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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성을 바꾸게 하자 16만명의 여성이 자녀 성씨문제로 고통… 국회 통과 못한 ‘친양자제도’
김영은(37·이하 가명)씨는 3년 전 이혼한 뒤 재혼을 준비하고 있다. 재혼상담업체에도 등록했고, 주위에서 권하는 맞선자리에도 스스럼없이 나간다. 그러나 맞선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가 고집하는 한 가지 조건 때문이다. 맞선 상대가 꼭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김씨가 이 조건을 고수하는 것은 딸 박민아(7)양 때문이다. 현행 민법은 재혼을 하더라도 아이들의 성을 바꿀 수 없게 하고 있다. 김씨가 박씨 아닌 이씨나 최씨 성과 결혼을 해도, 민아의 성은 바뀌지 않는다. “아빠와 성이 다른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말로 다 못합니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놀리고, 나중에 결혼할 때도 호주와 성이 다르면 분란이 생길 수 있어요.” 최지원(34)씨는 5년 전 김동기(37)씨와 재혼했다. 재혼 당시 최씨는 2살짜리 딸 엄지민을, 김씨는 4살짜리 아들 김영훈을 두고 있었다. 부부는 재혼 3년 만에 딸 김세은(3)을 낳았다. 지민이는 지금도 자기 성을 김씨로 안다. 헤어진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등록등본은 바꿀 수 없었다. 엄지민은 ‘동거인’으로 기록돼 있다. 의료보험카드에도 언니인 지민이보다 동생인 세은이 이름이 앞에 올라 있다. 지민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최씨는 요즘 걱정이 말이 아니다. “학교에 성을 바꿔 불러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건지, 벌써부터 가시방석이에요.” 성씨 문제는 재혼가정들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제도적 장벽이다. 새아빠와 성이 다른 아이들의 문제는 최근 문화방송에서 드라마(<난 왜 아빠랑 성이 달라>)로 제작돼 방영되기도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96년 이후에만 대략 16만명의 재혼여성이 자녀들의 성씨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아빠의 성을 따를 수 있게 한 ‘친양자제도’가 마련됐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이 제도는 1998년 처음 입법예고됐지만, 유림의 반발을 의식한 탓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 2000년 법무부가 친양자제가 포함된 민법(가족법) 개정안을 새로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국회를 떠돌고 있다. 더구나 이 법안은 친양자가 될 수 있는 나이 제한을 만 7살 미만으로 하고 있어 반발을 사고 있다. “성씨 문제에 가장 민감한 시기인 청소년기를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친어머니가 7살 미만과 이상의 두 자녀를 데리고 재혼할 경우, 성이 서로 갈릴 수도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친양자제도가 완벽한 대안이 못 된다는 지적도 있다. 김숙기(이하 실명) 나우미가족문화연구소장은 “재이혼율이 높은 상황에서 아이들의 정체성이 너무 자주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친양자제가 현재 혈연중심 가족문화에 상처받는 이들을 위한 장점이 있지만, 궁극적으론 아이들에게 이혼과 재혼의 상황을 알리고 두 부모가 함께 양육에 참여하는 열린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혜경 한국여성개발원 연구부장은 “근본적으로 호주제에서 비롯된 문제인 건 맞다”며 “하지만 지금 당장 재혼가정의 안정을 위해선 친양자제를 포함한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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