업을 돕는 것도 가능하다. 교토대학과 AIST는 키 154cm에 60kg의 휴머노이드 로봇 ‘HRP-4’를 개발하기도 했다. 기존의 휴먼형 로봇과 달리 등에 배터리팩을 짊어지지 않고도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으며, 30° 각도로 움직이며 자연스러운 동작을 취한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기계가 아니다
로봇 공학은 전혀 새로운 생물종 탄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는 두뇌 컴퓨터 장치, 세포 기술학, 복합 인체 로봇 등이 필연적으로 동원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신체 조직을 대체하는 ‘신경보철’을 이용해 청각·시각·동작 등의 기능을 얻고, 특별한 기기를 이용해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자유롭게 이동할 것이다. 인간형 로봇이 몇 단계 진화한 형태의 사이보그가 스크린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셈이다. 인공지능에 의한 두뇌에 신경보철이 몸을 받쳐주면 로봇이 ‘노예적 존재’에 머물 까닭이 없다. 언젠가는 로봇이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며 인간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이 날개를 녹여버릴 것이고,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물에 젖게 된다’는 그리스 신화의 다이알로스 이야기는 로봇 공학자를 향한 오래된 경구인지 모른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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