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2년07월17일 제418호 

동맹 속의 인신매매

기지촌에 조직적으로 팔려와 착취당하는 외국 여성들… 한국정부의 방조 더 이상 안 된다


사진/ 한국의 기지촌에서 외국 여성들을 만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의정부 고산동 캠프 스탠리의 풍경.


송은자(가명·62)씨는 한국 기지촌 1세대 여성이다. 60년대부터 20여년간 미군부대를 따라 옮겨다니다 80년대 중반 경기도의 한 기지촌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만난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러나 지긋지긋한 기지촌을 벗어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성매매였다. 미국에 도착하자 포주로 돌변한 남편은 그에게 몸을 팔게 하고 돈을 뜯었다. 남편에게서 도망친 송씨는 한동안 노숙생활을 하다 미국 동부 대도시의 마사지숍(massage parlor)으로 팔려갔다. 취업을 미끼로 내세운 인신매매단의 사기에 걸려든 것이다.

한국은 인신매매 경유국

마사지숍에서 일할 동안 송씨는 이동의 자유는커녕 성노동에 대한 대가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미국은 각주마다 성매매에 대한 규제나 금지기준이 다르다. 업주들은 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한 업소에 오랫동안 마사지걸들을 두지 않고 미국 전역에 형성된 ‘체인’을 통해 이들을 교환한다. 2년 넘게 노예매춘 상황에 놓여 있던 송씨는 사생결단으로 탈출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의 충격으로 10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이 온전치 않다. 그러나 “내 뜻과 무관하게 팔려다녔다”는 사실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사기·약취·유인·협박·강간 등 조직적 범죄에 걸려 다른 나라로 팔려다니는 여성과 어린이 수는 지난해만도 70만명을 헤아린다. 유엔에 따르면 90년대 후반 5년간 여성 인신매매는 국제무역의 형태로 급증해 연간 80억달러 규모를 넘어섰다. 날로 국제화·기업화하는 이 범죄에 맞서 2000년 유엔특별총회는 인신매매 네트워크를 막고 범죄자들을 강력처벌하는 ‘인신매매와의 전쟁’을 각국에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엔이 뛰고 있다면 인신매매는 난다. 송출국·경유국·기착국의 인신매매 실태와 방지노력이 제각각인 탓에 인신매매 조직은 법의 허점을 악용하며 국경을 넘나든다.

한국은 인신매매 경유국이다. 한국의 기지촌은 필리핀, 러시아에서 온 ‘엔터테인먼트걸’들의 도착지이자 출발지이기도 하다. 기지촌 자활공동체 새움터가 최근에 발표한 경기도지역 성매매 실태조사를 보면 국제적 인신매매의 증가속도를 짐작할 수 있다. 동두천·의정부·파주·평택의 업소에서 러시아 여성을 고용한 비율은 99년에 견줘 적게는 2배에서 최고 15배까지 늘었다. 수많은 외국 여성들이 예술흥행비자(E6비자)나 단기종합비자(C3비자)를 갖고 들어온 뒤 여권과 비자는 빼앗긴 채 기지촌에 묶인다. ‘운이 좋으면’ 미군과 결혼해 떠나지만 상당수는 국내의 다른 성매매업소로 팔려간다. 앞서의 송씨나 수많은 ‘송씨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외국 여성들이 채우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셈이다.

기지촌에 외국 여성들이 늘어난 시기는 96년께부터다. 미군이 줄어들거나 이동한 곳뿐 아니라 미군의 수가 바뀌지 않은 기지촌에서도 원정섹스가 늘어나며 점차 경기가 나빠졌다. 92년 윤금이씨 살해사건 이래 해마다 벌어지는 미군들의 성범죄와 살인에 대한 국민 감정이 악화하자 미군은 ‘위험하지 않은’ 성적 서비스 제공에 눈을 돌렸다. 이런 배경을 등에 업고 기지촌 업주들은 러시아와 필리핀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공수’해온 것이다.

가장 큰 버팀목은 미군


사진/ 지난 4월 말 미국 전역에 방송된 <폭스8>방송의 '한국 인신매매' 리포트. 미군 당국과 정찰대의 기지촌 성매매·인신매매 관리감독 사실을 폭로해 미 의회와 행정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 전까지는 불법체류 노동자 신세인 외국 여성들 가운데 일부가 기지촌으로 흘러들어왔다면, 이때부터는 조직적인 인신매매가 활개치기 시작했다. 인력송출 브로커가 해외 현지에서 모집해 입국시킨 외국 여성들은 포주와 성구매자 모두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한국 여성보다 쉽게 속일 수 있고, 더 값싸고, 여권만 손에 쥐고 있으면 쉽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지촌의 업주들은 경기회복을 위해 한국 남성들도 적극적으로 끌여들였다. 한때 ‘양색시촌’으로 유명했던 파주시 용주골(현재 연풍리) 등은 한국 남성들의 집결지로 바뀌었고, “필리핀 영계와 러시아 백계가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99년 8월 포주의 성착취와 폭력을 견디다 못해 기지촌에서 도망친 두명의 필리핀 여성이 서울 용산경찰서를 찾았다. 이들의 증언에 따라 경찰은 김아무개 당시 경기도의회 의원 등 3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업주 몇명을 수배했다. 당시 경찰이 밝힌 김씨 등의 혐의는 96년부터 1천명이 넘는 외국 여성들을 현지에서 모집해 연예인으로 위장입국시킨 다음 미군부대 주변 클럽에 넘기고 사례비를 받은 혐의(사문서 위조 등)였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특수관광업협회가 이들을 초청하는 것처럼 공연계약서 등을 위조해 비자를 발급받도록 했다. 이 일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몇몇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됐으나 그 뒤의 수사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필리핀 여성들은 고국으로 돌아갔고, 김씨와 관련자들은 무혐의로 풀려났다. 몇몇 업주들이 구속되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중간포주(일명 바지사장)가 법적 책임을 뒤집어쓰면 실세포주는 그 뒤를 봐준다는 포주들 간의 룰이 이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살인에 버금가는 범죄인 인신매매를 사문서 위조 혐의나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사소하게 취급하는 수사기관의 안이한 태도도 한몫했다.

김씨는 동두천 일대 기지촌에서 ‘왕포주’로 알려져 있다. 98년 도의원에 당선된 뒤에도 러시아·필리핀 등에서 모집한 여성들을 성매매업소에 팔아 넘겨온 것으로 유명했다. 김씨는 지금도 한국특수관광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씨와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한국특수관광업협회 쪽은 취재를 거절했다.

기지촌이 지금과 같은 국제인신매매의 경유지가 된 배경에는 이처럼 브로커 조직과 포주들의 동맹, 한국 정부의 암묵적 승인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버팀목은 미군이다. 새움터 김현선 대표는 “기지촌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변화도 미군의 승인이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미군 당국은 외국 여성들의 인신매매 실태를 알면서도 이를 방조하고 나아가 향유한다”고 설명한다.

성매매 관리, 미군 정찰대의 진짜 임무

지난 4월 말 미국 전역에 방송된 폭스8의 한 리포트는 김 대표의 주장을 뒤받침한다. ‘한국 인신매매 취재’라는 제목의 20분짜리 리포트는 한국 동두천의 기지촌에서 미군 당국과 미군 정찰대(Courtesy Patrol officer·CP)의 역할을 폭로하고 있다.

미군은 기지촌 클럽의 업주들과 성구매자들이 한국과 러시아, 필리핀 여성들을 착취하는 인신매매·성매매 구조를 관리감독하고 있었다. 여성들이 성병의 위험없이 깨끗한지, 적정가에 제대로 미군을 접대하는지 불시에 시찰, 감독하는 것이 미군의 안전을 지킨다는 정찰대가 “스스로 밝힌” 임무였다.

취재기자인 토머스 메리맨에 따르면, 이 리포트가 만들어진 배경은 이렇다. 취재팀은 애초 미국 오하이오주 마사지숍에서 상당수 한국 여성들이 성매매에 내몰리는 것을 보고 연원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수많은 한국 여성들이 미군과 결혼해서 미국으로 온 다음 마사지숍 등 성매매업소로 팔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매혼의 출발지인 동두천을 찾은 취재팀은 더욱 충격적인 현실을 목격한다.

몰래카메라에 잡힌 풍경을 보자. 한 미군전용 클럽에서 만난 러시아 여성 옥산나. 그는 춤을 추면 돈을 번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왔다. 그러나 여권은 업주가 빼돌렸고, 그는 성노예상태에 빠져 있다. 한 필리핀 여성은 3천달러만 있으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클럽에서 만난, 영어를 못하는 또 다른 한국 여성은 “합시다, 합시다”를 외치고, 한 포주는 “우리 집 애들은 훌륭한 섹스를 한다”고 자랑한다. 클럽에서 10달러를 내면 여성과 함께 술을 마시고, 60달러면 “위층에 올라가” 잠자리를 한다. 미군들은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누리고 있다. 심지어 한 미군은 “노예매춘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나는 창녀가 좋다”는 말도 스스럼없이 한다. 클럽 문 앞에서 만난 미군 정찰대원은 “이 여성들은 만약 성병이 걸리면 두들겨 맞고 쫓겨난다. 깨끗하다”, “거래를 잘 해야 바가지를 안 쓴다”, “기지 안으로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전한다. 매춘소굴인 기지촌의 클럽을 돌며 리포트는 “정녕 미군이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가” 하고 되묻는다.

이런 기지촌은 한국밖에 없어



이 리포트는 다른 방송국 채널을 통해서도 미국 전역에 재방송됐다. 그리고 미국 의회와 행정부를 뒤흔들어놓았다. 13명의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에게 즉각적인 조사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보냈고, 미 행정부는 조사관을 파견하기로 약속했다. 미국의 반인신매매법을 발의한 크리스토퍼 스미스 뉴저지주 하원의원(공화당)은 군 조사관의 조사결과가 미흡하면 청문회를 요청한다고 하였다. 그 결과 서울의 미 대사관과 주한미군은 현재 초긴장상태다.

기지촌은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아예 기지촌이 없고, 파견 미군에 엄격한 거주 원칙을 부여하는 독일 기지에도 한국과 같은 기지촌은 없다. 그러나 군사적 원조에 목을 멘 정부가 보건증을 만들고 길을 닦아준 한국의 기지촌은 미군에게 ‘성해방구’였다. 기형적으로 형성된 기지촌의 역사는 수십해가 지난 지금도 여성의 국적과 피부색을 바꿔가며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7월4일 서울지법 민사13부는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국가와 군산시, 포주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들에게 위자료 6700만원을, 업주들은 손해배상금 5억9천여만원을 각각 지급하라’라고 판결했다. 공무원의 직무유기에 대한 지자체의 책임이 빠졌으나 성매매에 대한 국가와 포주의 공동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이에 앞서 여성부는 성매매업소 종사 여성 인권보호 및 안전관리 강화를 뼈대로 한 종합적인 ‘성매매방지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대책에 기지촌은 계속 빠져 있다.

기지촌 1세대, 2세대 여성들은 지금도 아무런 교육·의료·재활의 혜택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수많은 외국 여성들이 오늘도 기지촌으로 팔려오고 팔려나간다. 새움터의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4개 지역(동두천·의정부·파주·평택) 클럽에서 일하는 러시아·필리핀 여성은 1183명. 전국 규모를 합산하면 그 수는 훨신 많다. 한국은 인신매매 방조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길이 없다. 김현선 대표는 “한국 정부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이나 예전에 주둔한 지역에 대한 특별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미국 정부는 그 비용을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 정부의 이해관계 속에서 탄생하고 유지돼온 기지촌 문제는 양국 정부가 함께 결자해지하는 수밖에 없다.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y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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