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2년07월17일 제418호 

안보와 교환된 '안락한 섹스'

한·미 안보관계와 민군관계의 실험장, 70년대 기지촌 정화운동에 얽힌 이야기

꼭 31년 전인 71년 7월9일 밤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가 있는 경기도 평택 안정리에서는 유례없는 싸움이 벌어졌다. 흑인병사 50여명이 기지촌 클럽에 동시에 들어가 업소를 때려부수자, 1천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이에 항의해 낫을 휘두르고 돌을 던졌다. 미 군경과 한국 경찰은 최루 가스와 공포탄으로 이를 진압했으나 험악한 분위기는 며칠간 계속됐다.

공황상태로 간 한국 정부의 위기의식


사진/ 한국 기지촌의 발달사를 되짚은 <동맹 속의 섹스>.


흑인병사들의 난동은 차별대우에 대한 분풀이였다. 당시 클럽은 백인전용 업소와 흑인전용 업소가 분리돼 있었고 클럽 여성들은 흑인을 상대하길 꺼렸다. 인종편견 탓만은 아니었다. 흑인 병사를 상대한 여성은 곧바로 백인 병사에게서 보복당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영업손실로 직결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한국 기지촌 발달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를 계기로 SOFA(한미행정협정) 합동위원회는 민군관계에 관한 특별소위원회를 만들었고, 청와대는 장관급 행정비서를 포함한 각 부처의 차관이 참석하는 기지촌 정화위원회를 설립했다. 두 위원회의 목적은 모두 미군에게 ‘안락한 접대’와 ‘이를 위한 환경조성’이다. 소위원회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도록 클럽 여성들을 교육하라고 지방정부에 압력을 넣었고, 정화위원회는 클럽 여성에게 번호매긴 꼬리표(보건증)를 달게 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산부인과 검진을 받게 하는 등 성병예방에 만전을 기했다. 흑백갈등 해결과 성병예방이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 과제는 한국 정부와 미군의 이해를 담아내는 교집합이었다. 그리고 이 정책에 따라 기지촌 여성의 삶은 점점 자기 것이 아닌 한국 정부와 미군의 통제대상이 돼버렸다.

최근 한국에 번역 소개된 <동맹속의 섹스>(삼인 펴냄)는 71∼76년에 벌어진 기지촌 정화운동의 배경과 그것이 기지촌 주민의 삶에 끼친 영향을 샅샅이 짚어내었다. 지은이 캐서린 H.S.문(미국 웨슬리대 교수·정치학)에 따르면 기지촌 정화운동은 “한·미 안보관계와 민군관계의 실험장”이었다.

69년에 미 대통령 닉슨은 아시아에서의 감군을 주요 내용으로 한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하라는 여론의 압력, 전쟁으로 인한 국부의 유출, 소련-중국의 불화에 따른 정치·외교적 계산을 한 결과였다. 한국 정부는 이 소식을 날벼락으로 여겼고 위기의식이 지나쳐 공황상태에 빠졌다. 국방부 장관은 군축을 반대하는 광고를 <워싱턴 포스트>에 실었고, 국무총리는 “(미군을 싣고 나가는)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도록 활주로에 드러누울 것”이라고 미국 대사를 위협하기도 했다. 한국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군사적 원조가 끊길 것과 군사적으로 우세한 북한의 남침을 두려워한 한국은 미군 감군을 반대했고, 이는 워싱턴의 정책결정에 불만이 있던 극동지역 미군 책임자들이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윤락행위방지법 만든 박정희의 모순


사진/ 지촌에서는 사소한 변화라도 미군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6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90년대 초반의 기지촌 전경.


69년부터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된 감군과 그로 인한 기지 재배치 와중에 흑백갈등이 고개를 들었다. 흑백갈등은 미군에게는 가장 큰 ‘내부의 적’이었다. 이를 다스릴 방법은 더 많은 성적 위락과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군의 상당수는 성병에 걸려 있었고 성병 발생률이 높아지자 훈련과 통제에 차질이 생겼다. 이에 따라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문제는 SOFA 합동위원회 특별소위원회의 단골주제가 됐다. 이 자리에서 한국 정부 대표자와 미군 대표자는 서로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고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미군은 약을 대고 치료방법을 내놓았으며, 한국 정부는 보건증과 진료시설, 강제검진으로 이에 화답했다. 미군은 기지촌 보건·환경 개선비용을 감안한 원조를 내걸었고, 한국 정부는 성실한 집행을 약속했다. 이러한 양국 정부의 동맹 속에 기지촌마다 자치회가 형성됐다. 그리고 기지촌 여성들은 “민간 외교관”, “애국 열사”로 칭송되며 성적·심리적으로 이용됐다.

성매매를 금지하는 윤락행위등방지법을 만든 박정희 정권은 기지촌 성매매를 관리하는 모순에 빠졌다. 이때의 이율배반적인 정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기지촌에서는 보건증을 갱신하는 검사가 의무적으로 이행되고 있고, 일부 보건소에서는 2년 전까지 미군이 제공한 약물을 썼다. 한국 정부의 방치 속에 기지촌은 미국 땅도 한국 땅도 아닌 무국적지가 되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